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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엄마는 대형마트에 근무하고 있는 캐셔예요. 며칠 전 뉴스에 신세계 단축근무를 실행한다고 나왔습니다. 단축 근무를 하되 휴게시간을 2시간에서 1시간으로 단축한다는 거였어요.

엄마 얘기를 들어보면 계산대에 있는 돈을 환전하고 그런 작업들을 해야 하나봐요. 작업하고 화장실 갔다 오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쉬면 시간은 끝납니다. 근데 그 시간을 20분으로 줄였대요. 2시간근무 – 20분 휴식 - 2시간 근무, 이게 반복이 된다는데 진짜 50대 이상된 이모들은 정말 힘들어해요.

캐셔 이모나 엄마는 잘릴까봐 두려워서 자신의 생각을 얘기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멋있는 원더우먼 같은 엄마와 이모들의 힘든 상황을 제가 얘기합니다. 꼭 저희 엄마와 이모들의 휴게시간을 보장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마트 계산원을 엄마로 둔 한 자녀가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 청원글을 올렸다. 엄마 대신 나섰다는 그는 "원더우먼 같은 엄마와 캐셔 이모들의 휴게시간을 보장해달라"고 말했다. '두 아이 엄마' 이효숙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 가양지회장은 스스로 그 부당함을 이야기한 당사자다.

이효숙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가양지회장이 24일 '이마트 이중성 증언대회'에 참석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효숙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가양지회장이 24일 '이마트 이중성 증언대회'에 참석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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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차 된 이마트 직원이에요. 캐서로 13년을 일했는데 노동지회 설립했다고 검품 쪽으로, 다른 직원과 부딪히지 않는 섬으로 발령이 났어요. 제가 너무 억울하고 속이 상해서...노조 한다고 강제 발령내고, 조합원인 게 알려지면 은근히 협박해서 조합에서 탈퇴하게 해요.

열심히 일한 만큼만 받고 싶다는 건데... 사실 혼자 벌어서 두 아이 키우는 엄마예요. 이번 일 겪으면서 이제까지 너무 열심히 일했는데 왜 이사람들은 아이들 급식비까지 못내도록 그런 형편으로 나를 밀어 넣을까... 너무 억울해요."

이 지회장의 증언과, 계산원 딸의 청원글. 여기서 드러나는 '이마트'의 모습은 대기업 중 최초로 근로시간 단축을 이뤄냈다며 찬사를 받던 그곳이 아니었다.

이마트 이중성 폭로 증언대회... "단축 한 달도 안 돼 힘들다 아우성"

이 지회장의 눈물 어린 호소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이마트의 이중성 폭로 증언대회'에서 이뤄졌다. 이 지회장은 "이마트에서 매장 직원들에게 설명도 하지 않고 밥 시간 외에 30분 인정하던 유급휴게 시간을 아예 빼버린 연봉 계약서에 사인하게 했다"라며 "조합원이 '사인 할 수밖에 없었다'며 나를 붙잡고 우는데 너무 속이 상해서 화병이 났다"라고 토로했다.

이마트가 대대적으로 홍보한 '주35시간으로 근로시간 단축'의 이면에는 '휴게시간 단축'이라는 꼼수가 있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전수찬 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정규직-저임금노동자 착취하는 신세계이마트 이중성폭로 증언대회'에서 사측의 부당한 처우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 증언에 나선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전수찬 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정규직-저임금노동자 착취하는 신세계이마트 이중성폭로 증언대회'에서 사측의 부당한 처우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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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찬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 위원장은 "총 휴게시간이 1시간에서 40분으로 줄었는데, 근무 후 정산하러 가는 시간을 20분씩 두 번으로 만들었다"라며 "캐셔 근무 후 돈 통을 들고 정산한 다음에 다시 계산대로 가야 하는데 마트가 넓어서 이동 시간만 왕복 10~20분이 걸린다, 그 사이에 절대 쉴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준비·마감시간도 30분에서 20분으로 줄었다. 전 위원장은 "계산대로 투입되기 전 준비시간을 뜻하는데, 돈 통을 받고 옷 갈아입고 이걸 10분 안에 하라는 거고 마감도 10분에 하라는 것"이라며 "결국 일찍 출근해서 준비하고 늦게 퇴근한다, 공짜 노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이 공개한 사측이 만든 '계산원 근무 스케줄 가이드'에도 업무 강도 증가와 준비·마감시간 단축을 근로시간 단축의 '단점'으로 명시하고 있다.

박기정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 연수지회장 역시 "마감시간 10분 안에 상품권에 다 도장 찍고 입금하고? 어림없다, 30분은 무료 봉사하는 것"이라며 "근로시간 단축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여기 저기서 힘들다고 아우성"이라고 전했다.

근로시간 단축의 그늘?..."8시간에 김밥 100개 만들던 걸 7시간에 다 해야"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 총량의 감소로는 이어지지 않아, 줄어든 시간 안에 원래 해야 할 일을 쥐어짜듯 해야 한다는 게 이마트노조의 주장이다.

차순자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 수원지회장은 "즉석 조리에서 일하는 분은, 하루 8시간 근무할 때 김밥 100개를 말아야 했는데 7시간 근무할 때도 100개를 말아야 한다고 한다"라며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서 물을 안 먹는다고 한다, 한 시간 단축이 이렇게 큰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원지회 설립한 지 5일도 안 됐는데, 노조 간부를 주축으로 7명을 발령 보냈다, 이마트는 순환 근무일 뿐이라는데 40명 조합원이 '2차 발령 보낼 수 있다'는 말에 무너져 6명 남았다"라며 "친구들은 울고불고 '지부 없애고 마음 편히 살자'는데 옳은 걸 옳다고 말하는 게 잘못인가, 노조를 탄압했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라고 소리 높였다. 

지난 5일에야 처음으로 노조에 가입했다는 차 지회장은 "이마트가 이 프로젝트를 한 건 전체 노동자의 70%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큰 소리 치면 무너지는 점을 이용한 것"이라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밝혔다.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전수찬 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정규직-저임금노동자 착취하는 신세계이마트 이중성폭로 증언대회'에서 사측의 부당한 처우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 '사측도 알아' 증언 나선 이마트노조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전수찬 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정규직-저임금노동자 착취하는 신세계이마트 이중성폭로 증언대회'에서 사측의 부당한 처우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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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문제가 비단 이마트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전망도 나왔다. 박하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이마트의 주 35시간제 도입은 총 노동시간 감소 - 노동 강도 강화 - 총 인건비 억제를 달성해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이게 성공하면 할수록 3년에 걸쳐 1만 원으로 최저임금 인상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은 파기될 수밖에 없다"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이마트는 어떤 입장일까. 정민정 마트산업노조 사무처장은 "회사 입장을 듣고 싶어서 이 자리를 통해서라도 회사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사측이 이마저도 거부했다"라고 전했다.

다만 이마트 측은 언론을 통해 "근무시간을 줄이면서 캐셔의 경우 계산대 근무시간을 30분 줄이고 대기·준비·마감 시간을 각각 10분씩 30분 줄였다"라며 "계산대 업무 특성상 대기·준비·마감 시간이 줄었다고 해서 업무 강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태그:#이마트, #근로시간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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