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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해 온 박도 선생님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2013년 초 봄 어느 날, <오마이뉴스>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책 한 권 보내 드릴테니 서평 하나 써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인연이 된 책이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박도 지음 / 눈빛 펴냄)였다.

1949년 6월 26일 암살된 백범 김구 선생. 그리고 그 백범을 암살한 안두희와 그 배후를 추적해 온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 책은 사건 당시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 있었다. 그 숨 막히는 미스터리와 스릴을 읽어내며 나는 깊은 감동에 사로 잡혔다. 그래서 그랬다.

나는 내가 느낀 그 감동을 어떻게 해서든 보다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서평이라는 글쓰기 영역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 기울여 정성껏 글을 썼고 이를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다. 그 글이 '안두희 뒤의 검은 손, 백범을 죽인 진짜 범인'이었다.

그런 정성이 독자들 가슴에 와 닿은 것일까. 정말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쓴 서평 따위로 그런 결실을 얻었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 기쁜 소식을 들려준 이는 다름 아닌 이 책의 저자, 박도 시민기자님이었다. 어느 날 낯선 번호가 떠 받아보니 뜻밖에도 박도 기자님이었다. 특유의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그는 말씀하셨다.

"고상만 기자님이 써 주신 서평 덕분에 제가 낸 책이 완판되어 2쇄를 찍게 되었습니다. 그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그러니, 시간을 좀 내 주실 수 있을까요? 고마운 몇 분 모시고 제가 밥 한끼 나누고 싶은데요."

고백하자면 나는 그 '공짜 밥' 한 그릇 때문에 약속을 잡은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박도'라는 이 저자 분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이런 책을 썼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더구나 이날 박도 기자님이 초대한 분들의 면면이 나를 더욱 그러하게 했다. 박도 선생님의 전언에 의하면 이날 백범 선생님을 시해한 안두희를 평생 추적해온 고 권중희 선생님의 사모님도 모셨다는 것이었다.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출간후 1쇄 완판을 축하하고자 모임 사람들. (오른쪽부터 안두희를 정의봉으로 응징한 박기서 선생, 권중희 선생 부인 김영자 씨, 저자 박도 선생님, 고상만,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출간후 1쇄 완판을 축하하고자 모임 사람들. (오른쪽부터 안두희를 정의봉으로 응징한 박기서 선생, 권중희 선생 부인 김영자 씨, 저자 박도 선생님, 고상만,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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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뵙게된 그날의 자리는 의미있었고 흥겨웠다. 좋은 분들과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우는 감격스러운 기억이었다. 한편 그때 뵌 박도 선생님의 이력은 참으로 특이했다. 알고 보니 박도 선생님은 지난 30여년간 국어 교사로 일생을 보낸 분이었다. 그런 분이 퇴직한 후 다시 제2의 청년으로 길을 열었으니 스스로를 말하기에 '역사학도'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도 선생님은 퇴직 후 짧은 시간동안 참 많은 책들을 냈다. 1994년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는 장편소설로 처음 등단한 후 박도 선생님은 매우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책을 썼다.

한국전쟁 와중에 두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책 <약속>을 비롯하여 이육사 시인의 시 '광야' 실제 주인공으로 만주 제일의 파르티잔이었던 허형식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실록 <허형식 장군>, 그 외 산문집으로는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다수의 책을 펴냈다.

그런데 박도 선생님에게는 이런 책들과 또 다른 결로 내 놓은 책들이 있다. 바로 스스로를 '역사학도'로 규정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자료를 모아 쓴 책들이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님이 일제강점기 시대를 그린 대하소설 '아리랑'과 이후 한국전쟁을 다룬 책 '태백산맥', 그리고 근대화 시대를 다른 '한강'을 냈다면, 박도 선생님 역시 그에 버금가는 시대의 저작물을 다수를 세상에 내놓았다.

누구도 모르는 그 이야기를 꺼낸 저자, 박도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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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기자님은 지금까지 여러 역사 관련 책들을 출간했다. 그런 책들 중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생생한 장면을 담은 사진집이다. 대표적으로는 한국 전쟁 과정에서 참혹한 진실을 알린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그리고 '사진으로 엮은 한국 독립운동사'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이들 책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없었던 시대의 귀한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시대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박도 선생님의 책은 늘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한편 박도 기자님이 이처럼 귀한 책들을 엮어 낼 수 있었던 데에는 지금으로 십 수년 전에 있었던 귀한 사연이 숨어 있었다.

