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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항 강구안 언덕 위에 자리한 벽화마을. 벽화마을의 원조이다.
▲ 통영 동피랑마을 통영항 강구안 언덕 위에 자리한 벽화마을. 벽화마을의 원조이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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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벽화마을에 가면

"무십아라! 사진기 매고 오모 다가. 와 넘우집 밴소깐꺼지 디리대고 그라노? 내사 마, 여름 내도록 할딱 벗고 살다가 요새는 사진기 무섭아서 껍닥도 몬벗고, 고마 덥어 죽는줄 알았능기라."

이게 무슨 말인가? 외국어인가? 분명히 한국어인데? 글은 한글이지만, 이 글이 무슨 뜻인지는 아는 사람만 안다.

경남 통영시 동피랑마을 입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길가에 '알쏭달쏭 재미있는 통영 사투리' 시리즈가 붙어 있다. 동피랑마을에 다녀왔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본 적 없다고 할 정도로 보통 방문객들에게 외면당하고 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말 그대로 재미있다. 위 글은 그 중 하나다.

이를 번역(?)하면,

"무서워라! 사진기 매고 오면 다예요? 왜 남의 집 변소까지 들여다보고 그래요? 나는 여름내 옷을 벗고 살다가 무서워서 옷도 못 벗고 그냥 더워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서포루에서 내려다본 강구안 풍경. 야경도 좋다.
▲ 서포루에서 내려다 본 통영 강구안 풍경 서포루에서 내려다본 강구안 풍경. 야경도 좋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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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벽화마을 참 많아졌다. 전국 대도시와 오래된 도시들에 가면 꼭 하나씩은 있는데, 그들 중 동피랑마을은 원조에 해당하며, 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모든 벽화마을이 그렇지만, 동피랑마을은 엄연히 사람이 사는 생활공간이다. 언제부터인가 마을 구경을 위해 찾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진 이후 동네 사람들은 상당한 불편함을 겪어 왔다. 밤낮으로 찾아와 시끄럽게 떠들고 즐거워하면서 사진 찍는다고 동네 주민들 괴롭히고, 허락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가고, 주민들 붙잡고 포즈 좀 잡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의욕이 과하여 기본 매너를 잃어버린 사진 동우회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

방문객들이야 왔다가 사진 찍고 즐기고 가면 그만이지만, 주민들이야 시도 때도 없이 항상 겪는 일들이 불편할 것이다. 벽화 덕분에 철거와 이주는 피했지만, 이번에는 벽화 때문에 불편을 겪는 셈이니 세상 모든 일에 이렇듯 양면성이 있다.

오죽하면 한때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의 명물, 천사 날개 그림이 주민들에 의해 지워졌겠는가. 즐겁기야 하겠지만, 동네 주민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재개발계획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던 마을이 도시 재생 벽화 프로젝트 덕분에 살아 남았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물 벽화마을이 됐다.
▲ 동피랑마을 벽화 재개발계획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던 마을이 도시 재생 벽화 프로젝트 덕분에 살아 남았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물 벽화마을이 됐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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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마을의 원조, 동피랑 벽화마을이 생긴 이유

흔히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인 미항으로 첫 손 꼽는 곳. 푸른 바다와 오밀조밀한 해안, 구석구석 바다 위로 솟아올라 빈틈없이 바다 사이를 채우는 숱한 섬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는 곳, 바로 경남 통영시이다.

봄이 되면 통영시는 온화한 바람이 불며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따뜻한 고장이 되며, 제철 살 오른 봄 도다리에 향이 강한 햇쑥을 넣어 끓여낸 도다리쑥국을 맛볼 수 있는 고장이 된다. 유달리 햇빛이 강렬하여 봄 햇살에 온몸이 포근해지는 고장이기도 하다. 봄맞이 바다여행으로 이만한 항구도시가 드물다.

이 통영항을 바로 남쪽으로 내려다보는 작은 언덕 위 동피랑 벽화마을이 요즘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아진 벽화마을의 원조이다. '피랑'이 절벽이나 벼랑을 의미하는 말로, 동피랑은 동쪽 벼랑을 의미한다. 본래 조선시대 통영성을 방어하던 동포루가 있던 곳이다.

