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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페미니즘 이슈가 부상하면서 영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아는 페미'는 현재 페미니즘 운동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영페미니스트를 조명하고, 그들의 참신한 활동을 알리는 기획입니다. '무언갈 아는' 페미, '내가 아는' 페미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이 기사 한눈에

  • 페미위키 운영진 박열심씨는 '온라인 세상'을 아는 페미
  • 페미위키 운영진 박열심씨의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메갈리아가 생겼을 때'
  • 페미위키 운영진 박열심씨의 다음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페미위키가 잘되는 것'
페미위키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을 검색하면 '강남역 여성표적살인'으로 넘어간다.
▲ 페미위키 강남역 여성표적 살인 페미위키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을 검색하면 '강남역 여성표적살인'으로 넘어간다.
ⓒ 페미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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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붙인다는 건 생각보다 정치적인 일이다. 호명 주체의 세계관과 대상을 대하는 자세, 주체와 대상의 권력 관계가 깊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 여성이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화가났다"고 진술한 생면부지의 살인범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한국 최대 위키 '나무위키'는 2016년 5월 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다룬 항목에 '묻지마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페미위키'는 동일 항목을 '여성표적 살인사건'으로 기재했다. 항목의 목차 구성도 다르다(*위키 : 불특정 다수의 참여자들이 내용과 구조를 편집하는 온라인 백과사전. -기자주).

'페미위키'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므로 페미위키는 '기울어진 위키'가 될 것을 자처한다. 기존의 위키 시스템은 이용자의 자유로운 편집을 통한 편향 방지를 추구하지만, 다수가 지닌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 얼룩진 정보가 횡횅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 19일 기계적 중립을 지양하고 성평등을 지향하는 '페미위키'를 만든 박열심(활동명)씨를 만났다.

페미위키 로고
 페미위키 로고
ⓒ 페미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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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페미니스트가 됐나.
"페미니즘에 눈뜬 건 메갈리아 웹사이트가 생겼을 때다. 그때 사이트 글들을 읽으며 많이 공감하고 분노했다. '내가 이런 점 때문에 불편하며 살았구나' 깨달으면서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했다."

- 페미위키를 만들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
"작년 강남역 살인사건 후에 온라인에서 굉장히 많은 난파전이 벌어졌다. '여성혐오 범죄'인지 아닌지 키배(온라인 언쟁)를 벌어는데 많은 남성들이 나무위키를 근거로 가져왔다. 정신과 의사나 검찰이 내린 결론을 레퍼런스로 가져오면서 '이거 봐라, 여혐 범죄 아니거든?' 이런 식으로. 그때 문제가 있다는 걸 느꼈다. 나무위키는 남성들만 이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가장 많이 사용되고 규모가 큰 위키인데, 그런 곳의 정보가 남성 중심적으로 꾸려져 있구나 싶었다."

열심씨가 총대를 멨다. 페이스북에서 성평등한 위키를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순식간에 서른 세명이 함께하겠다고 모였다. 그만큼 기존 시스템에 문제의식을 느끼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일 테다. 지난해 문을 연 '페미위키'는 현재(2017년 12월 27일 기준) 1,504명의 참여자와 8,195개의 문서를 보유하고 있다.

- 문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다.
"가입을 하고 기여자(*위키 편집자를 이르는 말)가 되면 누구나 편집할 수 있다. 누군가 만들고 싶은 항목이 있어서 올리면, 거기에 살이 붙는 식이다. 이미 기재된 내용과 의견이 다르면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고 다른 내용으로 문서가 바뀌기도 한다. 그런 걸 '편집 경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기여자분들은 보통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정보로 문서를 만드는 것 같다."

-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딱히 관리하지 않는다. 위키라는 게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정보 매체다 보니 이용자에게 맡겨두는 게 있다. 맘에 안 들거나 오류가 있으면 기여자들이 스스로 고쳐나가는 구조다. 그 대신 페미위키 운영진이 항상 상주하면서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건 있다. '반달'들을 잘라내는 관리는 우리가 하는 거다."

- '반달'이 무엇인가?
"소위 말해 '어그로꾼(시비 거는 사람)'이다. (페미위키 관리 페이지를 보여주며) 여기 보면 대량으로 반달이 가입한 기록이 있다. 같은 아이피로 갑자기 대량 가입이 됐는데 닉네임이 '개꿀빠니즘', '사회분탕페미니즘', '유사인류메쿠웅쾅', '김치가진짜더럽게많네' 이런 식이다. 대개 반달들은 의도적으로 닉네임에서부터 반달임을 알려서 가입 시점에서 잡아내는 경우가 많다. 문서 훼손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그런 게 눈에 띄면 바로 삭제해서 청정하게 유지한다. 페미위키의 기본 원칙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차단한다."

