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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는 통째로 찜통에서 쪄낸 다음 먹기 좋게 다리와 몸통을 분리해서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 울진대게 대게는 통째로 찜통에서 쪄낸 다음 먹기 좋게 다리와 몸통을 분리해서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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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대게와 죽변항 

"보통 음력 설 전후가 가장 맛있는 제철이라 하지예. 하지만 그건 가까운 바다에서 잡던 예전의 이야기고, 요즘은 멀리 나가서 깊은 데서 잡아오고, 큰 놈을 많이 잡아오기 때문에 특별히 제철이라 할 시기가 있는 건 아닙니더."

경북 울진군 죽변항에서 하나대게회집을 운영하고 있는 곽영길 사장의 말이다. 과거에 대게는 육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200~300m 대륙붕 바다에서 많이 잡았지만, 물량이 달려 요즘에는 수심 500~600m 대의 깊고 먼 바다까지 나가서 대게를 잡아 온다고 한다. 박달대게처럼 속이 꽉 차고 맛있는 대게를 원하는 수요가 갈수록 늘어난 것도 먼 바다로 나가는 한 요인이다.

그런데 대게의 금어기는 6월부터 11월까지이므로 금어기가 끝나는 12월에 많이 잡히고 차츰 어획량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면 영덕대게로 유명한 영덕에서 부족한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 이곳 울진의 죽변이나 후포로 와서 대게를 대량 구입해서 영덕으로 실어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사실 우리 죽변항의 대게 어획량이 가장 많았습니더. 요즘은 포항 구룡포항이 가장 많이 잡지예. 거기(구룡포항)는 큰 배들이 많아서 한꺼번에 많이 잡는데 비해 우리는 소형 어선들이 주로 많고 자망어업을 해서 아무래도 좀 달립니더."

본래 대게는 동해안 전체에서 잡힌다. 북한의 동해안은 물론 남한의 속초부터 강릉, 삼척, 울진, 영덕, 그리고 포항과 울산까지도 대게가 잡히는데, 영덕대게가 가장 많이 알려져 제철이 되면 영덕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울진과 포항, 삼척 등 실제 어획량이 많은 고장보다 영덕대게의 이름값이 높아지자 과거 한때 울진과 영덕 사이에 대게 원조 고장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물론 지금도 현재진행중이다. 과거처럼 치열하지 않을 뿐. 그러다보니 울진과 영덕에는 각각 대게원조마을이 있다).

대게는 크기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는데, 시세는 매일 달라진다.
▲ 울진대게 대게는 크기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는데, 시세는 매일 달라진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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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조가 어디냐' 하는 문제와 '현재 어디서 가장 많이 잡히느냐' 하는 문제는 다른 문제이고, '어디 대게가 가장 맛있냐' 하는 문제도 또 다른 문제이다. 지금은 영덕대게의 유명세 때문에 다른 지역의 대게들도 영덕으로 공수해 가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논쟁이 크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명품 쌀로 통하는 '이천 쌀'에 대하여 같은 들판에서 쌀을 생산하는 여주가 역시 고품질의 명품 쌀임을 내세워 홍보하는 것이나, 최고급 명품 한우로 통하는 '횡성 한우'에 대하여 이웃한 홍천이나 평창이 '우리가 진짜 명품 한우의 고장'임을 내세워 홍보하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소비자에게 각인된 특정 고장의 특산물 브랜드 이미지가 쉽게 바뀌지는 않으니 대게의 경우도 영덕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특정 고장의 특산물 브랜드가 유명해지고 소비자들에게 각인된 것이 우연은 아니다. 다른 고장에 앞서 일찌감치 자기 고장의 특산물을 차별화시키면서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다양한 마케팅 방식을 동원해 판매해서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번 고정된 브랜드 가치는 꽤 오래 지속된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품질에 큰 차이가 없다면 유명한 브랜드보다 덜 유명해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면서 다양한 상품을 대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더구나 원산지가 무의미한 상황이 됐다면 더욱 그렇다. 울진대게도 마찬가지.

어느 고장의 바다라고 하기 곤란한 먼 바다로 나가 대게를 잡아오는 배가 울진군 소속이면 울진대게이고, 영덕군 소속이면 영덕대게이니 이 대게나 그 대게나 큰 차이는 없다.

