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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1시 50분께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검은 정장 차림의 국회 관계자들이 복도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아니 왜 민주당에서만 나오고 한국당에선 안 나오는 거야?"

담소의 주제는 최근 정치권으로 번진 미투 운동(metoo, 성범죄 피해 고발 캠페인)이었다. 비서 성폭행 의혹으로 충격을 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이어 서울시장에 도전한 정봉주 전 의원도 대학생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터였다.

이 문제적 담소를 좀 더 엿듣고 싶었지만, 낮 2시에 맞춰 가야 할 토론회가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질문에 대한 한 답변이 이날 행사에서 나왔다. 답변의 주인공은 민주당 비서관인 여성 토론자 이보라씨였다.

"오히려 진보 진영에서 피해 고발이 이어지는 건, 피해 사실을 밝힐 수 있는 여건이 '그나마'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그나마"라고 강조했다.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날 기념 토론회, 성평등한 국회 더 좋은 민주주의'에서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성평등한 국회 더 좋은 민주주의' 토론회에서 축사를 마친 후 다른 일정 참석을 위해 토론장을 나서고 있다.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지상욱 바른미래당 정책위의장도 참석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성평등한 국회 더 좋은 민주주의' 토론회에서 축사를 마친 후 다른 일정 참석을 위해 토론장을 나서고 있다.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지상욱 바른미래당 정책위의장도 참석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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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말하기' 할 구조가 없는 것"

이보라 비서관은 발언을 이어갔다.

"국회 내에서 말해지지 않는다고 해서 (미투 사례가) 없는 게 아니라, 말할 구조가 마련돼 있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여성 보좌진 중 90% 이상은 피해 경험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 비서관은 국회의 폐쇄적인 구조에서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고발이 나오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 비서관은 "국회 미투 증언들이 이제 막 터져 나오기 시작했지만, 증언이 아무도 보지 않는 국회 광장 홈페이지이나 페이스북 익명 게시판을 통해 나왔음에 주목해야 한다"라며 "그동안 국회 여성들이 피해사실을 발화할 수 있는 공간과 공적 영역이 얼마나 부재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여성정책연구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또 "여성 보좌직원들은 피해사실을 공표할 경우 (보좌하는) 의원 이름이 공개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라며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피해자들이 고립돼 있지 않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비서관은 국회의원과 언론이 없는 상태에서 보좌진들의 성폭력 피해사실을 고발할 수 있도록 '말하기 대회'를 열 생각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비서관은 미투운동이 정치권으로 옮아가며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미투가 정쟁으로 전락하는 논의들이 시작됐다"라며 "그런 시도 자체가 오만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질문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려봐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함께 토론자로 나선 자유한국당 이혜인 비서관도 "최근 실명을 밝히며 피해를 고발한 보좌진 분들이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번뇌하고 고민하셨을지 생각한다. 미투운동이 변질되지 않길 소망한다"라면서 이 비서관의 의견에 동의했다.

"남녀의원 수 같게 하고 여성 상임위원장도 더 많이 나와야"

이날 토론회에서는 ▲ 남녀의원 동수 ▲ 여성 상임위원장·간사 증대 등 성평등 실현을 위해 국회에서부터 실질적인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국회는 이제야 여성의원 비율이 17%에 달한 상황"이라며 "여성의 정치적 과소대표 문제를 해결하고 대의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대표성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남녀의원 동수 방안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의원 남녀) 동수헌법은 세계적인 추세"라고도 덧붙였다.

김 소장은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에서 젠더 의제를 선정하기 위해서라도 여성 상임위원장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도 말했다. 김 소장은 "20대 국회에서 여성 상임위원장은 16개 상임위 중 한 곳(여성가족위원회)에 불과하다"라며 "상임위원장이나 간사직 등 의사결정직에 대한 여성 의원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보라 비서관은 "여성운동의 산물로 현재 비례대표 의원의 남녀동수 공천이 실행되고 있는 만큼, 여성 비례대표 의원들이라도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 보좌진들을 채용함으로써 수혜 범위가 확대돼야 한다"라고도 했다.

"또다시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도록..."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성평등한 국회 더 좋은 민주주의'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지상욱 바른미래당 정책위의장도 참석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성평등한 국회 더 좋은 민주주의'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지상욱 바른미래당 정책위의장도 참석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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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투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 때문인지 이날 토론회에는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박병석 의원(대전 서구갑),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 지상욱 바른미래당 정책위의장 등 남성 의원들이 대거 참석해 축사를 보냈다.

한 여성 보좌관은 이를 두고 "여성 주제 토론회에 남성 의원들이 이렇게 많이 참석한 건 처음인 것 같다"라고도 했지만, 토론회 시작 30분이 지나고 의원들이 각자 일정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테이블엔 다시 여성 토론자들만 남았다. 한 토론자는 이렇게 말했다.

"항상 불만인 건 왜 이런 얘길 여성들끼리만 해야 하냐는 거예요. 오늘의 자리가 우리만의 리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2시간 30여분 동안 진행된 토론회 말미, 또 다른 토론자가 이렇게 화답했다.

"미투운동의 기회를 또다시 '그들만의 리그'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맙시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남인순 민주당 의원(서울 송파구병·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은 "이제 국회가 미투에 응답하겠다"라면서 이날 토론회를 마무리했다. 10여 명의 여성 토론자들은 말없이 박수를 쳤다.


태그:#METOO,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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