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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13년 10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삼성신경영 20주년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부축을 받으며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13년 10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삼성신경영 20주년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부축을 받으며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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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법으로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일부 차명계좌에 든 돈 절반을 과징금으로 거둘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 앞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관련 논란에 대해 국회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는데, 이런 발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차명재산을 세금으로 걷을 근거가 되는 현행법을 살펴보자. 금융실명법에는 '금융기관은 기존 거래자가 이 법 시행 후 명의를 실명으로 전환하는 경우, 긴급명령 시행일의 금융자산 100분의 50을 과징금으로 원천 징수해 정부에 납부해야 한다'고 돼 있다.

지난 1993년 8월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 형태로 금융실명제를 시행되면서 금융실명법을 만들었다. 긴급명령 당시 정부는 두 달 동안 기간을 두고, 실명이 아닌 금융자산을 실명으로 바꾸라고 권고했다. 그 이후에 비실명자산을 실명으로 바꾸면 이에 과징금을 물리겠다고 했다. 지금은 금융실명법 이전에 만들어졌던 비실명자산을 실명으로 전환하면 그 자산의 절반을 과징금으로 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건희 차명계좌 중 금융실명법 이전 개설 계좌는 과징금 부과 가능

이 법을 적용하면 이 회장의 일부 차명계좌에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판단이다. 지난 2008년 4월 삼성 특별검사팀에서 밝혀낸 이 회장 차명계좌 가운데 금융실명법 이전에 만들어진 차명계좌는 모두 20개였는데, 이 가운데 절반을 세금으로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김남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부회장은 "(이 회장이) 타인 명의로 주식이나 예금을 보유했고, 이는 검찰 조사 등으로 밝혀졌다"며 "그렇다면 이건 비실명자산인 것이고, 금융실명법에 따라 이 계좌가 1993년 이전에 개설된 것이라면 과징금 50%를 부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과징금을 부과하는 주체인 금융위원회는 그동안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비실명자산으로 볼 수 없다고 버텨왔다. 홍길동, 둘리 등 가명으로 만들어진 비실명계좌만이 실명으로 바꿔야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달리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된 계좌는 실명으로 전환할 의무가 없고, 이 회장의 차명계좌도 그러하다는 게 금융위 쪽 논리였다.

이에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당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회장 차명계좌도 비실명자산이므로, 여기에 붙은 이자소득 등의 90%를 세금으로 거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 국세청 조사,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차명계좌임이 밝혀진 것들은 90%의 세율을 매기는 차등과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주장에 금융위 쪽도 동의했고, 이후 국세청에서 세금 징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같은 차명계좌에 과세는 가능한데 과징금은 어렵다는 금융위

21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정부서울청사 통합브리핑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1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정부서울청사 통합브리핑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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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금융위는 이 회장 차명계좌에 대해 차등과세는 가능하지만, 과징금 부과는 어렵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난 21일 금융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최 위원장은 "금융실명법 이전에 만들어진 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입법적으로 (국회에서) 논의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금융위 내부에서 결정하기 어렵다고 돌려 말한 것이다.

이는 앞서 금융위의 민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아래 혁신위)는 이 회장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하라고 권고했다. 최 위원장 발언은 이같은 권고와 다소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혁신위는 보고서에서 "삼성 특검으로 드러난 금융실명제 이전 개설 차명계좌는 객관적 증거에 의해 비실명이 드러난 것이므로, 과징금 및 소득세 차등과세 부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했다.(관련기사: "키코 사태 재조사하고 이건희 차명계좌 과징금 부과해야")

최 위원장 발언에 윤석헌 혁신위원장은 "우리가 보고서에 '객관적 증거가 드러난 경우'라는 표현을 썼는데, 특검 결과보다 더 객관적인 증거가 어디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똑같은 (계좌인)건데 소득에는 중과세를 부과하고, 그 원금에 대해선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것은 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동창회 계좌에도 과징금 부과? "검찰조사로 드러난 이건희 계좌와 별개로 봐야"

또 앞서 최종구 위원장이 "동창회 이름 등으로 개설되는 계좌도 굉장히 많다"며 "(이 회장의 계좌를 포함한) 모든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하게 되면 모든 차명계좌가 불법이 된다"고 언급한 데 대해서도 윤 혁신위원장은 조금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검찰 조사 등으로 차명계좌로 밝혀진 것은 별개로 봐야 하지 않느냐'는 기자 질문에 윤 위원장은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A와 B가 있는데, 저희(혁신위)는 A라고 생각한다고 한 것입니다. 금융위가 말하는 B가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닙니다. 사정이 있겠죠. 그렇지만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저희는 A입니다."

다른 전문가도 이 회장 차명계좌에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다는 견해를 내보였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소득세 차등과세는 하겠다는 것인데, 그걸 하려면 그 계좌가 비실명자산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차등과세 때는 (이 회장 차명계좌를) 비실명자산으로 보면서, 과징금 부과할 때는 실명자산으로 보겠다는 것"이라며 "똑같은 계좌인데,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또 김남근 민변 부회장도 "차등과세 적용 대상이 된다는 것은 과징금 부과 대상도 된다는 것"이라며 "그런데 (과징금 부과를 위해) 입법이 필요하다는 말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선 금융위원장이 이야기를 잘못 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과징금 안 내려 사기 등 부정행위...시효 10년 적용해 지금도 징수 가능"

이 같은 전문가들 의견대로 현행법상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에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다면, 부과 가능한 기간이 남아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에 대해 전성인 교수는 "시효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과징금은 (비실명계좌를) 실명으로 전환한 날에 부과하게 돼있다"며 "그 때부터 10년이 아직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이 회장 차명계좌의 돈이 빠져나간 시점이 지난 2008년 삼성 특검 이후라고 추정했다. 전 교수는 "특검 발표일이 2008년 4월인데, 그 뒤에 (이 회장이) 실명전환 하지 않고 돈을 빼지 않았느냐"며 "계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대개 2008년 하반기, 20009년 초 정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를 기준으로 10년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이렇게 부연했다.

"정상적으로 실명 전환했으면 과징금을 냈어야 했는데, 과징금을 포탈하기 위해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싹 뺐거든요. (차명)계좌를 (여러 계좌에 나눠) 유지하는 행위도 사기 등 부정행위로 인한 조세 포탈로 보지만, 인출할 때 꼼수로 인출한 것도 사기 등 부정행위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과징금을 안 내기 위해서입니다. 자기 이름으로 실명 전환하겠다고 해놓고, 직원 명의나 중도 인출이나 이런 방식으로 한 것이니 사기 등 부정행위에 포함됩니다."

통상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기간은 5년인데 사기 등 부정행위가 있을 경우 그 기간은 10년으로 늘어난다. 삼성 특검팀에서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밝혀낸 시점이 2008년이므로 징수 시효를 10년으로 적용하면 내년 정도까지 과세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실명법에는 과징금 징수 등에 대해 국세징수법 등을 준용하며, 이 경우 국세는 과징금으로 본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과징금도 세금처럼 징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같은 전문가들 지적에 대한 금융위원회 쪽 입장을 들으려고 담당자와 수 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태그:#이건희, #차명계좌, #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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