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조금 더 지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김지원(보컬), 김진아(기타), 이현준(드럼)으로 구성된 록 트리오 빌리카터의 정규 1집 <히어 아이 앰(Here I Am)>의 포문을 여는 <롤린 블루스(Rollin' Blues)>를 듣는 순간 후끈 달아오른 공연장으로 순간이동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이어진 <러브 앤 해트레드(Love And Hatred)> <(레이지 토크(Lazy Talk)>의 쉴 새 없는 질주와 온전한 에너지는 필자를 무아지경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당시 연말을 앞두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 앨범을 소개하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다. 아직 안면도 없는 사이인데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2017년 연말에 다시 그 밴드가 돌아왔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장의 EP와 함께.

 록 트리오 빌리 카터

록 트리오 빌리 카터 ⓒ 일렉트릭뮤즈


빌리카터는 2015년 6월 <레드(The Red)>라는 데뷔 EP를 발매한 이후 주목할 신인으로 눈도장을 찍었고 이듬해 1월 두 번째 EP <옐로우(The Yellow)>를 발표하며 활동 범위를 넓혔다. 이번에 발매된 EP <오렌지(The Orange)>와 <그린(The Green)>은 EP 시리즈의 연장선으로 봐도 무방하다.

밴드 본연의 에너지에 집중하며 다양성을 과시한 정규 1집과 달리 EP 시리즈는 지향점이 좀 더 명확하다. 빌리카터는 "꽃을 상징하는 <오렌지>에서 밴드의 트레이드마크인 강력한 에너지와 묵직한 사운드를, 풀을 상징하는 <그린>에서는 정적이고 깊이 있는 사운드를 담으려 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상반된 사운드와 이야기는 결국 접점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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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뮤즈 ⓒ 윤태호


<오렌지> EP의 사이키델릭 사운드는 어둡고 무겁다. 7분을 훌쩍 넘기는 <화장(花葬)>부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여러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 중 '가스라이팅'에 대해 이야기하는 곡이다. 시니컬한 <연옥>은 기묘한 사운드가 넘실거리며, <너의 꽃>에서는 복잡다단한 감정이 전달된다. 기원부터가 젠더 권력 불평등의 증거인데도 아직 세상에 만연해있는 '혐오'를 마주하며 만든 <사창가에 핀 꽃>은 삶의 치열함과 장렬함을 담은 EP의 정점이다. 여성의 등급을 나누고 혐오할 권력을 쥐는 이들을 향한 분노의 노래는 비장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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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뮤즈 ⓒ 윤태호


<그린> EP에는 내면에 던지는 질문이 담겼다. <아이 워즈 본(I Was Born)>에는 세상의 시작에서 처음 보았던 기억들이, 사이키델릭 포크를 지향하는 <새벽의 노래>에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세상의 끝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콘크리트 시(Concrete Sea)>의 실험을 거친 뒤에는 <저 아이만이 진실이랴>를 통해 희망과 진실을 찾는 질문을 던진다. 

여러 밴드에서 연주자로 활동 중인 동시에 빌리카터의 열혈 팬임을 자처하는 음악애호가 송상희씨는 "그들은 전형과 비전형의 화학반응이 빚어낸 록의 만화경 같은 밴드"라며 깊은 애정을 과시했다. 2018년이 더 기대되는, 최대한 빨리 공연장에서 만나고 싶은 밴드다.


음악 인디밴드 빌리카터 일렉트릭뮤즈 BILLY CA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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