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쪼개듣기'는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화제작 리뷰, 업계 동향 등 다채로운 내용을 전하겠습니다. [편집자말]
 가수 나훈아의 전국 투어 콘서트 포스터. 2018년 진행될 앙코르 공연의 경우, 예매 개시 3분 만에 전석 매진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가수 나훈아의 전국 투어 콘서트 포스터. 2018년 진행될 앙코르 공연의 경우, 예매 개시 3분 만에 전석 매진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 예소리


하나. 지난 8일 모 예매 사이트에서 접속자 폭주로 서버 장애가 발생했다. 한 인기 가수의 전국 순회 공연 예매가 이날 시작 3분만에 매진되었고 표를 미처 구하지 못한 팬들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그 주인공은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엑소도 아닌 올해로 만 68세가 된 노장 가수 나훈아다

웬만한 아이돌 스타 이상으로, 나훈아의 공연은 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이미 지난해 순회 공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빚어졌고 미처 관람하지 못한 팬들을 위한 앙코르 형식으로 치뤄지는 올해 공연조차도 마찬가지다.

둘. 지난 7일 인기 트로트 가수 홍진영의 디지털 싱글 '잘 가라'가 공개된 이후, 주요 음원 사이트 순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각종 행사와 방송 활동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홍진영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내로라하는 음원 강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녀의 이름을 높은 순위에서 발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개 발표 2~3년 이후에 반응이 오는 트로트 장르 특성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트로트에도 과연 봄날이 찾아 오는 것일까?

전통의 인기 장르, 2000년대 이후 하락세

전통가요, 성인가요 등의 표현으로 소개되는 트로트는 과거 1950~60년대부터 우리 가요계의 주류 장르로 인기를 누려왔다. 발라드, 댄스 음악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종종 음악 방송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등 명맥을 꾸준히 유지해왔지만 2000년대 이후론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장윤정이라는 톱스타를 발굴했지만 장르의 위세는 예전 같지 않았고 디지털 음원 시대로 전환된 이후론 극소수의 가수들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새 얼굴의 등장도 요원해졌다. 물론 늦깎이 스타 박상철, 강진부터 각종 예능에서 맹활약한 홍진영, 박현빈 그리고 '어르신들의 엑소'로 불리는 신유 등 최근 10여 년 사이 맹활약하는 인기 가수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과거 트로트의 전성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과거에 안주, 젊은 감각 + 대중 흡수에 실패

 지난 2013년 발매된 김연자의 음반 <아모르 파티> 표지. MBC <무한도전> 깜짝 등장과 각종 SNS 상의 입소문에 힘입어 지난해 지각 인기를 얻었다.

지난 2013년 발매된 김연자의 음반 <아모르 파티> 표지. MBC <무한도전> 깜짝 등장과 각종 SNS 상의 입소문에 힘입어 지난해 지각 인기를 얻었다. ⓒ RIAK


트로트가 고전하는 큰 이유는 젊은 대중들을 팬으로 유입하지 못하는 데 있다. 해외 팝에 영향받은 수려한 멜로디, 코드 진행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음악에 익숙한 지금의 대중들에겐 트로트는 말 그대로 '어르신용 음악, 옛날 음악'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여기엔 트로트 분야의 창작인, 가수들의 변화가 거의 없었던 게 큰 원인으로 보인다. 최근 유행 및 시대 감각에 비교해서 30여 년 이상 뒤처진 듯한 가사 내용, 멜로디만 고수하다보니 몇몇 가수들의 인기곡을 제외하곤 시장 경쟁력을 찾기 어려웠다. 상대적으로 성인 팬 비중이 높은 미국의 컨트리 음악만 하더라도 1960~70년대 등 시대를 거듭하면서 장르의 다변화 및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의 트로트 음악은 이런 자기계발 자체에 소흘했다.

흔한 예로 신곡 발표하면서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하는 트로트 가수의 음반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혹자는 가수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하소연하지만 오히려 젊은 음악인들의 비중이 큰 록 음악, 인디 음악계에 비해선 상황이 나은 편이다.

최소한 지상파 라디오 채널에선 중장년층 대상 프로그램을 통해 여전히 트로트 음악을 틀어준다. '어르신들의 Mnet'으로 불리는 아이넷TV, GMTV, 가요TV 등 마이너한 케이블 채널들이 지역 무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하고 있다.

게다가 시대가 변화해 모바일, 유튜브로 콘텐츠 주도권이 넘어갔음에도 트로트만 제자리걸음이었다. 새 음악, 새 얼굴 발굴에는 미흡했고 옛 방식만 고수하다보니 점차 시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꾸준한 자기 개발+변화만이 살 길

 김영철과 손잡고 발매한 2017년 홍진영의 디지털 싱글 <따르릉> 표지. EDM 형식을 채용한 자작곡으로 지난해 큰 사랑을 받았다.

김영철과 손잡고 발매한 2017년 홍진영의 디지털 싱글 <따르릉> 표지. EDM 형식을 채용한 자작곡으로 지난해 큰 사랑을 받았다. ⓒ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이런 점에서 나훈아를 비롯한 몇몇 가수들의 요즘 움직임은 눈여겨 볼 만하다. 오랜 잠적을 끝내고 지난해 컴백 음반 < Dream Again >을 내놓은 나훈아는 이례적으로 뮤직비디오 제작, USB 음반 발매 등 요즘 가수들과 유사한 방식을 택했다. 비록 방송활동은 없었지만 수차례의 순회공연을 통해 전국 각지에 있는 팬들을 만나며 젊은 후배들 못잖은 행보를 이어 갔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하고, SNS로 입소문을 타는 등 외부요인의 도움이 있었지만 김연자 '아모르 파티'의 성공 역시 눈여겨 볼 만한 사항 중 하나다. 인기 작곡가 윤일상은 기존 트로트 곡에선 접할 수 없었던 EDM을 '아모르 파티'에 도입하는 등 파격 편곡으로 젊은 층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가수 본인이 '수은등' 같은 예전 인기곡 형식에만 안주했더라면 '아모르 파티' 열풍은 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홍진영은 트로트 가수 중에선 보기 드물게 대학가 축제의 단골 섭외 가수로 인기를 얻었다. 행사 무대 뿐만 아니라 탁월한 예능감을 토대로 각종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각광받는 그녀 역시 기존 선배 트로트 가수들과는 다른 방식을 통해 차별화를 도모했다.

대개 신곡 한두 곡에 기존 히트곡을 나열하는 고정된 트로트 음반 발매의 틀 대신 뮤직비디오 기본 제작 + 미니 음반 또는 디지털 싱글 위주의 효율적인 제작을 택했다. 지난해엔 선배 김연자와 함께 걸그룹 다이아의 싱글 '꽃 술 달'에 참여하는가 하면 개그맨 김영철을 내세운 EDM 트로트 자작곡 '따르릉'으로 기대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 설날 특집으로 방영될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을 통해선 강호동과 손 잡고 신곡 '복을 발로 차버렸어'를 선보일 예정이다.

의도하건 의도치 않건 간에 이들의 최근 활동은 기존 트로트 가수들이 벤치마킹 해도 좋을 법한 모범 사례에 속한다.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하게 자기계발하는 방법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기 때문이다. 트로트도 이젠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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