'원조' 벽화마을이다 보니 이후에 생긴 수많은 다채로운 벽화마을보다 오히려 규모가 작고 소박하다. "엥? 이게 다야?"라는 서울 말씨가 들려오기도 하니 말이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다 보니, 특히 서울, 경기권 젊은층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띌 정도로 전국구의 명소라 동피랑에서는 경상도 말보다 서울 말씨가 더 많이 들려온다. 무슨 관광특구 같은 느낌이다.

본래 통영시는 이 언덕의 낡은 집들을 철거하고 동포루를 중심으로 공원을 조성하려 하였다. 그런데 2007년 한 시민단체가 '동피랑 색칠하기 전국 벽화 공모전'을 열었고, 여기에 호응하여 일반 학생들과 미대 재학생들, 개인 등이 참가하여 담벼락에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들이 유명해지면서 방문객들이 많아지자 결국 마을이 보존되고, 통영시는 마을 꼭대기의 집 세 채만 철거하고 동포루를 복원하였다.

어느 도시에나 있었던 철거 직전의 언덕 위 낡은 마을을, 벽화를 통해 재생한 첫 번째 사례가 된 것이다. 이후로 전국 각지에는 이러한 벽화마을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서, 지금은 특수성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저 오래 되면 다 부수고 다시 새로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틀에 박힌 개발 관념을 벗어나, 리모델링을 통해 얼마든지 새로운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발상만은 우리의 문화 환경에 훌륭한 모범 사례로 남게 되어 의미가 깊다.  

그 첫 사례가 하필이면 통영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남해안에서 첫손에 드는 미항에, 수많은 문화인과 예술인을 배출한 예향(통영 사람들은 인구 비례로 가장 많은 유명 문화예술인을 배출한 고장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문제는 요즘엔 그렇지 않다는 거다), 통영에서 탄생한 충무김밥과 꿀빵, 통영다찌, 도다리쑥국 등 다섯 손가락에 꼽기도 어려운 숱한 창의적 음식 문화들, 넉넉한 마음과 여유를 가진 통영 사람 특유의 기질이 결합하여 새로운 문화 환경이 창출된 것이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강구안에서 올라간 동피랑마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천사 날개 벽화들이 나온다. 천사 날개의 원조들이다.
▲ 동피랑마을 천사 날개 벽화 강구안에서 올라간 동피랑마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천사 날개 벽화들이 나온다. 천사 날개의 원조들이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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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마을은 항구(남서쪽의 실제 통영 항구와 구별해서 강구안이라고 부른다) 앞의 중앙시장 동쪽, 동피랑 꿀빵집 옆 골목으로 올라가면 된다. 물론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는데, 이 길로 올라가는 코스가 가장 전형적인 코스이다. 벽화들이 하나둘 나타나는 경사진 길을 2~3분 정도 올라가면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에 동피랑마을 입구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있다.

마을은 언덕 위 타원형의 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서 원점 회귀할 수 있는 형태이다. 즉, 좌우 어느 쪽이든 길 따라 한 바퀴 돌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물론 겉에서 한 바퀴만 돌면 겉핥기가 되는 셈이고, 그 안에 들어앉아 있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 그려진 벽화와 전망을 돌아보면 마을의 더 다양한 생태를 확인할 수 있다. 

마을 오른쪽 길을 따라 가면 원조 '천사의 날개' 그림이 있다. 지금은 흔해 빠진(?) 천사 날개지만, 그래도 원조인지라 기념사진 찍으려고 줄을 선다. 모두 잠깐이나마 천사가 되고 싶은가 보다. 그런데 길을 따라가면 천사 날개 그림이 또 있다. 양쪽 다 사람 많다.
 
언덕 위로 올라가면 가장 높은 꼭대기에 동포루가 있어 잠시 쉬어갈 만하며 이곳에서 통영 항구 일대 전체가 잘 조망된다.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언덕 명칭을 차용한 카페. 목 마르면 들러가라는 말인데, 발상이 재미있다.
▲ 동피랑마을 몽마르다 언덕 카페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언덕 명칭을 차용한 카페. 목 마르면 들러가라는 말인데, 발상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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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루 아래로 작은 골목들이 구석구석으로 이어지는데, 이 골목을 다니면 많은 벽화를 만날 수 있다. 골목에는 항구를 내려다보는 카페들이 여럿 있어 시간 여유가 있으면 쉬어 갈만하다.

