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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손모아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뭔가를 열심히 긁고 있는 그의 모습은 모래밭에서 모래를 파며 노는 장난꾸러기 아이 같았다. 긁고 있는 게 뭔지 궁금해서 옆으로 가 살펴봤다. 그는 어깨를 돌려 감추려고 했지만 까맣게 탄 음식이 접시에 담긴 것을 숨기지는 못했다. 전자레인지가 음식을 태울 수도 있다는 걸 그는 몰랐던 모양이다.

이주노동자쉼터에 온 지 보름도 더 지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캄누엔(가명)이 실내에서도 한 손에 장갑을 끼고 있는 이유는 동상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상으로 인해 생긴 흉터를 가리기 위한 목적이다.

그가 처음 쉼터에 왔을 때는 장갑을 낄 수 없을 정도로 손등은 진물이 흐르고 있었고, 손가락엔 터지지 않은 물집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사연을 모르면 영락없이 화상 때문에 생긴 상처로 치부했을 터였다.

캄누엔은 미나리 밭에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 해질 때까지 물을 묻히며 작업하는 탓에 손과 발이 퉁퉁 부었다고 했다. 하루 종일 허리 숙여 일하면서 허리통증을 하소연하기도 했지만, 사장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과 손등에서 진물이 나면서 누가 봐도 일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숨길 수 없을 지경이 되자 이직을 허락했다.

첫 날 얼어 터진 손등을 보며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지만, 사연을 다 듣기에는 그의 한국어가 너무 서툴렀다. 쉼터 계단을 오르는데 2층쯤에서 가방 무게 때문인지 모르지만, 숨을 헉헉거리다 걸음을 멈췄던 그였다. 그 체력으로 농사일을 어떻게 했을까? 일하느라 체력이 다 떨어졌을까? 그의 사연을 듣기까지 보름이 걸렸다.

물집이 터지고 진물이 사라진 상태지만 흉터가 남았다.
 물집이 터지고 진물이 사라진 상태지만 흉터가 남았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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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닭고기마저 손사래 쳐야 하는 이유

석 달 가까이 구직활동을 하다 겨우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소피아가 마지막 밤을 보내며 친구들에게 한 턱 낸다고 했다. 오랜 실직으로 한 푼이 아쉬울 그가 치킨을 샀다. 월급이나 받고 쏘라고 했지만, 한사코 같이 있던 친구들을 대접하고 떠나고 싶다며 고집한 일이었다. 그렇게 마련된 자리였는데 캄누엔은 치킨을 입에 대려고 하지 않았다. 소피아는 순간 '아차' 싶었다. 너무 들떠 있어서 캄누엔의 형편을 살피지 못했다는 걸 직감했다.

동상에 걸린 캄누엔은 벌써 한 달 넘게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 원래 먹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닭고기라면서도 손사래 치는 이유가 있다. 캄누엔은 음식에도 궁합이 있다고 믿는다. 동상에 걸려 약을 먹는 동안 찬 음식을 피하려다 보니 입에 군침이 돌아도 마다하고 있다. 돼지고기 역시 찬 음식이라며 피하고 있다.

캄누엔은 프놈펜에서 네 시간 거리의 시골에서 자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짓는 부모를 떠나 일본 오토바이 부품 조립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회사에는 또래 여자아이들이 많았다. 한 달 꼬박 일해도 손에 쥘 수 있는 목돈은 없었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남동생 학비와 함께 용돈을 보내고 나면 친구들과 간식 사 먹을 여유도 없었다. 덕택에 남동생은 고등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동생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한국어를 배웠고, 외국인 고용허가 이주노동자로 선발되었다. 서울의 한 가구공장에서 일하게 된 동생이 보내온 소식은 놀라웠다. 동생은 캄누엔이 가장 많이 받았던 월급의 10배가 넘는 급여를 받고 있었다. 캄누엔은 동생에게 자신도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 캄누엔에게 부모님은 동생이 외국에 가 있으니, 언니처럼 고향에서 농사를 도우는 게 어떠냐고 했다. 언니는 중학교 밖에 졸업하지 않았고,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동생이 한국으로 가기 전까지 실질적인 가장 역할은 캄누엔이 해 왔었다. 일본인이 세운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캄누엔은 한국이라고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동생이 알려준 방법대로 고용허가제 한국어 시험 준비를 부모님 몰래 시작했다. 동생이 한국에 간 지 만 2년이 될 즈음 캄누엔은 한국에 농업이주노동자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공장에서 일하기를 원했지만, 어려서부터 해 왔던 농사일이라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지난 8월 입국했다.