대게의 다리 아랫부분을 가위로 반쯤 잘라내고 천천히 잡아당기면 게살이 쭉 딸려나온다.
▲ 대게의 다리살 대게의 다리 아랫부분을 가위로 반쯤 잘라내고 천천히 잡아당기면 게살이 쭉 딸려나온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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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항에서 대게를 찜 쪄먹다 

울진에서는 주로 죽변항과 후포항에서 대게를 많이 잡는다. 울진대게를 맛보려면 이 두 곳 중 한 곳에 가면 된다.

죽변항은 남동쪽을 향해 활시위를 크게 당긴 모양처럼 둥글게 휘어진 형태의 항구이다. 이 항구를 따라 대게와 회를 내는 집들이 길게 이어진다. 어디에 가도 크게 상관은 없다. 수족관의 대게를 들여다보며 주인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적당하다 싶으면 들어가 식사하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항구 끝 방파제 아래로 들어가는데, 여기에 3, 4개의 횟집들이 있다. 모두 회와 대게를 같이 취급한다. 보통 외지에서 처음 찾아올 경우 이 항구 끝까지 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주로 단골들이 많이 찾는다.

대게는 큰 찜통에 넣고 통째로 쪄먹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조리법이다. 이른바 찜쪄먹는다. 요즘엔 좀 더 다양하게 조리해서 내놓기도 하지만, 별다른 양념 없이 그대로 쪄먹는 것이 여전히 가장 맛이 좋다.

보통 식당에서는 찐 대게의 몸통과 다리를 분리해서 가위와 함께 내놓는다. 게는 대개 다리 부분이 가장 맛있다. 가위로 다리 아랫부분을 살짝 찝어서 반쯤 자른 다음 천천히 잡아당기면 다리살이 통째로 끌려나온다. 이를 입에 넣으면 짭조름하면서 고소한 감칠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대게 몸통의 내장 국물에 밥과 김가루, 참기름을 넣어 비빈 다음 볶아내면 그 맛을 잊기 힘든 볶음밥이 된다.
▲ 대게 내장볶음밥 대게 몸통의 내장 국물에 밥과 김가루, 참기름을 넣어 비빈 다음 볶아내면 그 맛을 잊기 힘든 볶음밥이 된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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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게살 먹느라 밥상 주변은 지저분해진다. 먹기에는 맛있지만, 보기에는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 그래도 대략 정리하고 마지막에 나오는 내장 볶음밥과 대게 미역국을 먹으면 대게 다리살 만큼이나 뱃속이 든든해진다. 특히, 내장 국물에 김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서 볶아낸 밥에 참깨를 올린 볶음밥의 맛은 대게 살만큼이나 기억에 오래 사무친다.

게살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그저 게맛만을 내는 게맛살이 마트나 슈퍼에서 항상 잘 팔리는 걸 보면, 해산물 중 게만큼 맛있고 사랑받는 것도 별로 없는 듯하다. 더구나 몸통과 다리에 살이 꽉 찬 대게는 그래서 최고의 맛이다.

그러니 대게는 관리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남획으로 멸종될 우려가 커서 매년 철저히 금어기를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 잡을 수 있는 대게의 크기도 제한한다. 몸통 길이 9cm 이하의 대게는 포획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9cm 길이의 자를 소지하고 가서 잡아 올린 대게들 중 작은 것들은 현장에서 직접 자를 몸통에 대는데, 몸통이 자에 쏙 들어가 끼워지면 -9cm 이하이므로- 다시 바다에 던진다고 한다.

이렇게 관리하지 않으면 얼마 못가 대게를 잡을 수 없게 되므로 어민들도 이에 적극 협조한다.

드라마 세트장으로 유일하게 남은 어부의 집은 바닷가 절벽 위에서 푸른 바다를 온몸으로 끌어안는다.
▲ 폭풍속으로 세트장 드라마 세트장으로 유일하게 남은 어부의 집은 바닷가 절벽 위에서 푸른 바다를 온몸으로 끌어안는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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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있는 하트해변

대게를 먹고 항구 뒤 언덕을 넘어간다. 죽변항은 동해안의 그 어느 항구보다 아름다운 해안을 갖고 있다.

죽변은 과거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라 하여 죽빈이라 불리었다가 죽변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죽변 등대 일대에는 대나무숲이 넓게 분포한다. 인근에 524년(신라 법흥왕 11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봉평신라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1500년 전 신라 때부터 동해안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항구이다.

항구 뒤편 언덕과 죽변 등대 그리고 등대 아래의 절벽은 일찍부터 아는 사람만 찾던 조용한 절경이었으나, 바로 이곳에 과거 SBS 드라마 <폭풍속으로> 세트장이 들어서면서 제법 알려졌다.

