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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들의 떡국 나눔 행사에 새해 첫 날 점심시간에 경비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일하고 계셨다니.(초상권 보호를 위해 얼굴은 가려드렸습니다)
▲ 새해 첫 날, 한 자리에 모인 아파트 경비원 입주민들의 떡국 나눔 행사에 새해 첫 날 점심시간에 경비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일하고 계셨다니.(초상권 보호를 위해 얼굴은 가려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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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마무리하고 그 다음해를 시작하는 계절, 겨울. 아쉬움과 설렘 그리고 희망이 공존하는 요즘, 고용 불안을 안고 사는 이들이 있다. 바로 경비원들이다.

경비원들은 청소, 관리 업무를 기본으로 심야에 아파트 단지를 돌며 순찰 업무를 보고 끊임없이 오는 택배를 관리한다. 낙엽이 떨어지면 낙엽을, 눈이 오면 눈을 치우고 얼어붙은 얼음을 손수 깨는 일도 해야 한다. 쏟아지는 재활용품, 쓰레기 관리 업무도 봐야 하고 주차 관련 업무까지 관여해야 한다. 슈퍼맨이 따로 없다. 자신의 고용은 지킬 수 없는 슈퍼맨이랄까.

경비원들은 해마다 계속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최저임금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다음에는 최저임금 인상률을 살핀다. 최저임금이 오르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최저임금이 올라갈 때마다 경비원들의 불안감도 덩달아 올라간다는 것.

최저임금이 인상 되는 만큼 '일자리를 줄인다', '휴게시간을 늘려서 월급을 줄인다', '낮에만 경비업무를 하는 주간경비제를 도입한다'며 온갖 흉흉한 이야기들이 돈다. 그것 뿐인가. 경비원에 대한 입주자의 갑질 소식은 단골 뉴스가 된 지 오래다.

입주민과 경비원의 관계가 언제부터 '갑을 관계'로 굳어졌을까? 사실 평소에 깎듯이 인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새해를 맞이하며 색다른 이벤트를 준비해 보자는 같은 입주민인 지인의 아이디어에 마음히 동했다.

입주민과 경비원이 더 이상 '갑을관계'가 아닌 '상생'의 관계로 만들어보고자, 그리고 그동안의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몇몇 주민들과 함께 '아파트 경비원과 함께하는 사랑의 떡국'을 기획한 것이다.

새해 첫 날, 경비원들께 감사함을 표현하자는 떡국 나눔. 입주민들도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에 엘리베이터마다 알림을 붙였다.
▲ 경비원과 입주민이 함께하는 떡국 나눔 행사에 함께 해주세요 새해 첫 날, 경비원들께 감사함을 표현하자는 떡국 나눔. 입주민들도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에 엘리베이터마다 알림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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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어떻게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을까'였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1일, 입주민들이 직접 끓인 '떡국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마음도 나누자'는 방향이 잡히고 각자가 회원인 시민단체에, 그리고 노동조합, 노점상 단체에 요청하여 후원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부족한 실력이지만 직접 경비원분들께 드릴 초대장을 만들었다. 3일 동안 경비원분들을 직접 만나며 주민들이 떡국나눔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드리고 일이 힘드시진 않은지 물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평소에는 그저 '택배를 맡아주시고 우리 아파트를 지켜주시는 분'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다보니, 난데없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평소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고 계셨는지, 얼마나 세심하게 주민들을 위해 마음을 쓰고 계셨는지는 미처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입주민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자 모집 현수막을 달고, 모집 게시물도 만들어 엘리베이터마다 붙였다. '직접 참여는 못하지만 응원한다'는 문자부터 함께 하겠다는 연락도 오고. 표현을 하지 못할 뿐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다.

입주민들과 지인들까지 함께 자원봉사자로 나서 떡국 나눔 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 아파트 경비원들과 함께하는 떡국 나눔 입주민들과 지인들까지 함께 자원봉사자로 나서 떡국 나눔 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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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당일, 오전 4시 30분부터 천막을 설치하고, 육수를 끓이고, 떡국과 함께 먹을 굴전을 부칠 준비에 분주했다. 경비원들께서 드실 주전부리까지 챙기면서도 한켠에 걱정은 '과연 얼마나 오실까?'였다.

모두 오시겠다고는 했는데 조금만 오시면 어떡하지, 떡국 100인분을 준비하였는데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아침 교대시간인 오전 6시 그리고 점심시간인 12시, 많은 경비원분들의 방문으로 천막 안이 꽉꽉 들어찼다.

"고생 많으십니다."
"어떻게 이런 걸 할 생각을 하셨대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맛있어요." 

우리가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만든 자리에서 오히려 연신 "고맙다"는 말을 전하시는 경비원분들을 보며 울컥했다. 다 드시고는 기분 좋게 천막을 나서시는 모습, 바삐 초소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또 울컥했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우리 아파트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분들을 너무 당연한 존재로만 여겼던 것은 아닐까.

떡국 나눔 행사를 함께 준비한 아파트 입주민. 떡국 차림을 맡아 이 날 가장 바빴던 자원 봉사자였지만 표정 또한 가장 밝았다.
▲ 아파트 경비원과 함께 하는 떡국 나눔 떡국 나눔 행사를 함께 준비한 아파트 입주민. 떡국 차림을 맡아 이 날 가장 바빴던 자원 봉사자였지만 표정 또한 가장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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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압구정 현대아파트 아파트입주자대표회에서는 경비원 전원(94명)에게 이들을 해고하고 경비 업무는 용역업체를 선정해 맡길 것이라는 해고예고통지서를 보냈다고 한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최저임금인상' 그리고 '퇴직금부담증가'였다.

또 한 아파트에서는 장을 보고 오면 짐이 무거워 아파트 입구 비밀번호를 누를 수 없으니 아파트 경비원이 '알아서' 문을 열어주면 좋겠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그에 대한 처리결과는 '경비원을 교육시키겠다'였다. 마치 대한민국에 없어졌던 신분제가 다시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아파트 경비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단순히 내 택배를 맡아주는 사람? 순찰하는 사람?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는 사람? 우리는 아파트 경비원을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었을까. 무슨 직업을 갖고 있든, 어떤 일을 하든 우리 모두가 소중히 여기고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상에 당연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나도, 이분들도 그렇다.

새해 첫 날, 경비원분들께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휴식을 버리고 달려온 자원 봉사자들. 사진에는 안 보여도 더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주셨다.
▲ 아파트 경비원과 함께하는 떡국 나눔 행사 자원봉사자들 새해 첫 날, 경비원분들께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휴식을 버리고 달려온 자원 봉사자들. 사진에는 안 보여도 더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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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파트, #경비원, #떡국, #새해,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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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30대 청년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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