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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아래 방심위) 홍보팀을 두고 하는 말이 됐다.

'적폐 청산' 의지를 강조한 신임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의 파격적인 취임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방심위 홍보팀에서 강 위원장 취임사의 전문 대신 '알맹이'를 뺀 보도자료를 배포(미디어오늘 1월 31일자 보도)하여 물의를 일으킨 바 있어 그 내용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방심위 홍보팀은 '적폐 청산'에 초점을 맞춘 강 위원장의 취임사를 너무 간단히 축약하고 '지당하신 말씀'만 몇 줄 내보내는 바람에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려고 했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결국 "도대체 취임사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길래 그랬냐"면서 궁금해 하는 여론을 불러 일으켜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격'이 되고 말았다.

신임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의 파격적인 취임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 "적폐 청산" 신임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의 파격적인 취임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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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0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취임한 강상현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그동안) 우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활동에 대한 문제점 지적과 비판도 적지 않았다"면서 "심의의 객관성과 공정성, 그리고 심의기관의 독립성이 종종 의심받아 왔다"고 지적했다. 또, "심의 결과에 대한 법적 소송에서 패소하는 일도 많았다"면서 "심지어는 '심의위원회를 심의해야 한다'는 말까지도 들었다"고 비판했다.

강 위원장은 이어 "이제는 이런 우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적극적인 자정노력이 없다면 앞으로 있을 개헌 논의에서, 그리고 정부조직개편 논의에서, 우리 위원회의 위상과 입지가 아주 약화되고 위축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강상현 위원장은 "(방심위를) 본연의 설치 및 운영 목적에 더욱 부합하도록 조직과 인사, 제도 및 규정을 바꾸어 나갈 것이며, 그러한 목적에 배치되는 부분을 '적폐 청산' 차원에서 정리 및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강 위원장의 '적폐 청산' 취임사는 취임식 현장에 있던 PD저널 외의 매체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방심위 홍보팀에서 취임사 전문 대신 일부 내용만 공개했기 때문이다. 방심위 스스로 '자정노력'이 필요한데 비판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미디어오늘(1월 31일자)은 "방통심의위 홍보팀은 기자들에게 4기 방통심의위 출범 보도자료를 내면서 취임사를 첨부하지 않았다. 어느 기관이든 기관장이 취임하면 취임사 전문을 메일로 보낸다. 방통심의위도 박효종 위원장이 취임했던 2기 때는 취임사 전문을 보도자료와 함께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전달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은 또 "방통심의위 홍보팀은 '적폐청산'이나 '자성'과 같은 중요한 내용은 빠진 채 '새 규제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내용과 '권력 하수인이 아닌 국민에게 봉사하는 기구가 되도록 노력해 달라'는 원론적인 내용만 두 문단 넣었다"면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를 쓴 다수의 기자들은 '알맹이'가 빠진 보도자료 속 취임사만 기사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은 또 "방통심의위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했다. 1월 30일 오전 방통심의위 홍보팀 관계자에게 '취임사를 달라'고 하자 '조직 내부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해서, 그거는 빼고 전문을 주는 대신 보도자료에 녹여서 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PD저널 기자 역시 취임사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방통심의위 홍보팀은 전문을 줄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위 상황에 관해 강상현 위원장은 4일 "홍보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취임사 전문 전달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내용이 은폐된 것은 아니다" 면서도 "취임사를 너무 간단히 축약해서 뻔한, 그리고 '지당하신 말씀'만 몇 줄만 내보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강 위원장은 "오래 지체된 방심위 출범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 방송사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방송국 카메라도 별로 안 보여 방송사들이 큰 관심이 없나 하고 생각했다"면서 "결국 홍보팀에서 주요 언론사와 방송사에 보도협조 연락을 모두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또, "결과적으로 내부 홍보 파트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방심위 조직을 개편할 때 이 부분도 크게 개선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상현 위원장은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언론학자다. 한국방송학회 회장, 언론정보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다음은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의 취임사 전문이다. 강 위원장과 이메일로 연락을 하여 취임사를 확보했다.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취임사 전문>

"안녕하십니까" 하고 첫 마디를 꺼내기가 참 민망합니다. 정말 만시지탄(晩時之歎)입니다. 너무도 늦게, 어렵게 어렵게 이제사 우리 위원회가 재가동하게 됐습니다.

