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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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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내려왔다. 부산에서 군대 선임이 결혼식을 한다고 서울에서 토요일 밤에 울산 집으로 왔다. 일요일 특별한 계획이 없던 우리 부부는 부산 예식장까지 아들을 태워주기로 했다.

부산에 도착하니 결혼식까지는 한 시간 가량 남아 있어, 근처 백화점으로 갔다. 내 구두를 하나 사려고. 그런데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아들 구두를 사 주기로 했다. 아들의 구두를 보니 뒤축이 많이 닳아 있어서였다. 뒤축이 닳은 것 말고는 새 것 같았다.

요즈음은 대학을 나와도 쉽사리 취직하기 어렵다.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아들은 창업을 선택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아들은 친구 두 명과 함께 영등포의 허름한 창고를 빌려 스스로 인테리어를 하고 가죽공방을 열었다.

창업 자금은 국가에서 진행한 창업 컨테스트에서 1등을 하여 받은 4천여 만 원으로 충당했다. 부모의 도움 하나 받지 않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아들이 무척 대견했다. '저 구두를 신고 얼마나 돌아다녔으면 뒤축이 저리 닳을까' 하고 생각하니 안쓰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창업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될 때까지는 무척 힘이 들었다. 언젠가는 머리에 원형탈모가 온 적도 있었다. 그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쓰고 많이 쫓아다니는 것 같다. 그래도 아들은 언제나 씩씩하다. 아들에게 전화만 오면 똑같은 대화를 반복한다.

"일은 잘 되나?"
"예, 열심히 하고 있어요."

구두를 사 주니 아들은 아주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새 구두를 산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이것이 원시시대부터 유전자에 각인된 부모의 마음이리라. 난 아들의 구두를 수선하는 곳에 가져가 뒤축을 갈았다. 뒤축을 갈고 나니 새 구두나 다름이 없다. 아침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저예요."
"그래, 벌써 일났나?"
"요즈음 여섯 시만 되면 일나요."
"글나, 많이 부지런해졌네. 니 구두 뒤축 갈았다. 갈고 나니 완전 새 구두네."
"아빠, 그 구두 진짜 괜찮은 구두예요."

본의 아니게 요즘 젊은 청년들이 괜찮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구두를 신게 되었다. 구두를 신고 거울 앞에 서니 키도 더 커져 보인다. 아들 덕분에 젊어진 기분도 들었다. 지금 구두를 신은 채 글을 쓰는데, 아들의 촉감이 발을 타고 심장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태그:#CYYOU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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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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