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부산에서 서울의 자취방으로 돌아올 때면, 나는 역 앞에서 1711번 버스를 타곤 했다. 버스는 매번 광화문을 거쳐 고급스런 주택들이 즐비한 평창동을 지난 후 나를 정릉에 있는 종점에 내려주었다. 그야말로 서울의 화려한 중심부와 고급스러운 주택가를 거쳐 가장 황량한 곳에 도착하던 코스. 바닥이 포장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종점역에 내리면 나는 무거운 캐리어 가방을 질질 끌고 그보다 더 허름한 옥탑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좁디 좁아 짐둘 곳도 마땅치 않은 집에 들어서면 나는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끼곤 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곳이 나의 집이구나. 이 집이 나에게 가장 어울리고 적당한 공간이구나.

그 때는 그랬다. 수도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고 대학에 왔지만 기다리는 것은 만성적인 빈곤과 열악한 아르바이트 자리뿐이었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기도 옷을 사입기도 돈이 아까웠다. 더벅머리에 뿔테 안경을 끼고, 낡고 해진 코트를 입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대학원생인줄 알았다고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하루하루 버티기도 버거운 탓인지 정작 나는 성적도 별로였다. 그래서 질투했다. 조금 더 나은 조건에서 나와 같은 시기를 보냈던 이들을, 그래서 나보다 앞서 나가거나 무리에서 주목을 받던 친구들을. 나는 멀찍이서 그들을 선망했고 그 마음은 종종 시기심으로 변했다. 이유도 없이 그 친구들을 미워했다. 하지만 결국 그 감정의 원인이 내가 초라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자괴감에 빠졌다. 나는 내가 추해 보였고 한심했다.

삶이 힘든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기 어려운 이유

초라함, 질투와 시기심과 이로 인한 자기 혐오. 지금 대학 신입생 시절의 나를 되돌이켜 보면 나는 딱 저 단어들이 떠오른다. 언젠가 수업에 들어온 교수가 자신은 청춘이 부럽지 않다고 했다. 가진 것도 없이 불안하기만 한 시기가 뭐가 좋냐고, 자기는 중년의 스스로가 만족스럽다고 했다.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같은 이유로 나도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너무도 벗어나고 싶어한 그 시기를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도 어렵다. 그들은 내게 고통을 호소하곤 하지만 정작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힘내? 너무도 무책임하다. 그런다고 힘이 날까? 힘을 내면 상황이 달라질까? 나는 '다 잘 될 거야'라는 말도 해봤지만 이것도 후회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미래를 볼줄 아는 것도 아닌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안다고. 솔직히 이건 빈말도 아니고 거짓말이나 다름 없지 않을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정직한 말은 '(나도 겪어봐서 아는데) 원래 그 시기는 그런 거야'인데 이건 더 최악이다. 감기에 걸려 아프다는 사람에게 누구도 '그 병은 원래 고통스러운 거야'라고 하지 않는다(나는 그런 이유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조언이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뭘 어쩌란 걸까. 너만 그런 거 아니고 나도 그랬으니 참으라고?

이효리, 제주의 영감받은 소길댁 가수 이효리가 4일 오후 서울 화양동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정규 6집 앨범 < BLACK > 발매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앨범을 소개하고 있다. 2013년 5집 이후 4년만에 선보이는 6집 < BLACK >은 제주 생활을 통해 얻은 영감들을 담아 이효리 본인이 10개의 트랙 중 9곡의 작사와 8곡의 작곡에 참여해 팝과 발라드, 힙합, 소울, 일렉트로니카를 넘나드는 곡들을 수록한 앨범이다.

가수 이효리. ⓒ 이정민


이효리의 '예쁘다'가 전달한 메시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우연히 이효리의 노래 '예쁘다'를 들었다. 그녀의 6집 앨범에 수록된 이 노래는 이효리의 말에 따르자면 20대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 시절의 그녀는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던 인기 스타였지만, 정작 스스로는 왜 자신의 다리가 짧고 피부는 까만지 불만을 가졌다고 한다. '예쁘다'는 그런 그 때에 이효리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라고 한다.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이 노래에 흥미가 갔다. '예쁘다'라는 말이 그녀의 의도처럼 좋은 위로가 될수 있을까? 사실 그 표현은 우리가 누군가를 도닥이거나 위안을 주려할 때 보다 칭찬을 할 때 많이 사용되곤 하니까.

무겁게 잡고 있는 어깨와  뜨거워진 손을 살며시 잡아 본다 
Don't worry please my baby 
Don't worry please my lady 
너의 곁엔 항상 내가 
나의 곁엔 항상 니가 있을 테니 
조심히 말을 건넨다

시끄러운 마음에 묻혀 금방 흩어진다 
다가가 너를 안아본다 
안김이 어색한 너는 다시 돌아선다 
예쁘다 깊고 따뜻한 맘이 
혼자일 때 왈칵 쏟는 눈물까지 
단단하게 버티는 두 다리와 
차가워진 발을 살며시 만져본다
Don't be sad please my baby 
Don't be sad please my lady 
너의 곁엔 항상 내가 
나의 곁엔 항상 니가 
너에게 하고픈 말 
걱정하지 말라는 말

슬퍼하지 말라는 말 
잘 해낼 수 있다는 말 
예쁘단 말
- 이효리의 '예쁘다' 중

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자 질문이 돌아왔다. 20대 초의 내가 '예쁘다'는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것 같냐고. 노래 '예쁘다'에서 이효리는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설명한다. 무겁게 어깨를 잡고 있었고 단단하게 두 다리로 버텨야 했으며 그러는 와중에 발은 차가워지던 때. 그게 너무 힘들었는지 마음이 시끄러워 사람들이 건네는 선한 말도 머리 속에서 금방 흩어지던 시절. 만약 누군가가 따뜻한 마음으로 살며시 안아준다면 그게 어색해 돌아섰을 날들. 이효리는 노래에서 그런 이전의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삶의 고됨과 그래서 번잡했던 마음, 본인만이 내밀히 느꼈을 스스로의 초라함을 담담히 드러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스스로를 예쁘지 않게 느꼈을 과거의 자신에게 그녀는 '(그 모습도) 예쁘다'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초라함을 너무도 잘 알아서 한껏 몸을 낮추고 걸어다니며, 세상 모든 빛나는 것들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질투심에 그 불이 꺼지길 바라지만, 그런 마음을 먹었던 자기 스스로가 결국은 혐오스러워지는 때. 아마 이효리처럼 그 때의 나를 누군가 안아주었다면 어색함에 몸을 뺐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누군가가 아니라고, 나는 너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고,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알고있다고, 그렇지만 그럼에도 너는 예쁘다고 말을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나는 친구의 질문에 답했다. 그 시절 만일 내가 그와 같은 의미로 그 말을 들었다면, 아마 펑펑 울었을 것이라고.


그제서야 나는 '예쁘다'가 왜 위로의 말이 될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래도 젊어서 아름답다' 따위의 위선이 아니다. 손쉽게 누군가의 결핍을 부정하지 않는 말, 그로인해 그 사람이 겪는 감정적 동요와 가시 돋힌 생각들을 회피하지 않는 말, 오히려 그런 마음을 보듬고 그렇게까지 분투하고 버티는 모습이 절대 추하지 않다고 하는 말, 그런 말이 이효리의 노래 속 '예쁘다'가 아니었을까. 특별히 누구의 잘못으로 초래되지 않은 시련 속에서 삶을 견뎌가는 사람의 노고를 인정하고 애정을 전하는 말인 셈이다. 물론 이걸 깨달았다고 내가 곧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 말을 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직면하길 두려워 했던 예전의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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