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투 운동은 성폭력을 겪은 이들 모두를 위한 것이다. 경찰 및 검찰 등을 통한 정상적인 방법의 해결이 불가능한 성범죄를 대중에 폭로하여 해결하려는 취지이다.
▲ 미투 운동 미투 운동은 성폭력을 겪은 이들 모두를 위한 것이다. 경찰 및 검찰 등을 통한 정상적인 방법의 해결이 불가능한 성범죄를 대중에 폭로하여 해결하려는 취지이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그동안 성폭력 문제는 대부분 '여자'의 책임으로 돌려졌다. 이른바 '꽃뱀론'이다. 여성이 남자를 건드려 골탕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성폭력 사실을 어렵게 입에 올린 여성은 꽃뱀론에 시달리며 다른 사람에게 질타를 받을까 두려워해야 했다. 섬마을 성폭력 사건 등이 그렇다.

어른의 협박을 받은 어린 아이들은 침묵해야 했고, 여성 직장인들은 직장 상사의 으름장에 울며 겨자먹기로 출근했으며, 매 맞는 주부들은 자식들을 위해 죽기살기로 버텼다. 연예인 고 장자연씨는 성상납 리스트를 세상에 공개하며 마지막으로 절실하게 호소했다. #미투를 넘어 #체인지 업까지. 사람들은 외치고, 동참하고 있다.

주로 남성들은 '성폭력'이란 단어에 예민해한다. 어떤 남성들은 혹여나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성욕을 참지못한' 개개인의 문제나 '여성'의 조신치 못한 행동에 책임을 묻기도 한다.

성폭력 문제는 만연하고, 무엇보다 왜곡됐다. 줄줄이 터져나오는 성폭력 폭로들에 대중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저래?'란 질문을 던지지만, '왜 남성은 성폭력을 저지를까?'란 근본적인 물음은 하지 않는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말을 통해 짚어보자.

[하나]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 성폭력이 아니에요"
- 가해자의 노골적인 방패막, 사랑


"잠시나마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달 28일 배우 오달수가 성폭력 사실을 폭로한 A씨에게 남긴 사과문의 일부다. 25년 전의 오랜 기억을 다시 되짚으며, 그가 내놓을 수 있는 말이 결국 '연애'감정이었을까. 마찬가지로 성폭행 의혹이 제기됐던 세종대 김태훈 교수도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사과문에 "서로간의 호감의 정도를 잘못 이해하고 행동"했다는 표현을 썼다.

서로가 당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하지만 설사 그런 감정이 존재했던 사이라고 하더라도 폭력은 폭력이다. 이들이 내놓은 말은 적절한 해명 혹은 사과라고 보기 어렵다. '연애감정'ㆍ'호감'을 사과문에 사용하는 일은 이 문제를 '과거 연인관계였던 이들의 갈등' 정도로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

우리는 남녀 '연애'의 관계에 보다 유순하게 접근한다. 남성 페미니스트인 토니 포터의 <맨박스>에선 커플로 보이는 남성과 안면식 없어 보이는 남성이 각각 여성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상황을 가정하고, 평범한 남성들에게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인지 물어본다. 남자들은 전자는 일단 지켜본다고 답했고, 후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를 밀칠 것이라고 했다.

어느 누구든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 어떠한 관계였느냐가 여성을 향한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

"부부사이의 성폭력행위가 왜 위법이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무리 강제적으로 성행위를 요구했다 하더라도, 왜 이것이 성폭력이 되며 부부간의 문제인데도 법적인 문제로 커지는지..." 2005.06.26. 13:57 조회수2,094  (출처 : 네이버 지식in)

이처럼 누군가는 부부사이의 강제적인 성관계를 두고 '성폭력이 맞긴 하냐'의 의심부터한다. 그러나 부부사이라는 관계를 넘어, 본질적인 문제를 직시해야한다. 성관계는 상대방이 동의했느냐가 중요하다. 동의하지 않았다면 성폭력이다.

흔히 여성들은 관계를 거절하면 이후에 일어날 부정적인 상황을 염려한다. 부부사이가 안 좋아지거나, 거절이 불러올 폭력을 걱정했다. 여성들이 가정 내 가정폭력ㆍ 성폭력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다. 폭력이 동반되어야만 성폭력인 것은 아니다. 부부ㆍ연인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 혹은 남성이 스스로 성관계에 '동의 의사'를 밝히고, 심적으로도 관계에 임하려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가벼히 입에 올리지 말자. 어떤 이유에서든, 사랑이 동의하지 않은 성폭력에 대한 변명이 될 순 없다.

