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 PD수첩 >에서 해고된 후 다시 돌아온 정재홍 작가가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상암MBC사옥 앞에 섰다.

정재홍 작가는 인터뷰한 날 처음으로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왔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2012년 < PD수첩>에서 해고된 이후 5년만에 다시 < PD수첩>으로 돌아왔다. 당시 MBC는 서울 여의도에 있었다. ⓒ 이희훈


"이렇게 공부해서 그렇게 사냐. 엠빙신 기자들아?" "왜 MBC 안 보는지는 다들 알잖아요." - MBC < PD수첩 > "MBC 몰락, 7년의 기록" 중에서

현장에서 MBC 구성원이 접한 국민들의 외침은 이토록 뼈 아픈 것이었다. 한여름, MBC 총파업 이전부터 제작 거부에 들어갔던 < PD수첩>이 겨울이 돼 돌아왔다. 지난 2012년 해고된 정재홍 작가도 함께였다. 그의 복귀작은 지난 7년 간 MBC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왜 망가졌는지 그 성찰을 담은 프로그램 'MBC 몰락, 7년의 기록'이었다.

2012년 < PD수첩>에서 해고된 정재홍 작가를 지난 18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에서 만났다. 그는 이날 상암동 사옥에 처음 와보았다고 했다. 상암 사옥서 만난 MBC 구성원들은 복도를 지나가면서 정재홍 작가에게 '< PD수첩> 잘 봤다'고 인사했다. 그는 밝게 웃었다.

"사람 이야기는 안 된다 해서 동물 이야기 다뤘다"

2012년 170일 파업을 마치고 복귀한 첫 날 그는 MBC에서 해고됐다. 지난 2000년 2월 < PD수첩>에 몸 담은 지 12년 만이었다. '황우석' '용산참사' '광우병'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인화학교' 등 < PD수첩>을 대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아이템들을 함께 한 작가를 한 순간에 해고시킨 것이다.

알려진대로 그 배경에는 국정원이 있었다. 이명박 정권 당시 국정원에서 MBC를 장악하기 위해 작성된 문건은 < PD수첩> 등을 '좌편향 프로그램'으로 적시하고 < PD수첩>을 만들던 모든 제작진을 그만두게 만들었다.

"어떤 작가든 계속 < PD수첩>을 도맡아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일이 맞지 않으면 그만둘 수도 있는 게 프리랜서 작가다. 하지만 국정원 문서로 확인됐다시피 '분위기 쇄신'이라는 둥 '파업 지지 서명을 했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파업 지지를 할 수 있는 거다. 파업을 지지하든 말든 박근혜를 찍든 문재인을 찍든 프로그램만 공정하게 하면 되지 않나. 이런 식으로 부당하게 쫓아내면 언론 자유란 없다고 봤다. < PD수첩>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작가로서 '나'는 없다고 봤다. 기를 쓰고 한 번은 돌아가서 프로그램을 맡아야겠다고 생각했지.

김재영 피디가 '사장도 바뀌었고 처음하는 < PD수첩>인데 정재홍 작가가 하는 게 좋지 않겠냐'면서 '같이 하자'고 했을 때 고마웠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정말 뭐랄까 숙원 같은 것?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위안을 받았고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정말 행복했다."

이유도 없이 해고가 된 뒤 그를 포함한 < PD수첩> 작가들은 '끝장 텐트'라는 이름의 텐트를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동료 작가들 1200여 명이 < PD수첩> '대체작가 거부 보이콧'을 했다. 반 년을 싸우고 그 해 겨울 겨우 합의를 봤다. 2명의 작가가 < PD수첩>에 복직했다.

 2012년 < PD수첩 >에서 해고된 후 다시 돌아온 정재홍 작가

정재홍 작가가 'PD수첩' 로고가 적힌 현판을 어루만지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이희훈


하지만 정재홍 작가는 '< PD수첩>은 안 되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가야한다'는 말을 들었다. 정재홍 작가는 < MBC스페셜>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 MBC스페셜>에서도 열심히 하면 좋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 MBC스페셜>서 내놓은 아이템들은 모두 '킬' 당했다. 순차적으로 자리가 나면 < PD수첩>으로 갈 수 있다는 합의 내용은 지켜지지 않았다. 정재홍 작가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기침을 하듯 눈물을 왈칵 터트렸다.

"< MBC스페셜> 가서도 열심히 하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아이템을 냈는데 계속 '킬' 당했다.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다가 동물원의 고릴라 이야기를 찍겠다니까 그때는 하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또 다른 아이템은 계속 '킬' 당하고 몇 달 후에 동물원의 호랑이 찍겠다니까 그것도 하라고 그러고. 반 년 또 일 못 하다가 하이에나 다루겠다니까 하라고 그러고."

그래서 그는 차례로 고릴라와 호랑이 그리고 하이에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프리랜서 작가는 정규직 사원들과 달리 아이템이 '킬' 당해 프로그램을 맡지 못하면 돈을 받을 수 없다. < MBC스페셜>만으로 생계가 해결되지 않았던 정재홍 작가는 케이블이나 지역 방송사에서 "닥치는대로" 일을 해야 했다. 동시에 4개의 프로그램을 맡아야 했던 적도 있다. 그러다가 MBC 시사교양국이 해체됐고 시사교양국 해체에 대해 타 매체에 기고했다는 이유로 < MBC스페셜>에서조차 일할 수 없게 됐다. 그는 <뉴스타파>로 옮겨 '목격자들'이라는 짧은 다큐멘터리도 만들었고 최승호 피디랑 <자백>과 <공범자들>도 함께 만들었다.