지난 2003년 당시였다. 박도 선생님은 백범 선생님의 암살 배후를 추적하는 권중희 선생님을 인터뷰 과정에서 만나게 된다. 권중희 선생님은 평생을 백범 선생님의 암살 진실을 밝히기 위해 헌신했다. 그런 분이 인터뷰 말미에서 소원 한 가지 말한다. 다름 아닌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방문하여 백범의 진실이 담긴 문서를 찾아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간절한 소원에 박도 선생님은 마음이 흔들렸다.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 가려면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다. 적어도 3천만 원이었다. 고민 끝에 박도 선생님은 요즘이야 흔하지만 그때는 전무한 이른바 '스토리펀딩'을 시작했다고 한다. 권중희 선생님의 사연을 전하며 모금을 제안한 것이다. 과연 이 무모한 소원은 성공했을까.

<오마이뉴스>를 통해 시작된 이 간절한 모금 캠페인은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다. 경향 각지, 아니 전세계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후원자들이 크고 작은 후원금을 기꺼이 내줬다. 그리하여 목표액 3천만 원을 훌쩍 넘어선 것은 모금운동을 시작한 지 불과 한 달 만의 일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모여진 성원으로 권중희 선생님과 박도 선생님은 2004년 1월 31일부터 3월 17일까지 약 40일간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방문할 수 있었고 그 곳에서 귀한 자료를 다수 수집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입수하게 된 자료가 이후 박도 선생님이 낸 책의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 미군이 촬영한 사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으로부터 노획한 사진 등 귀중한 그 시절 기록을 고스란히 그곳에서 스캔하여 우리나라로 가져 온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나온 그간의 여러 출간 책중에서도 이번에 소개하는 이 책, <미군정 3년사>는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살펴봐야할 책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나 역시 그간 나름대로 관심이 있어 적지 않은 자료를 봐 왔다고 자부했으나 이번에는 정말 달랐다. 불과 서너시간 만에 독파해 버린 이 책의 흥미로움은 차라리 신비롭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또 다른' 대한민국 역사 3년 복원에 격찬

<미군정 3년사> 표지. 중앙청 앞에 일장기가 내려간 후 곧이어 성조기가 올라가고 있다. 일본이 물러나고 다시 미국이 들어왔음을 의미하는 장면.
 <미군정 3년사> 표지. 중앙청 앞에 일장기가 내려간 후 곧이어 성조기가 올라가고 있다. 일본이 물러나고 다시 미국이 들어왔음을 의미하는 장면.
ⓒ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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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는 것처럼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대한민국은 그로부터 만 3년이 되는 1948년 8월 15일 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우리는 이 만 3년의 시간을 '미군정 통치 기간'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이 시간은 잃어버린 역사라고 정의해도 이상할 일이 없다.

우리가 배운 그 어떤 책에서도 이 기간은 거의 지나가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사이 사이에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으며 암살과 암살이 되풀이면서 김구냐, 혹은 이승만이냐를 두고 대립과 갈등만 깊었던 이른바 '암흑의 시간으로만' 대충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만 3년의 시간을 오롯이 기록한 목격자들이 있었다. 바로 미군정 기간 동안 군인으로 복무하던 미군이었다. 그들은 백범 김구와 이승만, 그리고 여운형과 김일성 등 그 당시 주요한 역사적 인물들의 활동상을 자신들의 카메라로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도 응시했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부터 아이들 웃음까지. 그리고 고난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들의 주름도 필름은 한치 부족함없이 남겼다.

박도 선생님은 그처럼 귀한 기록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하나 하나 찾아내어 스캔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다시 <미군정 3년사>라는 한 권의 책으로 재구성했다. 재미있는 것은 사진 외에도 곁들여진 그 시대 신문 기사와 삽화다. 눈빛 출판사는 시대를 담은 사진과 더불어 시대상을 담은 짧은 신문 기사도 간간이 곁들이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점이 흥미를 더욱 돋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잊은 또 다른 우리의 대한민국 역사 3년이 고스란히 복원했다는 점에서 나는 늙은 '역사학도' 박도 선생님과 눈빛 출판사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마주하는 것은 또 다른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는 귀한 공적으로 남을 것 같다.

나이 70세를 넘긴 박도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여전히 '마음만은 청년이라고'.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 말씀에 깊이 공감했다. 그 청년 박도의 열정이 담긴 책, <미군정 3년사>가 증거이기 때문이다. 격찬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남대문역 앞 거리. 책에는 그 시대상을 담은 사진이 가득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남대문역 앞 거리. 책에는 그 시대상을 담은 사진이 가득했다.
ⓒ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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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미군정 3년사>(박도)ㅣ눈빛 ㅣ2017.11.27. ㅣ33,000원



미군정 3년사 - 빼앗긴 해방과 분단의 서곡

박도 엮음, 눈빛(2017)


태그:#미군정 3년사, #박도,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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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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