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청소가 완료되면 초록색 램프가 점멸되고 모든 초록색 램프가 없어져야 메이드는 퇴근할 수 있다
▲ 객실 인디게이터 청소가 완료되면 초록색 램프가 점멸되고 모든 초록색 램프가 없어져야 메이드는 퇴근할 수 있다
ⓒ 허지희

관련사진보기


주말 오전, 특급호텔 룸메이드 Heidi는 인디케이터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체크아웃시간인 12시인데 영하의 강추위로 외출하는 고객이 없어 오전 중에 청소할 방이 없다. 오전에 이렇게 일을 못하면 배정받은 15개 객실 일이 오후에 몰려 고객이 새로 체크인하는 오후 2시부터는 사무실의 재촉 전화로 핸드폰이 불이 난다. 청소하랴 전화받으랴 전쟁이 따로 없다.

간단한 산수를 해보자면 휴게시간을 제외한 근무시간 8시간동안 15객실을 청소하려면 한 객실을 몇 분만에 청소해야 할까?

32분! 32분동안 전날 고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침대시트를 걷어내고 새 시트를 입히고 세면대, 욕조, 변기를 세제로 닦고 물기를 제거하고 거울을 닦고 타월과 샴푸, 칫솔 등을 세팅하고 먼지를 닦고 무료로 제공되는 생수, 커피, 고객이 사용한 문구류, 세탁물 백, 티슈, 가운을 넣고 청소기를 돌리고 밀대로 닦는 게 가능할까?

답은 가능할 때도 있고 불가능할 때도 있다. 고객이 샤워도 않고 차나 사발면도 안 끓여먹고 침대에서 잠만 자고 체크아웃 했다면 가능하다!

쇼핑을 많이 하는 중국인 고객의 객실에서 화장품 케이스가 대형 쓰레기봉투 세 꾸러미가 나올 때도 있는데 밀레의 이삭줍기처럼 엎드려 온 객실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담는 데만 1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샤워 커튼을 잘 사용하지 않는 내국인들은 욕실을 첨벙첨벙해 물바다로 만들어 놓는데 한방울의 물기조차 없애려면 욕실 바닥을 몇 분 기어다녀야 할까?

내집이 아니니 정리할 필요없는 욕실은 룸메이드의 몫이다
▲ 체크아웃 후 고객이 남기고 간 흔한 예 내집이 아니니 정리할 필요없는 욕실은 룸메이드의 몫이다
ⓒ 허지희

관련사진보기


내 집 청소도 거실, 방, 욕실을 다 정리하고 청소하는 데 32분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호텔 객실 청소는 퇴근시간 전에 해내야 한다
                                                               
15개 객실을 배정받고 미션을 못 끝낸 Heidi는 퇴근시간에 2개의 객실이 남았고 마무리하겠다고 했지만 연장근무수당 주는 것을 원치 않았던 관리자는 퇴근 지시와 함께 경위서를 요구했다.

이 상황은 Heidi가 호텔의 정규직 룸메이드이기 때문에 발생한 사례이지만, 같은 호텔 별관에서 일하는 용역 룸메이드라면 새로운 스토리가 된다.

13개 객실을 배정받는 용역 룸메이드는 퇴근시간과 무관하게 일을 마친 후 연장수당과 비슷한 1객실당 5500원의 오버룸을 받고 추가로 3~4방을 더 청소해야 한다. 하루 19개 객실까지 청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기계로 물건을 찍어내는 것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하는 일인지라 숙련된 룸메이드가 한 객실을 청소하는 속도에는 거의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방대한 업무량을 퇴근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메뉴얼대로 다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쇼핑이 많은 중국인 관광객의 객실에선 화장품 케이스가 산을 이룬다
▲ 한 객실에서 나온 쓰레기들 쇼핑이 많은 중국인 관광객의 객실에선 화장품 케이스가 산을 이룬다
ⓒ 허지희

관련사진보기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해야 한다. 메이드의 양심에 따라! 하지만 그런 행동은 잘못됐다. 그러다 보니 얼마 전 기사와 같은 일이 발생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근무시간 내에 다 정비할 수 없는 과도한 업무량에 있다. 노동조합이 있는 우리 호텔은 이미 오래 전부터 룸메이드에게 13개 객실 이하로 배정하라고 요구해왔으나 회사는 이를 늘 거부해 왔다.

본인이 호텔 교환으로 20년 일하다가 룸메이드로 전환배치되어 일해 보니 객실과 복도를 오가는 발걸음이 만보기로 하루에 2만8천 보에서 최대 3만2천 보까지 찍히기도 했다. 그 훈장으로 손목터널증후군, 테니스엘보, 목디스크 수술, 어깨회전근 염증 등 근골력계 질환이 4년째 끊이지 않고 있으며 20년 경력의 선배는 손목인대가 늘어나 당분간 일을 할 수 없다.

다른 룸메이드들도 허리디스크, 손가락 관절염, 대상포진 등 만성적인 인원 부족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로 일을 하면 할수록 환자가 되어간다.

게다가 본인이 일하는 호텔은 지난해부터 전직원 성과연봉제를 실시하고 있어 룸메이드가 청소한 객실을 채점하고 평가하여 해마다 임금 삭감과 동결을 반복하고 있다.

호텔 노동자들의 집회 모습
 호텔 노동자들의 집회 모습
ⓒ 신디

관련사진보기


그나마 노조가 있는 회사라 이런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집회와 선전전 등으로 방어하고 있어도 이러한데 노동조합은 꿈도 꿀 수 없는 서울시내 대부분 특급호텔의 용역 룸메이드들은 얼마나 더 열악한지 모른다.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 오버룸으로 제 몸 상하는지 알면서도 정신없이 일하는 룸메이드들은 용역회사 소속이기에 아파트 경비원처럼 언제든 쉽게 해고 당할 수 있다.

서울시내에 신축 호텔이 너무도 많이 생겼고 객실요금은 온라인 예약사이트에서 당일 예약으로 할인해 최저가로 판매하면서 적은 비용으로 새상품(=객실)을 만들려 하다보니 위생문제와 같은 말도 안되는 부작용이 발생했으리라 본다.

해결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호텔은 없을 것이다. 안할 뿐이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호텔이라면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덧붙이는 글 | 호텔 룸메이드의 일상이 더 궁금하시다면 페이스북 #룸메이드일지 로 검색하면 더 많은 소소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태그:#호텔, #룸메이드
댓글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종호텔에서 28년 근무하고 12월 10일자로 정리해고 통보받음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