약간 가파른 경사면의 <해마루언덕>과 이름도 재미있는 <몽마르다 언덕> 카페가 가장 눈에 들어온다. 재치 있는 이름 때문에 여기 들어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전망도 좋다. 정말 언덕 위로 걸어 다니다 땀나고 목마르면 들어오라는 얘기니,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을 잘도 차용했다.

몽마르다 언덕 카페 아래로 원피스 벽화가 있는데, 젊은층이 꽤 좋아하여 보통 10~20대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다. 벽화 인물들의 포즈를 흉내 내며 사진 찍는 이들도 많다. 나이 좀 있는 사람들은 저게 뭔가 하는 듯이 힐끔 쳐다보고 지나간다. 벽화에 대한 사람들 반응만 봐도 즐겁다. 세대 차이가 느껴진다.

대개 만화를 즐기는 젊은층만이 아는 원피스벽화.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만, 아는 사람들은 이들의 포즈를 흉내 내며 사진을 찍는다.
▲ 원피스 벽화 대개 만화를 즐기는 젊은층만이 아는 원피스벽화.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만, 아는 사람들은 이들의 포즈를 흉내 내며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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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피랑마을에서 사랑 고백하고 피아노를 치다

동피랑이 있으니 서피랑도 있다. 동피랑마을이 비교적 오래된 벽화마을이라면, 서피랑마을은 좀 더 '핫'한 곳이다. 사실 두 마을 간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통영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활약했던 거점 중 한 곳이었다. 조선 선조 37년(1604) 삼도수군통제사 이경준이 지금의 통영으로 통제영을 옮긴 다음 크게 번성하다가, 숙종 4년(1678) 윤천뢰 통제사 때 항구 뒷산을 빙 둘러싸는 통영성을 건립하였다. 통영성은 남쪽으로 통영항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조성한 성(城)으로, 남해안 일대 최고의 군사적 거점 기능을 했다.

이 통영성 동쪽 언덕 위에 동포루, 서쪽 언덕 위에 서포루, 북쪽 언덕 위에 북포루를 세워 망루 겸 전망대 역할을 했는데, 바로 이 동포루 아랫마을이 지금의 동피랑마을, 서포루 아랫마을이 지금의 서피랑마을이다. 

이들 중 동피랑마을이 먼저 벽화마을로 만들어지고, 동피랑마을이 전국적인 명성을 탄 이후 서피랑마을도 벽화마을로 변모하였다. 하지만 서피랑마을은 좀 더 진화된 형태의 마을이다.

하늘색 바탕에 다양한 색깔이 덧칠해진 99계단. 아래에서 보면 끝이 잘 안보인다. 이 마을 출신 소설가 박경리의 상징인 나비 그림과 그의 글이 곳곳에 있다.
▲ 서피랑마을 99계단 하늘색 바탕에 다양한 색깔이 덧칠해진 99계단. 아래에서 보면 끝이 잘 안보인다. 이 마을 출신 소설가 박경리의 상징인 나비 그림과 그의 글이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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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피랑마을 아래를 지나는 도로에 '서피랑 이야기'라는 안내판이 있다. 이 안내판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서면 벽화들이 나타나고, 눈앞에 긴 계단이 막아선다. 99계단이다. 계단 맨 아래에 '여기는 서피랑, 99계단입니다'라는 글씨가 친절하게 써져 있다.

하늘색 바탕색을 칠한 계단을 오르면 중간 중간 사진 찍는 포인트들이 있고, 노란색, 녹색, 주황색, 파란색, 빨간색 등 다양한 색깔의 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왼쪽으로는 오래된 집과 벽이 이어지는데, 이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계단과 벽에 그려진 그림들에는 유달리 나비가 많다. 이는 통영 출신 소설가 박경리의 상징이다. 그러고 보면 서피랑 마을은 박경리의 생가가 있는 곳이고, 곳곳에 박경리의 글이 쓰여 있다(박경리 생가는 99계단 위 언덕 너머 서포루 북쪽 세병관 가는 골목길에 있다).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벽면에 두툼한 푸른 나무와 장미 꽃다발 벽화가 있다. 프로포즈 벽화이다. 장미 꽃다발 그림이 있으니 따로 꽃을 준비할 필요 없다. 남성은 그저 무릎 꿇고 포즈만 취하면 된다. 젠장, 조금 부럽다. 왜 나 젊을 때엔 이런 게 없었지? 가벼운 마음으로 이벤트 하고 기념사진 남기기 좋구만.

