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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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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되던 날.

사랑하는 딸아. 1985년 12월 3일 오전 11시 29분 네 덕분에 아버지가 된 날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가 여리고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 네가 세상에 첫울음을 놓던날 면목동 시장통이 들썩들썩 난리도 아니었지. 지금도 시장의 제일떡집이나 순댓국집 그리고 양말가게에서는 네 생일을 알 정도란다.

네 결혼 청첩장을 줬더니 사진관 사장집 딸이 벌써 결혼을 한다며 소문이 다 나서 아버지의 옛날 이야기까지 나오고 민망하구나. 네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가 너무 요란스러웠던 게야.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지금도 시장사람들이 재미있어하니 너도 한번 들어보련. 너로 인해서 생긴 시장골목 정 많은 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란다.

그리고 배냇저고리는 네가 입던 옷이란다. 엄마가 잘 보관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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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진통이 시작됐다. 차마 맨정신으로 곁을 지키기 어려워 슬그머니 시장골목 순댓국집으로 갔다. 소주를 한 잔 따라놓자 이를 악문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신음소리 한 번에 소주 한 잔, 신음소리의 강도는 점점 높아졌고 아예 악을 쓰는 듯한 환청이 들려왔다. 연거푸 마셨다.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왜 그래 응? 아이구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순대국집 아줌마가 물었다. 내 대신 맞은편 떡집 여사장이 바깥에서 나. 하는 짓을 보고 있다가 대신 말을 받았다.

"아이구 언니 그게 아니구, 지금 마누라가 진통이 와서 유땡떙 산부인과 갔어. 마누라 진통하니까 괜히 겁나서 저러는 거야. 애 낳을 땐 다 그래 청승 좀 그만 떨어. 히히"

떡집 여사장의 말에 술 마시다 말고 고개를 떨구었고 순댓국집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산부인과에서 애를 낳았다는 전갈이 왔다. 떡집 여사장이 같이 가보자며 손을 잡고 가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왜 그래? 응, 사진관 조사장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애 낳는데 이렇게 요란스럽네. 살다 살다 별 요상한 일을 다 봐? 히히"

눈물 콧물 범벅에 술 냄새를 풍기며 병실 문을 열자 아내가 아기를 품에 안고 배시시 웃는다. 아내를 보는 순간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기는 눈에 안들어왔다. 병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술에 취한 나는 울다 웃다 아내 옆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며칠 후, 시장통의 족발집과 떡집, 김 굽는 사내의 축하를 받으며 아내는 퇴원을 했고 그때서야 아기가 눈에 들어왔다. 딸이었다. 아기가 입고 있던 배냇저고리에서 나는 젖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기 낳을 때 한 짓이 있어서 한동안 시장골목을 벗어나 빙 돌아다녔다. 그리고 첫 애를 낳은 뒤로 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아기의 젖냄새가
널어놓은 기저귀의 광목냄새가
아기의 옹알이가 술 안주였다

그러면서 알아갔다
이 아이가 내 자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자식이 태어남으로
가정 하나가 온전히 완성되었음을 알았다

딸아, 네가 태어나고 아버지의 귀가시간은 두 시간 앞으로 당겨졌지. 시장 사람들이 술 끊었냐며, 사람이 너무 급히 변하면 못 쓴다며 놀려대었어. 오늘은 개미집이라는 재미있는 시 하나를 소개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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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의 집

- 이은봉

유리병 속에 흙 넣고 개미를 기른다
개미들, 이내 굴 파고 집 짓는다

개미들이 짓는 집, 모두 똑같다
사람들이 짓는 아파트 같다

개미들 잘도 제 집 찿아간다
사람들 잘도 제 아파트 찾아간다

겉으로 보면 똑같은 아파트들!
안으로 들어가면 집집마다 죄 다르다

천년의 시작 '책바위'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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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아버지와 딸, #시집,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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