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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앞둔 12월 9일, 차별금지법제정촉구대회 <우리가 연다, 평등한 세상>이 열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007년 삭제되었던 7개의 차별금지사유(병력, 출신국가, 성적지향, 가족형태, 학력 등)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묻는다.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나중인가? 차별은 우리의 일상이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을 나중으로 미룬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평등행 버스를 타겠다. - 기자말

같은 가족인데, 미혼모는 '4등급'이라고요?
 같은 가족인데, 미혼모는 '4등급'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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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어딨니?"

남편과 사별 후 아이와의 외출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으레 듣는 말, "아빠는 어딨니?" 나이 드신 분이 별 뜻 없이 하는 말이라지만 남편이 죽고 얼마 안 된 우리 세 모녀에겐 그냥 받아 넘기기 힘든 말이었다. 상중(喪中)을 표시하는 머리핀을 언제까지 꽂을 수도 없고 참으로 난처했던 기억이다.

내가 일하며 만나는 미혼모들은 '아빠는 어딨니?'라는 질문을 더 많이 듣는다고 한다. 아이가 어리거나 혹은 엄마가 어릴수록 동네 슈퍼 아주머니도 동네 할아버지도 혀를 끌끌 차며 '빨리 아빠를 만나야 할 텐데…' 하신단다.

이혼 중의 부모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면접교섭권 보장을 위해 아이 아빠를 보고 싶지 않아도 지정된 장소로 나가는 중일 수도 있고, 숨어 버린 비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청구하기 위해 소송 중일 수도 있다. 우린 그저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을 뿐인데 비정상으로 보는 이들의 눈길이 의식 되는 건 비단 내가 예민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아빠가 없는 아이들은 불쌍하다?

관심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들의 관심이 우리를 걱정해서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호기심 가득 물어 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이혼이든 사별이든 혹은 미혼이든 간에 아빠가 없는 아이들은 무조건 불쌍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 모르는 것일까? 아빠가 있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쩌면 엄마와 아빠의 성 고정관념을 가지고 '이상적 가족'이라는 허구를 실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라고 하고 싶다.

한부모 가족은 2010년 9.2%에서 2015년 10.8%로 증가추세에 있다. 가족가치관의 변화로 1인가구와 비혼이 증가하고 고령화 저출산 시대를 겪으며 한부모 가족은 다양한 가족의 한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가족정책은 '가족=출산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양부모가족만을 정상가족으로 인정한다. 가족정책을 실행하는 곳도 '건강가족지원센터'로 '건강한 가족' 즉 부부 위주의 교육프로그램이 단연코 많다.

아빠(또는 엄마)가 있을 수도 있고 사정상 없을 수도 있지만, 아빠(또는 엄마)가 없는 아이들은 일단 관심의 대상이 되고 병리적 비정상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한다. 혼자 키운다는 것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심한 한국에서 여성이 아이를 홀로 키운다는 것은, 저임금과 10시간 이상의 근무(48.2%)를 한다는 통계가 증명하듯 힘든 일이다. 그런데 정상적인 결혼을 통한 양부모 가족만이 행복의 척도가 되는 것은 억울해도 정말 억울하다.

'남편은 뭐 하세요?'

경력단절여성이 되어 취업시장을 떠돌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었다. 내가 무슨 일을 잘하는지보다 남편의 유무, 결혼의 유무가 더욱 중요한 모양이다. 미혼모들은 임신을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남편이 있으면 1등급, 남편이 죽으면 2등급, 남편과 이혼하면 3등급, 미혼모는 4등급"이라고.

남편이 없으면 혼자 아이를 돌볼 텐데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엄마 가장'들은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모른다. 힘들어도 고단해도 가정을 지키려는 우리를, 그들은 비정상적이고 불완전하고 위험한 가족으로 본다.

심지어 교육부의 성교육 교사지도서 내용 가운데 "피임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미혼모, 미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양육미혼모(부)는 생명을 선택하고 기르는 엄마가 아니라 생각 없는 행동의 결과로만 보는 것이다.

