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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책 표지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책 표지
ⓒ 책공장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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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서문에서 저자는 대뜸 독자들에게 묻는다.

"동물학대 문제에서 결백하고 무고한 사람이 있을까?"

나는 몇 년 전 채식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물에 대한 가책을 줄이기 위해서는 동물을 먹지 않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사람들의 식탁에 고기를 올리기 위한 시스템뿐만 아니라, 이미 우리 생활 속에는 동물을 '도구'처럼 활용하여 살아가는 방식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입고 있는 옷은 물론, 신발, 화장품, 실험, 오락과 취미의 영역까지도 동물과 관련이 없는 분야가 드물었다. 그 모든 분야에서 대개 동물은 태어난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방식대로 이용되었다. 결국 동물을 키우고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동물학대 문제에서 완전무결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동물이 전쟁에 얼마나 참혹하게 이용되었는지는 미처 짐작조차 해보지 못했다. '동물이 인간에게 희생되는 다양한 방식'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게 어쩌면 전쟁이 아닐까? 아무 상관없는 무고한 생명들이 인간들의 다툼에 희생된다.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는 전쟁이 발생하는 원인이나 그 안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신념 혹은 이해관계 등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참상 속의 동물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쟁은 인간만의 고통이 아니며, 동물들에게 적용되는 고통은 언뜻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다양하고 복잡하다. 머리글에서는 전쟁과 관련해 동물들에게 가해지는 위해를 다섯 가지로 분류해 소개한다.

부수적 피해, 고의적 공격, 버림받는 동물, 최전선 희생물, 무기 연구에 동원되는 동물이 그것이다. 때로는 전쟁을 통해 명예를 얻는 동물들도 있다. 그들이 조금도 원하지 않는 명예이자, 인간의 방식대로 해석된 결과라는 것은 명백하지만.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할까? 

어릴 때 전쟁 장면이 나오는 사극을 볼 때면 나는 늘 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겠지만, 말은 무슨 죄가 있다고 수없이 전쟁터로 달려들어 목숨을 잃어야 할까. 저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말이 죽어갈까.

실제로 말은 전쟁에서 가장 널리 이용된 동물이라고 한다. 신속한 이동을 위해, 또 짐을 나르기 위해, 혹은 대포를 끌기 위해 이용되었다. 징집되는 과정에서 말에게 충분한 생존 환경이 제공될 리 만무했다. 결국 전쟁터에 닿기도 전에 죽은 동물도 많다고 한다. 1차 대전 이후에도, 2차 대전에서도, 21세기에서도 동물들은 기계로 대체되지 않고 전쟁터로 내몰렸다.

동물 자체를 무기로 사용했던 경우는 더욱 참혹하다. 개는 폭발물을 짊어진 채 적진으로 파고들어 갔다. 2차 세계대전 때는 고양이가 물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하여, 고양이 몸에 폭탄을 묶어 군함 위에 떨어뜨렸다. 물론 고양이들은 물을 피해 군함 위에서 폭발하기는커녕 나치 군함이 보이기도 전에 정신을 잃는 경우가 더 많았다.

군대에서 동물을 전투 훈련에 이용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충분히 다른 기술로 대체 가능한 불필요한 화학 동물 실험이 관성적으로 이어지듯, 수많은 동물이 군대에서 무의미하게 소모된다. 동물을 학대함으로써 공격적인 정신 상태를 만들거나, 단지 '추측'만으로 실제 살아 있는 동물의 생명을 실험대에 올리기도 한다.

인간의 생명은 다른 종의 생명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그들의 생명을 인간의 다툼에 이용해도 되는 걸까? 미군은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 당시 폭발물을 찾기 위해 수천 마리의 개를 활용했지만 자국으로 수송하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이용이 끝난 개들을 몰살시켰다. 필요할 때에만 이용하고 다 쓴 물건 버리듯 그들의 생명을 패대기쳐도 인간이 아니라면 괜찮은 걸까?

동물에 대한 죄책감 없는 착취는 결국 '더 중요한 종'과 '덜 중요한 종'이 있다는 것을 분류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 동물에 대한 착취는 보통 인종차별을 받는 인간 타자에 대한 착취와 나란히 일어난다. 가령, 역사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육우 목장에서는 원주민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며 착취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는 이주민과 불법체류 노동자들을 도축장의 비인간적이고 극도로 위험한 환경에서 부린다.' (30p)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다른 모든 존재(동물과 자연세계를 아우르는 모든 것)를 희생시킨다. (중략)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인간의 이익을 모든 종과 생태계를 포함하는 모두의 이익 속에 둘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동물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 오히려 모든 종이 뒤얽혀 살아가는 생태계라는 혼합체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인간중심주의를 재구성해야 한다.' (34p)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생명과 환경에 인간이 우선한다는 것을 마치 진리처럼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이익을 위해 다른 종을 희생시키는 행위는 근본적인 평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약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완전한 해방이 이루어진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간들 스스로 의문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특정 부류는 약자를 이용할 권리가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결국 인간들을 위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완전한 해방이 이루어진 세계란, 어떤 존재의 젠더, 능력, 섹슈얼시티, 신체, 지적 능력, 종이 그가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이용되지 않는 세계다.' (25p) 

인간들의 세계에서도 인종차별이나 인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는데, 인간중심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저자의 견해처럼 '매우 어려운 일이고 때로는 불가능하다고 보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환경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홀로 생존할 수 없는 건 명백하기에,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희생시키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마하트마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다. 그러나 책 속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이기적인 사례를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우리의 세계가 정말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 고대부터 현대 최첨단 무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동물 착취의 역사

앤서니 J. 노첼라 2세 외 지음, 곽성혜 옮김, 책공장더불어(2017)


태그:#서평, #동물학대, #동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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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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