"< PD수첩>에서 잘리기 전에도 김재철 사장으로부터 계속 아이템을 통제 받았다. 뉴스타파 프로그램들을 맡아서 하다 보니까 '적당히 시원한 물에서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완전 물 만난 고기였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 거다. 일이 아니고 그동안 쌓인 감정들이 해소되는 과정이었다. 감미롭다는 표현이 있다. 뭔가 달콤하고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이렇게 감미로울 수도 있구나 싶었다. 정말 행복하게 에너지를 충전 받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양껏 했다. 정말 즐거웠다. 엄청나게 바빴지만 또 엄청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 PD수첩>에 올인하겠다"

 2012년 < PD수첩 >에서 해고된 후 다시 돌아온 정재홍 작가가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MBC PD수첩 사무실을 처음으로 찾아가 제작진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2012년 < PD수첩>에서 해고된 후 돌아온 정재홍 작가가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MBC PD수첩 사무실을 처음으로 찾아가 제작진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 이희훈


 2012년 < PD수첩 >에서 해고된 후 다시 돌아온 정재홍 작가가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MBC사옥에서 인터뷰를 하며 한학수 <PD수첩>PD 에게 온 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한 피디는 최 작가에게 "형도 고생했어요, 한번 일으켜 봅시다. 보란듯이"라며 "피디수첩이 무엇인지 보여줍시다"고 메세지를 보냈다.

2012년 < PD수첩>에서 해고된 후 다시 돌아온 정재홍 작가가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MBC사옥에서 인터뷰를 하며 한학수 < PD수첩> PD에게 온 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한 피디는 정 작가에게 "형도 고생했어요, 한번 일으켜 봅시다. 보란듯이"라며 "피디수첩이 무엇인지 보여줍시다"고 메세지를 보냈다. ⓒ 이희훈


"나름대로 < PD수첩> 이후에도 즐거웠다. 하지만 부당한 이유로 부당하게 잘렸기 때문에 복귀시켜 달라고 말한 것이다. 물론 < PD수첩>에서 내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다시 시작하려는 건 '그들이' 무너뜨린 우리들의 성과를 복원해보고 싶은 열망 같은 게 있기 때문이다. 한학수 PD가 < PD수첩> MC를 맡게 됐는데 내게 카톡을 보내왔다."

정재홍 작가가 보여준 한학수 피디와의 카톡 대화 속에는 역시 정재홍 작가처럼 < PD수첩>에 청춘을 바친 한학수 피디의 결기 같은 것이 있었다. '한 번 일으켜봅시다 보란듯이. 피디수첩이 무엇인지 보여줍시다.'

"옛날엔 탐사보도의 최고봉이 < PD수첩>이었는데 지금은 존재감을 찾을 수 없지 않나. 이제 혐오까지 느껴지고. 시청자들 마음 속에서 다시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돼야 한다. 정말 요만큼도 성역 없이 국민들이 알고 싶어하는 진실을 보도하면 석달 안에도 인정해줄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계속 타성에 젖어 옛날에 하던 식으로 하면 10년이 돼도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건 시간의 문제는 아니다.

'MBC 몰락, 7년의 기록' 편을 했을 때 4명의 피디가 투입됐다. 다들 엄청 고생한 피디들이다. 열의 같은 것들이 넘친다. 시청자들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경쟁력을 갖추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다들 너무 굶주렸다. 7년 동안 제작 현장에서 배제돼 있어서 독이 엄청나게 올라있다. 프로그램 잘 만들겠다는. 물론 과잉 의욕으로 어쩌다가 헛발질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우수한 인력이 엄청난 열망을 갖고 프로그램에 임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방송사를 빨리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2012년 < PD수첩 >에서 해고된 후 다시 돌아온 정재홍 작가가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MBC PD수첩 사무실을 처음으로 찾아가 제작진들과 제작회의를 하고 있다.

2012년 < PD수첩>에서 해고된 후 다시 돌아온 정재홍 작가가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MBC PD수첩 사무실을 처음으로 찾아가 제작진들과 제작회의를 하고 있다. ⓒ 이희훈


 2012년 < PD수첩 >에서 해고된 후 다시 돌아온 정재홍 작가가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MBC PD수첩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전광판에서 '다시 좋은 친구 MBC'라고 적힌 문구가 나오고 있다.

2012년 < PD수첩 >에서 해고된 후 다시 돌아온 정재홍 작가가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MBC PD수첩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전광판에서 '다시 좋은 친구 MBC'라고 적힌 문구가 나오고 있다. ⓒ 이희훈


그는 지금까지 하던 일들을 모두 접고 한동안 < PD수첩>에 '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잃어버린 7년을 만회하려면 남들보다 적어도 몇 배 이상 노력해야 한다면서. 정재홍 작가가 다시 투입된 < PD수첩>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보여줄 수 있을까.

"권력형 비리 같은 것들은 < PD수첩>이 가장 강점이 있다고 본다. 예컨대 국정교과서라든지 4대강 사업 같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서 벌어진 권력형 비리들을 다루고 싶다. 그 분야가 < PD수첩>이 가장 경쟁력이 있는 분야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재홍 작가 PD수첩 MBC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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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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