30세에 미혼모가 된 한 지인이 있다. 임신사실을 알고 검사한 결과 유산을 할 경우 나팔관 이상이 있어 더 이상 아이를 임신할 수 없다는 병원 측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출산을 결심했지만 현재 아이 아빠와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 모자가족은 맞벌이가족보다 조금 더 가난 하고 독박육아로 힘들 뿐 비정상적이거나 위험한 가족은 아니다.

가끔 한부모축제가 있어 거리에 나간다. 엄마,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온 집들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어떤 나이 드신 분들은 뭘 하냐며 기웃거리다 취지를 설명하면 버럭 소리를 지른다.

"결혼들 하면 될 것 아냐?"

우린 결혼을 못한 비정상 가족이 아닌데…. 혼자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뿐인데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아빠가 어딨는지, 남편은 뭐 하는지 묻는 이들의 지나친 관심은 그래서 차별로 느껴지는 것이다.

결혼 제도 밖에서 혼자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여성들도 지금과는 다른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남·녀 임금격차를 줄이고 아이를 키우면서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도 필요하다. 그러나 일·가정 양립 정책에 한부모는 예외인 경우가 많다. 출발이 다른 한부모와 미혼모에게 배우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더 적용해 주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해 주어야 하지만 오히려 이 부분은 일률적으로 적용한다. 비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때 이행을 강제할 조항이 필요하지만, 대부분 남성인 비양육자들의 개인정보보호가 우선이란다.

2017년 한부모축제에서 한국한부모연합은 '내 가족을 묻지 마세요' 인식개선 부스를 운영했다.
 2017년 한부모축제에서 한국한부모연합은 '내 가족을 묻지 마세요' 인식개선 부스를 운영했다.
ⓒ 한국한부모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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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와 미혼모 그리고 또 다른 가족 상황들

한부모가 되고 나서야 미혼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공통분모는 우리를 결속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상가족처럼 보이려 원가족을 포함한 다른 정상가족의 주위를 맴돌아 보았지만 역시나 그들과는 가족이해에 대한 기본 틀이 다르다. 결혼제도를 통한 혈연 중심의 가족만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잘 모른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또는 못한다 해도 가족이 될 수 있다. 결혼을 해도 함께 살지 않을 수 있고 원수가 되어 사는 것보다는 잠시 헤어지거나 이혼하고 아이의 양육을 함께 할 수도 있어야 한다. 혼자 사는 1인가구나 동성애자들에게서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으면 안 된다. 한부모와 미혼모가족이 다른 양부모가족에 비해 출발이 다르다면 조금 더 지지하고 응원해 주면 된다. 더 이상 비정상적으로 보거나 결혼제도로 진입해야만 완전한 가족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부모도 미혼모도 어엿한 부모이자 시민이다. 성평등한 가족가치 확산이란, 조금 가난하다 하여 한부모와 미혼모가족을 지원이라는 복지수혜의 틀에 가두어 놓고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는 족쇄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시민으로서 누구나 의견을 제시하며 1인 가구, 성소수자, 장애여성들과 함께 새로운 가족에 대한 담론을 만들 때다. 가족정책에 배제되어 본 가족만이 한국 가족정책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오진방 님은 한국한부모연합 활동가입니다. 세계인권선언일 맞이 차별금지법제정촉구대회 <우리가 연다, 평등한 세상> 여러분들의 후원으로 집회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https://socialfunch.org/equalact2017

△ 200만원 모금 시 : 우리가 연다, 평등한 세상! 최소 집회비용(공연 60만원, 수화 통역 20만원, 현수막 20만원, 음향 100만원)으로 (빚 안내고) 집회 성사!
△ 350만원 모금 시 : 힘차게 외쳐보자! 무대 업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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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차별금지법, #차별금지법제정촉구대회, #가족상황 차별, #한부모, #가족구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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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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