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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조합원들이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들이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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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디 찬 겨울바람이 스산한 광화문 단식농성장을 더욱 허기지게 만들던 12월 어느 날, 전교조 선생님께 배웠다는 한 청년이 찾아와 '촛불혁명'이라는 사진집을 놓고 갔다. 표지 안쪽에 새겨진 자필 글귀는 얼어붙은 마음을 금세 훈훈히 녹여주었다.

"학창 시절, 전교조 선생님들을 통해 곧고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힘을 키워왔습니다. 우리가 쓴 역사, 빛으로 쓴 역사의 기록이 촛불을 든 아이들의 가슴에 뜨겁게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싸움 중에 부디 건강하세요. 모든 전교조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 담아, 000 드립니다."

지난 4일부터 27명의 전교조 교사들이 단식 투쟁한 지 열흘이 넘었다. 1989년 1527명  교사들의 해직을 무릅쓰며 세운 전교조가 다시 그  시절처럼 노조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맞서는 싸움이다.

6만 조합원의 전교조는 9명의 해직교사들을 조합원으로 인정했다는 이유만으로 합법 지위를 박탈당했다. 해직교사들의 조합원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규약 한 줄 만들면 벗어날 수 있는 시련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명령을 그대로 받는 것은 곧 노조의 생명인 자주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며, 다수의 안위를 위해 소수를 내치는 것은 전교조의 정신을 배반하는 짓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규약만 개정하면 전교조는 합법이 될 수 있지만, 우리는 법외노조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 오체투지, 단식, 연가투쟁의 길을 택했다.

"아홉 교사를 버리지 않고, 전교조 육만 교사가 법외노조의 험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름다운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선생님다운 선택이셨다는 겁니다. 정의로운 일에는 때로 번민과 고통이 따르는 법이지만 바른 길이면 그 길로 가야지요. 교단에서 가르치는 일 못지않은 큰 가르침을 거기서 얻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이런 시대에!"

이철수 판화가의 작품 '9/6000'의 글귀다. 한심한 선택을 했다는 일각의 조롱에도 우리가 이 길을 꿋꿋이 갈 수 있는 이유를, 그리고 전교조가 가지는 크나큰 자부심의 근거를 대변해주는 글이다.  

직업계 고등학생들이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으로 부상을 당하고 목숨까지 잃는 일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예년과 별 차이 없는 방안들을 '현장 실습 폐지', '학습 중심 실습'으로 포장해 발표했다. 그 중에 '노동인권교육' 강화가 있다. 교원들에 대해서도 집합연수, 원격연수로 교육하겠다고 하는데, 교육부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작년에 노조 전임인 교사 34명을 해고시켰고 지금도 교사들의 '노조 할 권리'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교육부다. 따라서 누구보다 먼저 노동인권교육을 자청해서 받아야 할 사람은 교육부 관료들일 것이다.

자신이 갖지 못한 권리에 대하여 남에게 가르치는 것은 기만이다. 노동조합을 자주적으로 운영할 권리도, 단체교섭 할 권리도, 파업도 할 권리도 없으며, 심지어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해도 정치적 행위로 몰아 징계 위협을 당하는 이 나라 교사들이 노동에 대하여, 인권에 대하여, 그리고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진정성 있는 교육을 하기는 어렵다. 교사가 '노동자'가 되고 '시민'이 되었을 때 비로소 '노동자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를 온전히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졸지에 노조를 잃어버린 교사들, 정부에게 바란다
 
조창익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을 비롯한 중앙집행위원들이 지난 11월 1일 오전 청와대앞 분수광장에서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철회, 성과급 교원평가 폐지, 교육적폐 청산’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에 돌입하기전 삭발을 하고 있다. 2017.11.1
 조창익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을 비롯한 중앙집행위원들이 지난 11월 1일 오전 청와대앞 분수광장에서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철회, 성과급 교원평가 폐지, 교육적폐 청산’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에 돌입하기전 삭발을 하고 있다. 2017.11.1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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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용노동부가 2016년 전국 노조 조직현황을 발표했는데, 교원 부문 조직률이 14.6%(2015년)에서 1.8%(2016년)으로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아 전교조 조합원 수를 통계에서 빠뜨린 결과다.

전교조를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곧 한국 교사들의 '노조 할 권리'를 박탈한 것과 사실상 같으며, 교사들의 자유로운 단결권을 침해한 무단행정이었다. 따라서 '법외노조'는 전교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교사 일반, 노동 일반의 문제인 것이다. 국제노동기구, 국제연합, 국제교원단체연맹, 국제노총 등 국제사회가 전교조 법외노조 탄압을 중대한 노동인권 침해 사건으로 보고 적극 개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근혜가 남긴 적폐와 한국사회의 오랜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촛불혁명이 일어났고 촛불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7개월을 넘기고 있는데도 전교조가 여전히 법외노조라는 현실은 아니러니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전교조 등 민주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정보기관, 보수세력과 함께 공작을 벌였고 심지어 사법부에도 영향을 행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속출해왔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노조로 보지 아니함 통보'라는 무단행정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기이한 일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죽이기'에 다양한 국가기관들이 동원되었기 때문에, 전교조의 지위를 되돌리는 과정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이참에 교사와 공무원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약해 온 우리 사회의 오랜 적폐도 정리해야 하므로 과제는 더 늘어난다. ①고용노동부의 '노조 아님 통보' 직권취소, ②대법원의 '노조 아님 통보' 위법 판결, ③청와대, 국정원, 고용노동부, 교육부, 보수단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단죄, 그리고 이들의 범죄행위로 인한 피해의 회복, ④'노조해산명령권'과 유사한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의 폐기 ⑤ '노조 설립 신고제'의 변칙적인 허가제 운영을 제한,  ⑥교원노조법 개정으로 노조의 자주적 운영과 노동3권을 보장, ⑦단결권 등에 관계된 ILO 핵심협약 87호와 98호의 비준 등이다.

정부는 전교조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로서 행정, 입법, 사법을 망라한 위 7개 과제들 중에서 가장 쉽고 정치적인 부담도 적은 것을 선택할 요량인 것 같다. 하지만 저 과제들은 '택일'할 선택지가 아니라 모두 일괄적으로 이행해야 할 적폐청산 과제들이며, 이 중에서도 '노조 아님 통보'를 스스로 직권취소하는 것은 정부가 회피할 수 없는 최우선 과제다.

'적폐 정부'가 저지른 일을 바로 잡는 것이 '적폐청산 정부'의 의무다. 다른 데 떠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 더욱이 현 정부가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하는 만큼, 민간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지도할 권위와 자격을 확보하려면 정부 자신이 저지른 '부당노동행위'부터 바로잡는 게 순서일 것이다.

전교조 탄압은 '노조 할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한 노동 사안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를 위협한 정치적 사안이었다. 보수세력 결집을 위해 특정 단체를 희생양 삼는 악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적폐 청산 과제가 사회 각 부문에 산적해 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를 철회하느냐 마느냐는 향후 수많은 적폐들을 단호하게 청산할 의지와 능력이 문재인 정부에게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촛불혁명 원년이 다 가기 전에 법외노조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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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송재혁씨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입니다.


태그:#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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