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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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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2시께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성평등 토론회.

"국회 내에서 말해지지 않고 있다고 해서 미투(metoo, 나도 고발한다) 사례가 없는 게 아닙니다. 말할 구조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것 뿐입니다. 여성 보좌직원 중 90% 이상은 피해 경험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 현직 국회 비서관의 발언이 토론회장을 가로질렀다. 10여 분간 열변이 이어지는 동안 토론회장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마이크가 꺼지자 다른 여성 토론자들에게선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발언자는 국회 여성정책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이보라 비서관이었다. (관련 기사 : "진보진영서 미투 나오는 건 '그나마' 고발할 여건 있기 때문")

이 비서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비서 성폭행 의혹을 기점으로 정치권 내 미투가 시작됐지만, 그는 성폭력 고발이 나오기 힘든 국회의 폐쇄적 구조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이 비서관은 9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회는 의원이나 남성 상급 보좌관이 생사여탈권을 쥔 구조"라며 "국회에서 피해자들이 좀 더 말하기 편한 구조가 있다면 가해행위에 대한 증언은 봇물 터지듯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비서관은 최근 여성 인권이라는 미투 운동의 본질을 잊은 채 단순 가십거리로 사안을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도 따끔하게 지적했다. 이 비서관은 "언론사들이 선정적인 사례 수집에 혈안이 되어 있다"면서 "더욱이 국회는 기사로 만들기 좋은 환경이다 보니 여성 보좌직원들에게 상당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질문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전화 인터뷰가 아닌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언론과 국회의원을 제외한 여성 보좌진 고발 대회도 계획 중이라고 했다.

다음은 이 비서관과 <오마이뉴스>가 나눈 서면 인터뷰를 정리한 것.

"맞은 사람들이 왜 또 다시 뭔가를 걸어야 하나"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와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과 함께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에서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와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과 함께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에서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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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여성정책연구회 회장을 맡고 계시다. 어떤 기관인가.
"국회 여성정책연구회는 국회사무처에 등록된 직원연구모임이다. 입법기관에서 소수 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젠더 중심적 사고를 하기 위해 국회 내 여성 보좌진과 직원, 당직자 등이 주축으로 현재 8년째 운영되고 있다.

연구회 회원들은 2주에 한 번씩 모여 젠더 관련 의제들을 토론하고 공부하고 있다. 각 부처 여성고위공무원들을 모시고 여성으로서의 고충과 해결과제를 듣기도 하고, 여성 문화예술인이나 학자, 시민사회 활동가 등과 함께 현안과 관련한 의견도 나누고 있다."

- 미투 운동이 정치권으로 옮아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곪아왔던 부분이 터졌다는 반응이 많다. 국회 미투 운동의 현재를 어떻게 평가하나. 또, 앞으로는 어떻게 운동이 이어질까.
"국회는 언론과 민심에 가장 민감한 기관이라 정치이슈와 현안들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지만, 내부의 변화는 가장 더딘 기관 중 하나다. 미투 운동은 피해자들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는 조직과 사회구조가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 미투가 단순한 폭로가 아닌 우리 사회에 연대를 요청하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회에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구조가 있었는지 아프게 돌아본다. 지금은 그런 구조가 전무하다. 때문에 전적으로 피해자들의 직을 걸고, 삶을 건 용기에 기댈 수밖에 없다. 맞은 사람들이 왜 다시 또 뭔가를 걸어야 하나. 국회에서도 피해자들이 좀 더 말하기 편한 구조를 만들면 가해행위에 대한 증언은 봇물 터지듯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성평등 토론회에서 성폭력 고발이 나오기 어려운 국회의 폐쇄적 구조를 말씀하셨다. 일반 시민 입장에선 국회 내부의 사회는 생소한 측면이 있다. 보좌 직원의 입장에서 어떤 문제가 가장 큰가.
"첫째, 국회의원과 보좌진 간의 관계를 보겠다.  국회 보좌진의 법률적 근거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있다. 여기서 '등'에 해당하는 것이 보좌진에 대한 법률적 근거의 전부인 셈이다. 그마저도 보좌진 처우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보좌진 정수 규정이다. 보좌진 방어권이 전혀 없는 구조에서 보좌진이 의원에게 당하는 폭력을 문제화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좌진은 노동환경에 대한 안전망이 부재하다. 실제로 의원의 기분에 따라서 하루아침에 면직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상임위에서는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상 30일의 해고 예고제를 지켰는지 캐묻지만, 실제 내부 직원들한테는 그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의원실이 상당수다. 보좌진들은 씁쓸해하면서 질의서를 쓴다.

