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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츄리와인 전경
 컨츄리와인 전경
ⓒ 김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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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였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때 영동의 한 젊은이가 미크로네시아로 끌려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로, 그것도 남의 나라 전쟁터로 가고 싶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리라.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생명을 담보로 한.

그래도 젊은이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전쟁터가 아닌 미크로네시아의 포로수용소에 배치됐던 것이다. 그곳에서 젊은이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서양 사람들을 만났다. 그곳 포로수용소에 영국과 스페인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포로수용소에서 스페인 장교에게 포도라는 과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으셨다고 합니다. 와인에 대해서도. 어렸을 때, 아버지께 그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고향인 영동군 주곡리로 살아 돌아온 젊은이는 1965년에 포도나무를 마당에 심는다. 그 젊은이는 김덕현 컨츄리 와인 대표의 할아버지 김문환씨다. 김 대표는 그때부터 컨츄리 와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굳게 믿는다.

충북 영동군 주곡리는 영동포도를 처음 재배한 '시배지'로 유명하다. 주곡리에서 포도를 처음 재배한 사람은 정은용씨다. 한 사람의 선택이 영동의 미래를 바꿨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는 전혀 몰랐겠지만.

정은용씨는 포도나무를 심으면서 이웃 사람들에게도 포도 재배를 권유했다. 김문환씨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김문환씨는 미크로네시아에서 만난 스페인 장교에게 포도나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포도 재배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아들 김마정씨는 설명했다.

김마정씨와 김덕현 대표
 김마정씨와 김덕현 대표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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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한 영동군은 2017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포도재배 면적의 9.5%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포도산지로 손꼽히고 있다. 영동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포도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 포도를 바탕으로 와인 양조를 시작, 영동은 한국의 보르도로 불리면서 한국와인산업의 심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영동에는 40개의 크고 작은 농가형 와이너리가 밀집해 있으며, 각 와이너리마다 개성이 강한 한국와인을 생산하면서 한국와인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영동군은 2005년, 우리나라 최초로 와인특구로 지정돼 와인산업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이런 영동에서 컨츄리 와인은 선두주자로 손꼽히고 있다. 할아버지 김문환씨는 포도 재배를 시작했고, 아버지 김마정씨는 와이너리를 설립했고, 손자인 김덕현 대표가 대를 이어 와인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대를 이어 와이너리 운영하는 추세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지만, 2010년에 김덕현 대표가 스물여섯 살의 젊은 나이로 와인양조에 뛰어들 때만 해도 그런 전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니 거의 없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김덕현 대표는 우리나라 와인 양조 2세대를 처음 연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컨츄리와인 생산설비
 컨츄리와인 생산설비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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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3일, 매서운 겨울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날, 컨츄리 와인을 방문했다. 와이너리 방문은 포도 수확을 앞둔 시기가 가장 좋다. 포도밭에 탐스럽게 열린 포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와이너리가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하다. 갓 수확한 포도로 와인 제조를 시작하느라 눈코 뜰 사이가 없기 때문이다.

겨울은 와이너리들이 가장 한가한 계절, 즉 농한기이다. 양조가 끝난 와인이 저장고에서 숙성되는 시기라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이럴 때 와이너리를 방문하면 느긋하게 와인을 시음하면서 와이너리의 속 깊은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을 수 있다.

컨츄리 와인은 영동역에서 자동차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서울에서 무궁화 열차를 타면 2시간 남짓이면 영동역에 도착한다. 영동은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경부선 열차가 운행돼 교통이 불편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컨츄리 와인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 담은 와인 벽화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역시 영동은 어딜 가나 와인의 흔적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 와인 1번지는 역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컨츄리 와인 생산시설
 컨츄리 와인 생산시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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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츄리 와인은 와이너리 바로 앞에 포도밭이 조성되어 있다. 매서운 추위가 기세를 떨치는 한 겨울이라 포도밭은 황량하기 짝이 없지만, 8월부터 10월까지 이곳에는 잘 익어 탐스러운 포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자태를 한껏 뽐낸다고 김덕현 대표가 설명한다.

"이곳에서 외국의 양조용 포도 7가지를 재배합니다. 카베르네 쇼비뇽, 리슬링, 메를로 등인데 팻말을 매달아서 소개를 하고 있죠. 리슬링은 청포도, 카베르네 쇼비뇽은 검은 포도라 모양이 다를 뿐 아니라 맛도 다릅니다. 손님들에게 양조용 포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포도를 재배하는 건데, 오시는 분들마다 무척이나 좋아하십니다."