[둘] "딸 같아서 그랬어요"
- 모순으로 가득 찬 자기 변명

<티브이리포트> 보도에 따르면, 여배우 A씨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극단 대표 김영수는 피해자에게 "딸 같아서", "애기 같고 강아지 같아서 아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또 <한겨레>보도에 따르면, 한 음대 교수는 넉달동안 '일대일 도제식 교육'을 활용해 18~22세 여성들을 성추행한 혐의가 포착됐다. 그도 역시 성적 폭언을 하면서 "딸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딸 같아서"는 박희태(76) 전 국회의장이 골프장 캐디를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받자 '해명'하겠다며 한 말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딸, 아들같아서 성추행을 했다는 사실은 믿겨지지 않는다. 자식에 대한 부성애를 모욕하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분명히 모순된 자기방어적 변명이다. 책 <82년생 김지영>에서는 노래방에서 ' 딸 같다며' 성추행을 하던 남성부장이 귀가하는 고등학생 딸을 태우러 나가는 내용이 들어있다. 성범죄자와 든든한 가장, 모순된 양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딸 같았으면 따스히 조언해주고, 아들 같았으면 든든한 격려를 했어야 했다. 혹시 주변에 성폭력 가해를 하거나, 피해를 입는 이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그게 '자식같이' 느낄 때 해야할 행동이다. 가해자들은 너무나 당당하게 이런 말을 입에 올린다. 참 우습고도 답답하다.

[셋] "그날의 일이 기억나지 않아요"
- 대체 무슨 행위를 저지른 것이죠, 당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과거 청문회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모른다'고 일관해 큰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그 말이 지금 다시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피해자는 10년, 20년이 지나도 생생히 기억하는 상처를 어째서 가해자는 '모른다'며 부인하는 걸까. 이에 관해 박이은실 여성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모르는 이들이 천지다. 그들이 그것을 모르는 까닭은 그들이 다만 무지해서가 아니다. 몸에 대해 무지해도 될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무지할 따름이다. 권력자의 적극적 무지에 기대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몰랐다', '그런 의도는 내게 없었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 (2018.3.8 한겨례 발췌)

본인의 권력적 위계에 기대어 성추행이라는 인식없이 타인의 몸을 만졌다니. '힘이 낳은 괴물'이라는 말이 정확하다 싶다. 권력은 올바르게 일을 통솔하고 진행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마음대로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칼럼에서 '수많은 성추행ㆍ성폭행을 저지른 사람은 모든 관계를 기억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이 무뎌진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있다.

심지어 어떤 변호사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가해자들이 혐의를 벗기 위해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하라'고 말한다. 범죄를 인정해버리면 처벌의 가능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의 부끄러운일, 나쁜 짓'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쓰며 우회적으로 범행을 완화하려는 표현 역시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20년 전 테니스 코치의 성폭행을 증언한 김은희씨가 떠오른다. 오래된 일이라고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세월이 지날 수록 상처는 깊어지고 기억은 뚜렷해진다. '발뺌' 변명은 그만두고, 부끄럼없이 스스로 범죄를 자백하기를 바란다.

[넷] "덫에 걸린 짐승처럼, 팔도 다리도 잘렸다"
-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과'인가

유명 배우 오달수를 둘러싼 논란은 많은 팬의 분노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나 역시 그의 영화를 챙기던 열성팬이었기에, 실망스러움은 극에 달했다. 그가 진심어린 사죄를 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의 사과문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과문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다면 그 사람은 굉장히 소심했고 자의식도 강했고 무척이나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글 쓰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 희곡이나 소설을 써보라고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미 덫에 걸린 짐승처럼 팔도 잘렸고, 다리고 잘렸고, 정신도 많이 피폐해졌습니다." - 배우 오달수 사과문 일부

마치 '너도 피해자면, 나도 피해자야'라는 식으로 읽히기도 한다. 피해자에게 전하는 사과문으로선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라고 여겨진다. 어떤 의도로 실은 문장인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본인이 그런 감정을 느꼈더라도 피해자에게 건네는 '사과문'에 실어서는 안될 표현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폭로로 인해 현재의 위치가 불안정해져 슬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는 몇십 년이고 그 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뼈아픈 고통 속에 눈물을 삼킨다.

미투 운동이 퍼지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사과문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지만, 진심으로 피해자에게 사죄를 구하는 게 아니라 '가족과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논란을 의식해 입장을 내놓으면서도,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한 마디 남기지 않는 것은 무슨 심리일까. 더불어 '제 자리를 모두 내려놓겠습니다'라는 표현 역시 자신의 권력적 위치를 강조할 뿐,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반성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중들과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은 한 가지다. 진심 어린 사죄와 마땅한 처벌. 어떠한 변명과 도피도 이를 비호할 수 없다.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가 큰 성범죄에 대해서는 엄하고 단호하게 법의 판결이 필요하다. 더 이상 가해자들이 법의 그늘 아래 비겁하게 숨지 않길 바란다. 그들이 진실을 말할 때까지 미투는 계속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성폭력은 어떤 변명과 왜곡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가해자들이 반드시 올바른 사과와 정당한 처벌을 받길 바랍니다.



태그:# ME TOO, #성폭력, #가해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