위원 구성과 위촉이 이렇게 늦어진 데 대해서 우선 정치권에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이로 인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일이 많이 지체되고 큰 차질을 빚게 된 점 또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간 후임 위원들이 없는 긴 공백에도 불구하고 사무처 직원 여러분들은 묵묵히 자신의 일에 매진해 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라도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밀린 업무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해서 우리 위원회가 하루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랍니다.   

새 정부 들어 "언론정상화", "공영방송 정상화" 등 "정상화"란 말이 여기저기서 많이 나왔습니다. 우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간 누적된 많은 심의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뿐 아니라 위원회가 가진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도 충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10년간 위원회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활동에 대한 문제점 지적과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심의의 객관성과 공정성, 그리고 심의기관의 독립성이 종종 의심받아 왔습니다. 심의 결과에 대한 법적 소송에서 패소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심의위원회를 심의해야 한다"는 말까지도 들었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제는 이런 우(愚)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스스로의 적극적인 자정노력이 없다면 앞으로 있을 개헌 논의에서, 그리고 정부조직개편 논의에서, 우리 위원회의 위상과 입지가 아주 약화되고 위축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상화"는 상식과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법에서 정한대로 특히 심의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켜내는 일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는 저를 비롯해서 새로 위원직을 맡으신 분들도 같은 생각일거라 믿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사회에도 매일매일 수많은 방송물과 광고물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정보가 유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에서 불법·유해한 내용물들을 걸러내고 이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임무입니다. 그래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하고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일을 하는 우리 위원회가 종종 정치적 독립성 논란이나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매우 안타깝고도 불행한 일일 뿐 아니라 아주 소모적인 일입니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국민의 몸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듯이, 유익한 방송과 건전한 정보 환경 역시 국민의 마음과 정신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때문에 정해진 법규와 건전한 국민의 눈높이에서 방송통신 환경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정수기가 되어서 좋은 방송, 이로운 통신을 극대화하고 나쁜 방송, 해로운 통신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의 책무이자 의무입니다.

오늘부터 새로 일을 시작하는 심의위원님들과 우리 사무처 가족들은 사사로운 판단이나 이해관계를 넘어, 위원회와 우리 자신에게 부여된 본연의 임무에 더욱 충실해 주기 바랍니다.

오늘은 위원님들의 취임 첫날이기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활동과 기능의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개혁 방안에 대해서는 말을 조금 아끼겠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업무 보고를 받고 숙의와 관계자 논의를 거친 후, 유관 기관의 정책 과제와도 조화를 꾀하도록 하여 적절한 기회에 따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의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켜내겠다"는 위원회 운영의 기본 방침만은 밝혀두고자 합니다. 위원님들과 사무처 직원 모두가 보다 독립적인 입장에서 보다 공정하게 심의 업무에 임해 달라는 주문입니다.

그동안 쌓인 업무, 즉 적무(積務) 처리와 그동안 쌓인 폐단, 즉 적폐(積幣) 청산도 이러한 방향에서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본연의 설치 및 운영 목적에 더욱 부합하도록 조직과 인사, 제도 및 규정을 바꾸어 나갈 것이며, 그러한 목적에 배치되는 부분을 "적폐 청산" 차원에서 정리 및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그동안 급속히 변화되어 온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새로운 환경에 부합하는 내용 규제의 로드맵이 필요합니다.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을 높이고 방송 통신의 지나친 선정성과 폭력성, 허위성, 그리고 불법 부당한 인권 침해 가능성으로부터 우리 사회 구성원들, 특히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종합적인 내용 규제 정책과 대책을 마련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위원 여러분과 사무처 가족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할 따름입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권력의 하수인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기구라는 인식,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우리 사회 보호기구"이며 우리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기구라는 인식을 국민들 모두가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위원회의 위상과 우리 자신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높이도록 더욱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하며, 이것으로 간단하나마 취임 인사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다소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8. 1. 30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강상현



태그:#강성현, #방송,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적폐, #방송 공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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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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