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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이 아름다운 풍광을 만드는 터키 중부지역.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풍광을 만드는 터키 중부지역.
ⓒ 류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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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한국 사람들이 이슬람교와 무슬림(Muslim·이슬람교도)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음 속에서 산다. 나 또한 그랬다. 터키를 여행하기 전에는.

우리가 거의 매일 접하는 TV 뉴스나 영화에선 "유일신 알라(Allah)를 신봉하라"고 외치며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향해 폭탄을 던지거나, 코란(Koran·이슬람교의 경전)을 교조적으로 해석해 폐쇄적인 태도를 취하며 여성의 인권을 억누르는 무슬림이 무시로 등장한다.

그러나 과연 모든 이슬람교 신자들이 그처럼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일까? 이 물음에 관해선 단호히 답해줄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지구 위에 사는 무슬림은 13억 명이 넘는다. 그들 중 탈레반(Taliban)이나 IS에서 활동하는 극단적이고 과격한 무슬림은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내 경험에 한정시키자면 이란, 말레이시아, 터키 등의 나라에서 만난 절대다수의 이슬람교 신자들은 선량하고 친절했다.

무슬림이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터키를 떠올릴 때면 길을 몰라 헤매는 여행자의 손을 이끌고 목적지를 찾아주던 아저씨와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리면서도 자기 손에 든 큼직한 빵을 낯선 외국인에게 나눠주던 아주머니가 자연스레 그려진다.

착하고 정직하게 살고 있는 무슬림들과 한 달 가까운 기간을 부대끼며 지냈던 몇 해 전 터키 여행은 그런 이유로 애틋한 그리움으로 남았다.

이스탄불 갈라타 다리 위에선 친절한 터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스탄불 갈라타 다리 위에선 친절한 터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 류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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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좁은 골목길에서 맛본 행복

아시아와 유럽의 가교인 터키 이스탄불은 1~2주 머무르는 것만으론 그 매력을 다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근사한 도시다. 한때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불렸던 동로마제국의 수도였고,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이스탄불이란 명칭은 무슬림이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스탄불이 가톨릭에게서 무슬림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대서양 바닷길이 열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거기서 출발한 배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의 나라에 가닿았다. 유럽의 남아메리카 침탈과 박해의 역사가 여기서 시작됐다고 하는 근거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 없이 500년의 시간을 오스만제국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 역할한 이스탄불.

터키를 여행할 당시 내가 묵었던 저렴한 호텔에서 5분 거리에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다는 이슬람 사원 술탄아흐멧 자미(블루 모스크)가 있었다. 지상으로부터 50m가 넘는 곳에 위치한 모스크의 지붕 위로 날아가는 비둘기를 보면서 김수영의 시 '푸른 하늘을'이 떠올랐다. 종교, 이념 따위와는 무관하게 자유롭게 사는 새들이 부러웠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터키 소도시의 전형적인 풍경.
 터키 소도시의 전형적인 풍경.
ⓒ 류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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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골목골목마다 들어선 고풍스런 카페와 바(BAR)에서 포도주와 커피, 설탕을 듬뿍 넣은 홍차를 거푸 마시던 즐거움을 잊을 수 없다. 한국에서의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그립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서 피우던 물담배. 뽀글뽀글 기포가 만들어내는 연기에선 달콤한 과일 냄새가 났고, 그 향기는 집을 떠나 길 위에서 지친 여행자를 포근하게 위로해줬다.

선수(船首)가 날렵한 유람선을 타고 이스탄불 아시아 지구에서 유럽 지구을 1~2시간쯤 오가던 저물녘의 낭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숙소에서 우연히 만난 스웨덴 여성 둘은 날마다 '석양 무렵의 싸구려 크루즈여행'을 다녀오는 날 보며 "어이 성식씨, 한국 남자들은 다 너처럼 촛불 켜진 로맨틱한 식당에서 포도주 마시고 해지는 어둑한 시간에 배 타는 걸 좋아해?"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답변을 내놓기가 어려웠다.

눈처럼 흰 석회석과 뜨거운 온천이 여행자를 유혹하는 파묵칼레.
 눈처럼 흰 석회석과 뜨거운 온천이 여행자를 유혹하는 파묵칼레.
ⓒ 류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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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 앞에서 손과 발을 씻는 터키 무슬림들.
 모스크 앞에서 손과 발을 씻는 터키 무슬림들.
ⓒ 류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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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발견되는 터키의 매력

비단 이스탄불만이 아니다. 기묘한 모습의 바위가 수십 km 이어지는 카파도키아에선 수 세기 전 만들어진 동굴을 새롭게 리모델링한 호텔에서 잠을 청했다. 그날 밤엔 내가 살아본 적 없는 아득한 원시 시대를 꿈꾼 듯도 하다. 매머드와 공룡이 출몰하는.

터키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이슬람 예배당(Mosque) 앞에서 만난 무슬림들 역시 기억 속에 선명하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모스크 앞 수돗가에서 손과 발을 씻던 그들의 뒷모습은 어떤 측면에선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신은 먼 곳이 아닌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

새하얀 눈처럼 느껴지는 석회암이 거대한 산을 뒤덮은 파묵칼레의 온천에 몸을 담그던 추억은 또 어떤가. 유럽과 북아메리카, 아시아와 중동에서 온 여행자들과 따스한 물속에 몸을 담글 때면 어린 시절 읽던 동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덩치 크고 선이 굵은 미남과 인형처럼 커다란 눈을 가진 미녀가 넘쳐나고, 거리를 걸으면 터키어는 물론 독일어와 프랑스어, 영어와 일본어까지 들려오는 이스탄불과 파묵칼레, 트라브존과 카파도키아. 나는 터키 관광지의 왁자지껄한 에너지가 좋았다. 그 시끄러움에서 매혹을 느꼈다.

홍합 속에 조미된 밥이 들어있는 터키 전통음식 '미드예 돌마'.
 홍합 속에 조미된 밥이 들어있는 터키 전통음식 '미드예 돌마'.
ⓒ 류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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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다. 한국에서라면 손사래를 칠 음식들도 달게 먹었다. 비린 생선인 고등어를 바게트 빵 사이에 끼우고 양파와 상추 등을 곁들인 '고등어 케밥'과 오이와 양배추를 식초와 끔찍한 붉은빛이 감도는 향료에 절인 터키식 피클, 거기에 홍합 속에 쌀을 넣어 익혀 레몬즙을 뿌려 먹는 미드예 돌마(Midye Dolma)까지.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적지 않은 경험을 한 터키 여행이었다. 내가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중부(仲父·아버지의 둘째 형)가 부러운 듯 말했다. "나도 더 늙기 전에 콘스탄티노플에 가보고 싶구나." 왜였을까? 그 말이 너무나 쓸쓸하게 들렸다. 형제 셋을 먼저 하늘로 보내고 이제는 혼자가 된 중부.

여든넷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돋보기 안경을 쓴 채 '캡틴 제임스 쿡(James Cook·1728~1779)'의 남태평양 여행기를 아침저녁으로 읽는 중부를 모시고 다시 한 번 터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오르고 싶다. 이 꿈은 이뤄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태그:#터키, #이스탄불, #무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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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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