- 페미위키 기여자는 대부분 페미니스트일 텐데, 최근 넷페미 내에서도 논쟁이 잦다. 그런 건 토론에 맡기는지?
"그런 편이다. 한 번은 모 사이트 유저가 자기소개 문서에 쓴 글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페미위키가 그런 걸 막아야 하지 않냐는 지적이 있어서 운영진 차원에서 논의를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는 논란글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위키 관리자 차원에서는 이용자들의 토론에 맡겨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다수였다. 실제로 그 유저에 대한 차단 의결이 나왔는데 반대가 많아서 부결됐다. 그런 식으로 이용자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겨서 하는 게 결국은 맞다고 본다."

- 운영진들이 동시에 기여자로 활동하기도 하던데, 열심 씨가 작성했던 문서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기여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나도 문서 참여를 많이 했다(웃음). 제일 애정이 가는 문서는 성노동 관련 부분이다. 거의 다 내가 채운 것 같다. 성노동 경험이 있어서 그 부분에 관심이 많고 지식도 있어서 상세하게 정리를 했다. 작성 당시에는 별일이 없었는데, 다 하고 나서 다른 위키에 '페미위키 운영진 중에 성매매 여성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비난 조로 하는 항목이 추가됐더라."

- 종종 페미위키 기여자들이 다른 위키에서 '편집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올해 나무위키에서 있었던 '젠더 이퀄리즘 날조 사건'이 기억난다.
"내게도 인상적인 사건이었다. 시작은 어떤 분이 갑자기 페미위키에 가입해서 '페미니즘은 틀렸고 젠더 이퀄리즘이 맞는 거고, 페미니즘의 시초는 이갈리타리아리즘이다'는 논리를 폈다. 그걸 보고 페미위키 운영진이 나무위키에 가서 '젠더 이퀄리즘' 항목을 훑었는데 거의 다 근거가 없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토론을 걸어서 논파하고 문서가 뒤집어졌다."

- 나름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고 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웃음) 그때 '젠더 이퀄리즘' 개념이 안티 페미니즘 세력의 상징처럼 자리했다. 지능적인 방식이었다. 그걸 페미위키 운영진 한 명이 가서 논파를 다 한 건데, 당시 리플도 엄청 달리고 토론글이 수천 개가 생겼다. 하나하나 읽으면서 통쾌하고 재밌었다. 지금도 나무위키 들어가면 그 과정을 다 볼 수 있다."

지난 4월, 페미위키의 '에디터톤' 행사 현장 사진.
 지난 4월, 페미위키의 '에디터톤' 행사 현장 사진.
ⓒ 페미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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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걸 보면 페미위키가 온라인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 같다.
"페미위키는 (여성들의 투쟁에서)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런 역할을 하길 바라는 것도 있다. 논쟁이 벌어졌을 때 안티 페미니즘 세력이 나무위키를 근거로 가져온다면 우리는 페미위키를 레퍼런스로 사용하는 거다. 싸움의 무기가 된달까?"

- 약자의 관점에서 아카이빙을 한다는 의의도 있다.
"개별 사건이 모이면 서사가 되지 않나. '#문단_내_성폭력'을 비롯해 각계에서 성폭력 폭로가 이어졌을 때도 여러 사건이 드러나니까 뉴스에 보도되고 했다. 그렇게 서사가 되면 약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약자와 소수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이니까. 여성의 목소리, 성소수자의 목소리, 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 페미위키가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공개적으로 가시화해주고, 그들의 편에 서는 역할을 하고 싶다."

- 그동안 총대를 메고 열심히 달려왔다. 페미위키가 열심 씨의 삶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페미위키를 하기 전에는 되게 급진적인 성향이고 분노가 많았다. 그런데 페미위키 운영을 한 후로 데이터 중심, 정보 중심적인 성향이 됐다. 좀 더 냉정해지고 팩트를 중시하게 됐달까? 위키를 관리하다 보니까 위키랑 비슷한 성향이 된 것 같다(웃음)."

- 앞으로 열심 씨에게 찾아올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어떤 것이었으면 좋겠는지.
"페미위키가 잘되는 거다. 처음 시작할 때도 최종적인 목표는 한국의 최대 위키가 되는 거였다.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웃음). 나무위키, 위키백과랑 견줄만한 거대한 위키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다. 아직은 노력이 많이 필요한 상태다. 1년밖에 안 됐으니까(웃음). 일단은 유입을 늘려서 하루 사용자 수를 늘리는 게 목표다."

- 열심 씨는 무엇을 '아는 페미'인가.
"'온라인 세상을' 아는 페미. 온라인 페미니즘의 역사에 관해 아카이빙하는 활동을 해왔으니까 그런 걸 잘 알고, 페미위키도 거기에서 한 축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마지막으로 페미위키 입문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진짜 정말 다들 평범한 페미니스트 분들이 페미위키에서 활동하고 있으니까 함께 해주세요! 처음엔 낯설어도 하면서 배울 수 있고 하고 나면 익숙해져서 위키 하는 게 일상이 될 거예요! 위키도 커뮤니티의 일종인 것 같아요. 위키 커뮤니티 많이 찾아주셨으면 합니다(웃음)."


태그:#페미위키, #위키, #나무위키, #온라인 백과, #온라인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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