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다이라 선수가 18일 오후 강원도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미터에 출전해 역주를 하고 있다.

일본 고다이라 선수가 18일 오후 강원도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미터에 출전해 역주를 하고 있다. ⓒ 이희훈


"500m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기회로 여겼다."

고다이라 나오(일본)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이상화를 제치고 금메달을 따낸 후 밝힌 소감이다. 세 차례 올림픽 무대에 도전하며 12년 만에 따낸 감격스러운 첫 금메달이다.

고다이라는 이상화의 라이벌로 불리기에도 한참 부족한 선수였다. 이상화가 첫 금메달을 따냈던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12위에 그쳤고, 역시 이상화가 금메달을 따낸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도 5위를 기록하며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당시 일본 언론은 고다이라가 큰 대회에서 유독 긴장한다며 '수줍은 소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상화의 올림픽 2연패를 바라보며 어느덧 서른을 눈앞에 둔 고다이라는 은퇴가 아닌 '빙속 강국' 네덜란드로 떠났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네덜란드 유학

인생의 승부를 걸고 자비로 떠난 네덜란드 유학에서 그는 평생의 은인을 만난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 1000m·1500m 금메달과 2006년 토리노 올림픽 1000m 금메달을 따낸 마리아너 티머르 코치였다.

티머르 고치는 '성난 고양이'(Boze Kat)처럼 머리와 허리를 낮추고 등을 높게 세우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고다이라는 식생활조차 어려웠지만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로 견뎌낸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스 자세를 완전히 바꾼 고다이라는 수줍은 소녀가 아닌 성난 고양이가 되어 돌아왔고, 2014~2015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 여자 500m에서 처음으로 이상화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하며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고다이라는 무서운 기세로 금메달을 휩쓸었다. 월드컵 시리즈는 물론이고 지난해 강릉 세계선수권과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도 이상화를 제치고 정상에 섰다. 부상에 시달린 이상화는 최근 7차례 맞대결에서 한 번도 고다이라를 이기지 못했다.

고다이라는 남자 선수들을 능가할 정도의 엄청난 훈련량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기초 체력이 탄탄하다. 고다이라가 단거리 스케이터로서는 드물게 500m와 1000m에 이어 1500m까지 소화할 수 있는 것도 이 덕분이다.

"이상화는 최고의 동기부여... 존경스럽다"

고다이라에게 관심조차 없던 일본 언론의 태도도 달라졌다. 연일 고다이라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고, 특집 방송까지 제작했다.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는 일본 선수단의 주장까지 맡으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상화도 빠르게 기량을 회복하며 고다이라와의 격차를 좁혔다. 기록상으로는 고다이라가 평창 올림픽에서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으나, 큰 대회 경험이 많고 승부사 기질이 있는 이상화가 막판 뒤집기를 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더구나 올림픽 무대에서는 고다이라가 도전자였고, 평창은 이상화의 안방이었다. 하지만 고다리아는 집념으로 엄청난 압박을 이겨내고 올림픽 신기록까지 세우며 마침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 정상에 올랐지만 고다이라는 이상화를 향한 존경도 잊지 않았다. 그는 경기 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상화는 최고의 동기부여가 됐다"라며 "경기 후 (이상화에게) 존경한다고 말했고, 서로 칭찬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라고 밝혔다.

남들은 스케이트화를 벗는 32살의 나이에 뒤늦은 전성기를 맞이한 고다이라의 활약은 금메달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눈물의 은메달을 따냈지만 아직 29살인 이상화가 4년 후 베이징 올림픽을 바라볼 수도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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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나이라 나오 스피드스케이팅 평창 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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