무릎 꿇고 장미 꽃다발을 올려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벽화. 커플 기념 사진 촬영 장소이다.
▲ 서피랑마을 프로포즈벽화 무릎 꿇고 장미 꽃다발을 올려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벽화. 커플 기념 사진 촬영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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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중간에 오른쪽으로 피아노계단 가는 길이 있다. 가파른 언덕 측면에 난 작은 길을 산책로 삼아 걸아가면 명물 피아노계단이 나온다. 통영 출신의 음악가 윤이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계단이다.

200년 된 후박나무 옆 피아노 건반이 그려진 계단인데, 실제로 계단마다 음정이 있어 밟을 때마다 소리를 낸다. 사람의 발이 닿으면 센서가 이를 감지해 소리를 낸다고 한다. 굳이 아래위를 오르내리며 간단한 초등학교 시절의 노래를 연주하는 정성 어린 사람들이 가끔 있다.

조금 더 발품을 팔아 길 따라 오르면 서포루다. 갑자기 시야가 트이고 통영 시내와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동쪽 동피랑마을 위 동포루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동포루든 서포루든 모두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최근에 복원한 건물들이다. 고졸한 맛은 없지만, 양쪽 다 통영 강구안 바다를 내려다보는 맛이 시원하다 못해 쾌적하다. 

계단 바닥에 센서를 깔아 놓아 밟으면 소리가 난다. 아랫단부터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소리가 나므로, 발로 간단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
▲ 서피랑마을 피아노계단 계단 바닥에 센서를 깔아 놓아 밟으면 소리가 난다. 아랫단부터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소리가 나므로, 발로 간단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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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마을과 서피랑마을은 마치 이란성 쌍둥이 같다. 모태는 같지만, 외형과 양상은 다르다. 그래서 기왕 가는 김에 한 번에 다 둘러보며 비교하면 재미가 있다. 지금 전국 각지에 존재하는 벽화마을의 원조인 동피랑마을과 벽화마을의 가장 진보적 변형인 서피랑마을은 각각의 개성과 존재 가치가 뚜렷하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마을들은 마치 과거 서울 중심부 외곽의 산 위에 있던 달동네처럼 근대 이후 항구 가까이 붙어살며 절박한 심정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가난한 산 동네 마을들이었고, 재개발의 바람으로 철거 직전에 놓여 있었던 마을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의 삶은 모두 평범하지 않고, 저마다 사연이 얽히고설킨 이야깃거리들을 갖고 있다. 벽화마을을 찾아가 이를 즐기면서도 이들의 삶의 애환이 녹아 있는 마을에서 목소리 높이고 깔깔대며 떠들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 마을 자체가 그들의 삶터이며 생활의 현장이었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이다.

서피랑마을에 사는 박순애 할머니의 사연을 소개하며 마친다. 99계단을 오르다보면 어느 집 벽에 붙어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금방 눈에 들어온다. 

"내는 올해 칠학년 칠반인데, 일본에서 여덟 살에 나와서 고아로 자랐다 아이가. 신랑이 술만 먹고 안 야물어서 사는 기 참말로 힘들었다.
할배는 볼세 돌아가시고 지금은 혼자 산다. 꿀(굴) 공장에 가서 선별작업 같은 거 함서로 용돈벌이도 하는데, 그래도 지금이 좋다. 사는 기 다 그렇지 뭐 벨 기 있겄나!
우리 살 때는 다 묵고 살기가 힘들어서 벨시리 낙이 없었다. 내는 특기도 엄꼬, 욕심도 엄꼬, 줄 것도 엄꼬, 인자 바라는 기 있다면 안 아푸고 이래 살다가 자는 잠에 가는 기지."