둘째, 보좌진 내부 사회의 문제를 보자. 일단 국회는 공개채용보단 상급자의 평판으로 채용이 직결되는 시스템이다. 게다가 국회 보좌진의 최고직급인 4급 보좌관 중 남성은 93%가 넘는다. 이에 반해 하급직급인 8, 9급 중 여성은 70% 이상이다. 전형적인 남성 중심의 피라미드 구조이다.

때문에 취직하려면 남성 상급자들의 평판이 핵심적일 수밖에 없다. 남성 보좌관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문자 그대로 '만연'하지만 직을 걸지 않는 이상 하급직 여성들이 문제제기 할 수 없게 된다. 국회는 요즘 어느 기관이나 다 있는 '성폭력 상담 신고센터' 같은 기본적인 구조조차 없다. 시류에 뒤쳐져도 한참 뒤쳐졌다."

미투는 단순 폭로 아냐... 절박한 '말 걸기'에 정치권도 연대해야

- 그런 구조에 대한 해결책이 있을까.
"외부 전문가를 전임으로 두는 '국회 인권센터'를 설립하자는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고 한다. 남인순 민주당 의원(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당 젠더폭력대책TF위원장)의 제안으로부터 나와 실행됐다. 한 단계 진전으로 본다. 뿐만 아니라 보좌진들이 가깝게 얘기할 수 있는 보좌진 내의 기구도 필요하다. 각 당에는 보좌진협의회가 있는데 그 협의회 산하에도 성폭력신고센터가 있어야 할 것이다."

- 토론회에서 국회의원과 언론을 배제한 '여성 보좌진 말하기 대회'도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실제 실행하실 계획인가. 어떤 취지인가.
"다시 강조하지만 국회 성폭력은 피해사실이 없는 게 아니라 말할 구조가 없어서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끼리의 말할 구조를 만들자는 취지로 '여성 보좌진 말하기 대회'를 제안한 것이다. 여건이 되면 곧 실행할 것이다.

미투 운동이 이슈가 되면서 언론사들은 선정적인 사례수집에 혈안이 돼 있다. 더구나 국회는 기사를 만들기 좋은 환경이다 보니 여성 보좌진들에게 상당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질문을 하고 있다. 여성 보좌진들이 이런 폭력을 개별적으로 감내하는 게 아니라 사례가 집적돼 공표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지역구 선거를 앞두고 여성 보좌직원이 부당하게 해임되는 등 불평등 사례를 드셨다. 또 다른 사례가 있을까.
"기본적으로 여성을 보좌진으로 잘 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선거시기 어느 곳에 파견갔는데, '응? 서울에서 보좌관이 오신다고 들었었는데 여성이시네요?'라는 반응이 첫 인사였을 정도이다. 여성 보좌진 후배들에게는 정부기관들 대응하는 방법을 일러주면서 동시에 성폭력에 대처하는 법도 알려줘야 할 정도로 일상적 업무 속에 성폭력이 내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사회 전반으로 파진 미투 운동에 대해 정치권은 어떻게 응해야 할까.
"피해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삶을 걸고'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고 증언하고 또 누군가는 '직을 걸고' 증언한다. 도대체 어떤 범죄 피해자가 피해 당한 사실을 고발하면서 또 자기 인생까지 갈아 넣는 경우가 있나.  지금 2, 3차 가해들이 횡행하고 있는데, 가해행위를 멈추고 삶을 건 피해자들의 절박함에 연대해주시라. 그리고 우리 사회에 하는 피해자들의 절절한 '말 걸기'에 책임감으로 응답해주시라."


태그:#METOO,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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