일하게 된 곳은 전주의 미나리 밭이었다. 논에서 캔 미나리를 비닐하우스에서 다듬고 포장하는 일을 아주머니들과 함께 하는 곳이었다. 논에는 주로 남자들이 들어갔지만, 일이 많을 때는 여자들도 거들어야 했다. 농사일이란 게 부지런만 떤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경험으로 알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한국에서와 같은 추위는 난생 처음이었고, 손이 얼었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요령을 알려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손발이 얼어 가렵고 부어올라서 사장에게 말을 하면 '잘 씻으면 된다'는 말만 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흘러들었다. 시간이 해결하겠지 하면서도 통증과 가려움증은 점점 심해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장갑을 낄 수 없을 정도로 물집이 커졌을 때 아주머니들이 난리를 쳤다.

캄누엔은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손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놔뒀다며 자신을 나무라는 것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발도 똑같은 증상이라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그날로 사장은 캄누엔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오라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전주에서 그가 의지할 곳은 없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용인에 이주노동자쉼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작정 짐을 챙겨 출발했다.

치료를 받고 증상이 완화된 상태이긴 하지만 여전히 동상 흔적이 보인다.
▲ 손발 동상 치료를 받고 증상이 완화된 상태이긴 하지만 여전히 동상 흔적이 보인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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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추워져서 사람들 옷차림이 한겨울임을 알 수 있는 때였다. 반면 캄누엔의 바지는 한여름에나 어울릴법한 얇은 운동복이었고, 신발은 구멍이 숭숭 뚫린 플라스틱 슬리퍼였다. 아직 겨울 채비를 못했던 그는 캄보디아에서 올 때 입고 있던 옷과 신발 그대로였다.

동상 걸린 손발로 쉼터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캄누엔은 주사 맞고 약을 먹으면서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그러나 한참 멋 부리고 싶을 20대 아가씨 캄누엔은 흉터가 남은 손을 남에게 보기기 싫어 손모아장갑을 끼고 생활한다. 쉼터에서 무료진료봉사를 하는 교회에서 장만해 준 예쁜 손모아장갑은 아프지 않고 쉽게 낄 수 있다. 그렇다고 손모아장갑이 좋아서 끼고 있는 아니다.

동상 걸린 게 눈에 보이는데도 찬물에 일 시킨 사장님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양 손등과 손가락에 물집이 부풀어 오르고 진물이 나는데도 정말 몰랐을까? 전쟁통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엄동설한이라지만 일하면서 동상이라니, 이 정도면 이주노동자 현실은 한국전쟁 때와 다를 바 없다.

첫 눈에 보기에도 손을 움츠린 자세가 이상했는데, 몇 달을 같이 일한 사람이 몰랐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고용허가 이주노동자를 놓지 않으려는 사장은 아픈 사람을 붙잡고 일을 시키면서도 건강보험이나 산재 가입도 하지 않았다.

농축산 등의 사업자는 사업주 부담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고용해도 직장 건강보험 가입을 대체로 꺼린다. 건강보험은 모든 사업장에서 의무 가입하도록 돼 있지만, 제도적으로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좀 더 정확히는 강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고용노동부가 의무 사항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의 외국인 고용허가를 박탈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농업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대체로 캄누엔과 다를 바 없다. 

캄누엔은 사람이 참 반듯하고 예의가 바르다. 고향 집에서는 귀한 딸이요, 누이었을 그에게 이번 겨울은 시베리아 추위보다 무서울지 모른다. 쉼터에서 대한민국이 시베리아 같은 추위만 있는 곳은 아니라는 것을 그가 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태그:#이주노동자쉼터, #캄보이다, #동상, #고용허가제, #시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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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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