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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2018년 신년 기획으로 '아이가 행복입니다'라는 주제의 기획을 연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2018년 신년 기획으로 '아이가 행복입니다'라는 주제의 기획을 연재하고 있다.
ⓒ 조선일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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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신년기획으로 '아이가 행복입니다'라는 기사가 연재되는 것을 봤다. 기사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25~45세의 97%가 아이가 있어 행복하다고 답했다는 조사 결과를 밝히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의 존재를 '귀한 선물'이자 '행복'으로 여긴다고 한다. 물론 아이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보통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왜 우리 사회는 점점 출산률이 낮아지고 많은 부모나 비혼자들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걸까.

'실제 부부들이 아이를 키우며 삶의 질이 좋아지고 더 행복해졌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는 해당 기사 시리즈는 어쩐지 얼마 전에 '며느라기' 웹툰에서 본 댓글을 연상시켰다. '주변 사람들에게 결혼하라고 추천하는 건, 나 혼자 겪기 억울하니 다 같이 죽자고 물고 늘어지는 것'이라는 내용의 댓글이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궁금해진다. 그저 보통의 '멘탈'로도 정말 행복하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인지가.

요즘 우리 엄마는 결혼 3년차인 나를 볼 때마다 아기를 낳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집요하게 묻는다.

"아이를 낳아야지. 그래야 진짜 행복해져."
"엄마, 난 지금도 충분히 행복해. 아기 낳으면 오히려 힘들 것 같아."
"그래도 낳아 보면 다를걸?"

자식이 있는 삶을 강력 추천하며, 아기를 낳아야 비로소 행복해진다는 엄마의 말이 한편으로는 고맙다. 나의 존재가 엄마에게 행복을 줬다는 말로도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와 나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시대 변화의 간극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좀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작년 설에는 시아버지가 '좋은 소식 없느냐'고 물어보셨다. 남편이 대신 "저희는 아기 가질 생각이 없어요"라고 대답하자 시아버지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대꾸했다.

"장손이 대를 이어야지,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부부가 아기를 낳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일까. 나는 아기를 낳으면 꼭 행복해질 거라고 낙관하지도 않고, 남편 집안의 대를 이어주기 위해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발상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아기를 낳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부부 두 사람이 느끼기에 긍정적인 행위여야 하며, 태어날 아기에게도 적어도 나쁘지 않은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결혼과 출산이 내게 주는 변화

결혼 후 나는 예기치 못했던 수많은 아내로서의 의무와 며느리 도리에 부딪쳤다. 결혼했으니 이제 너희 마음대로 다 할 수는 없는 거라던 시어머니의 말씀엔 당신이 겪어온 무게에 대한 한숨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

나는 여태까지 자아실현과 행복을 위해 살아왔는데, 결혼하니 갑자기 남편을 섬기고 시부모님에게 효도해야 하는 역할이 부여되었다. 그 사소한 일들은 나 자신의 지위가 낮아지고 자아가 퇴행하는 기묘한 기분으로 이어졌다.

아내와 며느리에 대한 낡은 인식에 싸워가면서 살아가기도 버거운데 이제 다음 미션이 주어진다. 결혼을 했으면 애를 낳아야지, 애를 안 낳을 거면 결혼은 뭣 하러 했느냐는 것이다. 아기를 낳지 않고 살겠다는 글을 쓰면 지나가는 댓글마저 '아기를 낳아봐야 진짜 세상을 안다'고 훈수를 둔다.

"우리 부부가 아기를 낳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일까."
 "우리 부부가 아기를 낳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일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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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는 것의 행복을 나는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 후 내 삶이 정말로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인지, 세상을 향해 다시 한번 명확하게 묻고 싶다.

스물여섯에 결혼한 내 친구는 결혼 후 이직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갈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임신 계획은 있습니까?"

온 나라가 고령화를 염려하고 출산을 장려하는데, 일하고 싶은 20, 30대 여성이 직장의 문턱에서 듣는 첫 번째 질문이 임신에 대한 계획 여부다. 냉정하게 말해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섞여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일과 가정이 양립하기에 여전히 여성들이 느끼는 벽은 높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걸 엄마 혼자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육아를 아빠와 엄마가 함께 해야 한다는 당연한 전제를 아직은 사회가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 내가 잠시 일을 포기하고 출산 후 집에서 아기를 돌보고 있다면, 남편은 회사에서 야근이나 회식을 거부하고 '육아 때문에' 정시에 퇴근해 집에 올 수 있을까?

회사가 육아를 위해 퇴근하겠다는 남편의 말을 상식적으로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라면, 독박육아는 이미 예약되어 있는 셈이다. 가족과 멀어지고 외로운 아빠를 만드는 것도 결국은 그런 사회일 테다. 나는 육아를 내게만 떠맡기는 것이 결코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화살을 돌릴 곳이 없어 아마 그에게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아내와 엄마 이전에 내 삶이 보장된다면...

엄마니까 육아 좀 하면 어떠냐고, 대신 남편이 돈 벌어오지 않느냐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돈 버는 일이 곧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온종일 회사에 있다 왔으니 집에서는 좀 쉬어야' 한다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있다. 하지만 집에서 퇴근도 없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아내는 어떤가. 시어머니에게 "넌 집에서 놀잖니"라는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정에서 '벌이'를 담당하는 한 사람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간과하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나 역시 '변화'보다는 하던 일, 하던 돈벌이를 차라리 지속하고 싶다. 일을 그만두고 생전 처음 해보는 육아를 시작하는 변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안 그래도 불안한데, '집에서 노니까 좋겠다'는 소리까지 듣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육아를 해야 한다는 인식은 곧 남자는 중요한 일, 여자는 덜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그게 여자에게만 불합리하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성 차별적 인식은 결국 남녀 모두를 옥죄는 일이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 후 곧 일을 다시 시작한다고 하면 더욱 걱정이다. 양가 부모님들에게 육아를 떠맡기고 싶지는 않다. 어린이집에 보낸다 해도 번호표 뽑고 순번을 한참 기다려야 한다던데…. 우리 부부가 일과 육아를 모두 잘 해낼 수 있을까. 두 사람이 온 힘을 합쳐도 걱정인데 과연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는 있을까. 공동 육아, 반반 육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내 남편이 가부장적이거나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서가 아니다. 남자가 동등하게 육아에 참여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가 문제다.

남편과 둘이서 우리 나름의 방식대로 결혼생활을 해나가는 것은 어떻게든 가능하지만, 아기를 낳는다면 우리만의 세상에 우리 식대로 고립되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하고, 이해할 수 없는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 자꾸만 화를 낼 일이 생길 것이다.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기존의 가치관 속에서 결코 완전히 행복해질 수가 없을 것 같다. 아이의 존재가 내게 200%의 행복을 채워준다 해도, 차라리 나는 100%의 행복 속에서 개인의 만족도를 충족시키며 살고 싶다.

그렇다, 아기를 낳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다. 이건 아기를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기 어렵게 빚어져 있는 이 사회의 구조와 인식에 대한 포기다.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가 물려받아 겪어야만 하는 세상에 대한 이른 체념이다.


태그:#출산, #육아,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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