고단하고 힘들었던 삶에 인생을 달관한 철학자의 품격(?)이 느껴진다. 할머니 말씀대로, 사는 게 별 게 있겠는가.

누가 가거나 오거나, 보거나 말거나 그(?)는 따스한 햇살 아래 자기 할 일(?)을 한다. 사는 개 별 개 있겠는가.
▲ 99계단의 풍경 누가 가거나 오거나, 보거나 말거나 그(?)는 따스한 햇살 아래 자기 할 일(?)을 한다. 사는 개 별 개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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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통영IC에서 나와 통영 시내로 진입, 강구안 거리로 간다. 강구안으로 들어서면 항구 풍경이 보이면서 오른쪽 언덕 위로 동피랑마을이 보인다. 강구안과 중앙시장에 주차한다. 서피랑마을은 동피랑 쪽에서 걸어가도 되지만, 충렬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거나 명정동 충렬로 길가의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면 더 가깝게 갈 수 있다.

* 통영 시내 각지에서 중앙시장을 경유하는 시내버스(통영 시내버스 대부분이 중앙시장을 경유한다고 보면 된다)를 이용, 중앙시장에서 내려 바닷가 강구안을 따라 3~4분 정도 걸어가면 동피랑마을 입구가 나온다.

서파랑마을은 역시 대부분의 시내버스가 가는 서호시장 정류장(증앙시장과 두 정거장 차이)에서 내려 충렬로를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입구가 나온다. 동피랑마을에 먼저 갔다면 마을 뒤편 세병관-충렬사 쪽으로 걸어가도 된다. 박경리 생가가 있는 마을 뒤편 언덕과 그 아래가 서피랑마을이다.

* 통영 시내가 다 거기서 거기고, 통영 사람들이 외지인들에게 익숙해서 길에서 물어보면 친절하게 잘 안내해 주는 편이다. 잘 모르겠으면 지나는 사람 붙잡고 물어 갈 것.

* 통영은 먹을 게 많은 고장이다. 동피랑 마을 아래의 바닷가 강구안에는 충무김밥집과 꿀빵집들이 즐비하다. 맛에 큰 차이는 없으니 현장에서 보고 마음에 드는 집에 가도 된다. 항구 골목 안에는 술값만 내면 안주는 무한정 나오는 다찌집들이 수두룩하다(요즘은 1인당 얼마 하는 식으로 계산하는 집이 많다. 어쨌든 안주는 해산물 위주로 계속 나온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보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곳에 가는 게 더 낫다. 또 통영은 굴 양식의 메카이니 곳곳에 굴 요리하는 집도 많다. 굴밥, 굴전 등 전통의 굴 요리 외에도 동피랑 마을 입구에는 굴 피자, 굴 오일 파스타 등을 파는 집도 있다.

통영의 명물 중 하나인 꿀빵. 서호시장 앞에서 서피랑마을 올라가는 길의 오미사꿀빵집이 원조다.
▲ 꿀빵 통영의 명물 중 하나인 꿀빵. 서호시장 앞에서 서피랑마을 올라가는 길의 오미사꿀빵집이 원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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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이는 말

통영을 아직도 '한국의 나폴리'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 나폴리에 가본 사람이라면 이런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걸 안다.

나폴리는 항구나 도시 자체보다 주변의 바다, 예를 들어 소렌토나 카프리 같은 곳들이 훌륭하다. 도시 자체는 한마디로 '생각보다 별로'이다. 더구나 브라질의 리우처럼 보이는 곳만 번드르르하고 심한 빈부격차에 범죄도 많은 곳이다. 통영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미항들 중에서 '한국의 시드니', '한국의 리우' 같은 용어는 거의 사용 안 하는데, '한국의 나폴리'라는 말은 꽤 사용한다. 아마 유럽, 특히 역사와 전통이 깊은 이탈리아의 도시라는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유럽과 이탈리아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기계적으로 '한국의 나폴리'라는 명칭을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비유도 적절한 비유를 해야지, 제발 문화사대주의 같은 이런 표현 좀 쓰지 말자.


태그:#동피랑마을 , #서피랑마을, #피아노계단, #천사 날개 벽화, #99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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