세트장 건물은 딱 하나, <어부의 집> 뿐이지만 바닷가 낮은 절벽 위에서 푸른 바다 전체를 끌어안고 있다. 드라마 자체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세트장과 바다가 어울린 풍경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의 기념사진 촬영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죽변 등대 아래쪽 대나무숲길 쪽에서 세트장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포인트이다.

세트장 내부는 개방되어 있어 들어가 볼 수 있지만, 별다른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깥에 나가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좋다.

폭풍속으로 세트장에서 내려다본 하트해변. 곡선으로 휘어진 바다 모습이 매력적이다.
▲ 죽변 하트해변 폭풍속으로 세트장에서 내려다본 하트해변. 곡선으로 휘어진 바다 모습이 매력적이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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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장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면 바로 발 앞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짙푸른 바다가 출렁거린다. 낚시대를 들고 와 바다낚시를 즐기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고기가 잡히지 않아도 괜찮을 듯하다.

이 해안을 요즘에는 하트해변이라 한다. 바닷물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육지와 만나고, 그 사이로 작은 바위와 돌들이 줄을 지어 바다로 뻗어나가며 바다 사이를 가른다. 그래서 하트 모양이 된다. 잘 보면 하트 두 개가 겹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덕 위의 죽변 등대와 그 아래의 대나무숲길은 또 하나의 포인트이다. 죽변 등대는 16m 높이에 팔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910년부터 지금까지 동해안 일대의 바다를 밝히고 있다.

그 아래의 대나무숲길은 '용의 꿈길'로 불리는데, 길 안에 들어서면 바깥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고 울창하여 좋은 산책 코스로 인기가 높다. 가끔 바다가 보이는 지점이 사진 촬영 포인트가 된다.

저녁 어스름 무렵부터 한밤중까지 이 일대는 밤바다와 산책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발길이 이어진다. 드라마는 잊혀도 세트장 풍경은 오랫동안 살아남아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등대 아래 '용의 꿈길'로 이름붙인 대나무숲길이 있다.
▲ 죽변등대 대나무숲길 등대 아래 '용의 꿈길'로 이름붙인 대나무숲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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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해안 곳곳에서 대게축제를 벌이는 시기가 왔다. 속초부터 포항까지 동해안 전체가 대게 요리로 밤을 밝히고 곳곳에서 대게축제의 파도가 일렁거린다. 이럴 때 울진 죽변항으로 가보길. 대게의 제철에 동해안에 가서 대게와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같이 즐기기에 죽변항 만한 곳도 별로 없다.

올해 울진군에서는 3월 1일부터 4일까지 4일 동안 '울진대게와 붉은대게축제'를 개최한다. 장소는 후포항 왕돌초광장과 부두광장 일원. 대게 경매, 대게춤 연희단 공연, 대게풍어 해원굿 등의 행사, 해산물 요리체험, 요트 승선 체험, 등기산 대게길 걷기 등의 체험 행사가 펼쳐진다.(문의: 054-789-5485,  http://www.uljin.go.kr/crab)

여행 정보

죽변항 항구를 따라 대게를 내는 집들이 길게 이어진다. 어느 집이든 가격과 밑반찬의 구성에 큰 차이는 없다. 대게의 시세는 크기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며, 거의 매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개 큰 것은 한 마리에 5만원 이상 한다. 3인 기준으로 큰 것 두 마리는 먹어야 배가 찬다.

죽변항은 항구를 따라 차를 댈 수 있는 주차 공간이 있고, 드라마 세트장이 있는 언덕에는 10여대 이상 댈 수 있는 주차장과 길가에 2, 3대씩 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따로 주차료나 입장료는 없다. 세트장인 <어부의 집>은 오전 9시~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가는 길
자가용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동해안 7번 국도→삼척→부구→죽변
혹은 포항→7번 국도→영덕→울진→죽변

대중교통
삼척과 울진을 연결하는 시외버스, 혹은 울진에서 죽변, 부구로 운행하는 군내버스를 이용, 죽변에서 하차한다. 항구에 가깝게 가려면 군내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버스편은 20~30분 간격으로 자주 있다.

1910년부터 바닷길을 밝힌 죽변 등대와 등대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잘 어울려 있다.
▲ 죽변 등대 1910년부터 바닷길을 밝힌 죽변 등대와 등대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잘 어울려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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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울진대게, #죽변항, #하트해변, #드라마 폭풍속으로 세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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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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