김마정씨가 옆에서 덧붙인다. 와이너리 앞에 포도밭을 조성한 이유는 컨츄리 와인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볼거리와 함께 체험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와이너리를 방문해 와인 시음만 하면 밋밋하기 때문에 직접 서양 양조용 포도를 직접 눈으로 보고 맛도 볼 수 있게 포도밭을 만든 것이다.

"캠벨 포도는 8월말이나 9월초가 되면 수확이 끝나 그 이후에 와이너리를 찾아오는 손님께 포도밭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포도밭을 만들었어요. 이곳에서는 8월부터 10월 중순까지 수확기가 다른 다양한 양조용 포도를 보여드릴 수 있거든요. 포도는 품종마다 색깔이 다르고 맛이 다르기 때문에 손님들이 무척이나 좋아하시죠."

이번에는 김덕현 대표가 설명한다. 자부심이 한껏 묻어나는 얼굴로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와이너리 앞에 조성된 포도밭 외에도 포도밭이 4곳이 더 있으며, 그곳에서 매년 8톤 정도의 포도를 수확한단다. 수확한 포도는 전량 와인 제조에 소비된다. 그게 전부인가?

아니다. 그 외에도 영동 포도 20톤을 수매해서 와인을 만든다. 예전에는 포도를 더 많이 재배했지만, 와인 양조가 늘어날수록 포도 재배량을 줄이고 있다. 포도농사를 지으면서 와인양조를 하는 게 힘겹기 때문이다. 대신 부족한 양은 영동 포도를 수매해서 채운다. 영동와인은 영동포도로 만들어야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우리 와이너리는 전형적인 농가형 와이너리로 아버지, 어머니, 저 이렇게 세 사람이 포도 재배, 와인 양조, 와인 판매를 전담합니다. 생산량은 2만 병이 최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이상을 생산하려면 자동화설비 등을 들여놔야 하는데,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어요. 그래서 세 사람이 최대한의 효율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컨츄리와인 지하저장고.
 컨츄리와인 지하저장고.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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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발효실로 안내를 하면서 김덕현 대표가 설명한다. 조립식 패널로 지은 발효실은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아주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발효실 안을 가득 채운 스테인리스스틸 발효 탱크는 반짝반짝 윤이 난다. 발효실은 위생관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쓴다.

"발효 탱크에서 발효가 끝나면 와인만 따로 빼내 저온숙성실로 옮깁니다. 일부는 여기에 남겨 겨울 동안 여기서 숙성을 시키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온도가 낮아서 저온숙성이 가능하죠."

숙성이 끝난 와인은 병입을 한 뒤에 지하저장고로 옮겨 보관한다. 지하저장고에는 2천여 병의 와인이 늘 저장되어 있다. 천 병 정도 재고가 소진되면 병입을 해서 2천 병을 채운다. 지하저장고는 온도가 10도 내외로 늘 일정하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따로 냉난방을 하지 않아도 그렇다.


컨츄리와인
 컨츄리와인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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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욱 광명동굴 소믈리에의 와인 팁>

컨츄리 캠벨 드라이와인, 스위트와인 : 화사한 향과 무겁지 않은 캠벨 얼리 포도의 특징을 가장 잘 살려낸 컨츄리 캠벨 와인은 달지 않은 드라이 와인과 스위트한 와인 두 가지가 있다. 이 와인들은 캠벨 얼리 포도 특유의 농축된 붉은 과실 향과 맛이 균형 있게 조화되어 있어 마실 때마다 행복감을 준다. 가벼운 향취와 바디감은 한식요리와 전반적으로 잘 어울린다. 와인을 처음 마시는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컨츄리 산머루 드라이와인, 스위트와인 : 자연주의 와인을 표방하는 컨츄리 와이너리의 산머루와인은 머루 특유의 짙은 색감과 농축감, 검은 과실과 붉은 과실의 맛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묵직한 바디감과 강한 머루 향이 균형 있게 와인의 품질을 받쳐준다. 산도와 탄닌이 적절하여 소고기와 돼지고기 구이 요리와 잘 어울린다.

[대한민국 와인기행] 컨츄리 와인에 가다 ②로 이어집니다.


태그:#한국와인, #컨츄리와인, #김덕현, #영동,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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