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엄마와 아내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갈등하고 불화하는 '위기의 주부' 이야기입니다. 정체성의 혼란과 번뇌를 글로 풀어보며 나의 언어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분명 기술적 발전과 각종 복지 혜택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육아는 힘든지, 아니 나를 비롯한 엄마들이 왜 이토록 힘들어하는지 알고 싶었다.
 분명 기술적 발전과 각종 복지 혜택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육아는 힘든지, 아니 나를 비롯한 엄마들이 왜 이토록 힘들어하는지 알고 싶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아이가 막 두 돌 지났을 무렵, 한의원에 보약을 지으러 갔다. 진맥을 짚어 보던 한의사는 맥이 너무 약하다며 혀를 찼다. 같이 갔던 친정엄마가 말했다.

"얘가 맨날 그렇게 힘들어서 죽으려고 해요."

엄마와 비슷한 연령으로 보이던 남자 한의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요즘 엄마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손빨래를 하나, 천 기저귀를 쓰나."

책 <82년생 김지영>에도 나오는 한의원 에피소드는 요즘 엄마들이라면 한 번쯤은 겪었을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이 키우기 힘들다고 하소연할 때마다 나보다 일찍 아이를 키운 친정엄마를 포함한 육아 선배들에게 위로와 공감은커녕 "나는 더 힘들었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물티슈가 흔하지 않던 시절, 남편은 손에 물 한 방울도 안 묻히는 게 자랑이던 시절, 시부모 밥도 해야 하던 시절과 비교한다. 심지어 아이 업고 냇가 찬물에 빨래하던 조선 시대 어머님들까지 소환하기도 한다.

전엔 더 힘들게 키웠으니 세탁기, 건조기, 청소기, 스마트폰, 외식, 남편 도움 받는 주제에 불평하지 말라는 거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예전은 예전이고 지금은 지금이죠" 같은 궁색한 답변만 해야 했다. 누가 더 힘든지 내기하자는 말도 아니고 단지 공감을 바랐을 뿐인데.

섭섭했지만 선배들 말마따나 분명 기술적 발전과 각종 복지 혜택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육아는 힘든지, 아니 나를 비롯한 엄마들이 왜 이토록 힘들어하는지 알고 싶었다.

모든 건 독박육아 때문일까?

2016년과 2017년 육아 키워드는 '독박육아'였다고 한다. 독박육아, '주변 사람이나 가족의 도움 없이 혼자 하는 육아'라는 뜻으로 현대 육아의 세태를 표현하는 함축적이지만 적나라한 말이다.

요즘 엄마들은 즐겨 쓰지만 이 말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원래 엄마 혼자 아이를 보아왔는데 왜 새삼스럽게 '독박'이라 표현하냐고 정색하기도 한다.

"패자 한 명이 모든 걸 뒤집어쓴다는 말을 신성불가침한 '육아'에 붙여 버리다니! 생명을 기르는 기쁘고 숭고한 일을 하면서 독박 쓴다고 하다니! 자기 자식 돌보는 게 그렇게 억울한 일, 피해 보는 일이야?"

'독박육아', 불편하고 거슬리는 말이 맞다. 기존의 통념에 물음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육아는 엄마만의 몫이라는 뼛속 깊이 새겨진 당연한 전제에 의문을 제기한다. '왜 나 혼자 해야 하는데?'라고 묻고,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두 번째, 육아는 기쁨 그 자체이므로 부정적 감정을 내비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에도 반기를 든다. 내 자식 내가 보지만 때론 억울하고 힘들다며, 엄마도 아이 키우기의 고충을 드러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아이 키우기에 따르는 불평은 꿀꺽 삼키라는 '육아엄숙주의'의 틀 안에선 인식할 수 없다. 엄마와 아이가 오직 단둘이 집 안에 갇혀 24시간 부대껴야 하는 상황, 오로지 엄마 혼자서,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고, 가르치고, 훈육하면서, 친구도 되고 선생도 되며 무한 변신하는 상황, 주변의 도움이 있어도 양육의 책임과 결과를 단 한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상황.

이러한 것들이 당연시되는 지금의 모습은 역사상 어느 시대에도 없던, 전무후무하게 등장한, 희귀하며 특수한 '현대판 양육'의 한 모습이라는 것을.

'독박육아'는 현대 사회상의 한 단면이며 육아하며 겪는 고충을 압축적으로 표현해준다. 엄마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고충을 구구절절 말하고 설득하는 수고 없이 '독박육아'라는 언어를 빌려 항변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육아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회적 공론장을 만들었다. 육아를 사회문제로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독박육아 때문이다'라고 말하기엔 조심스럽다. '독박육아'라는 프레임의 편리함과 명쾌함만큼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혀 있는 사회적 문제들이 단순화되고 축소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는 단지 엄마(혹은 주 양육자) 혼자 모든 양육의 짐을 짊어지는 상황이라 힘들다고 쉽게 해석해 버리기보다 더 들여다보고 싶다.
 나는 단지 엄마(혹은 주 양육자) 혼자 모든 양육의 짐을 짊어지는 상황이라 힘들다고 쉽게 해석해 버리기보다 더 들여다보고 싶다.
ⓒ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캡처

관련사진보기


지금과 같은 '가족의 모습'이 갖춰진 건 서구에선 아무리 길어도 200년이고, '압축적 근대화'를 겪은 우리 사회에선 불과 40~50년도 안 되는 새 벌어진 일이다. 육아의 모습도 과거 수천 년에 비해 매우 특이하고 돌출적이다. 나는 단지 엄마(혹은 주 양육자) 혼자 모든 양육의 짐을 짊어지는 상황이라 힘들다고 쉽게 해석해 버리기보다 더 들여다보고 싶다.

양육자에게 부과되는 짐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무엇 때문에 그토록 과중해졌는지, 왜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이 키우기에 소모되는 정신적·물리적 에너지는 더 늘고 있는지, 왜 여성들은 더 이상 육아를 나의 온전한 일로 감내하며 받아들이고 참고 살 수 없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가장 많이 육아에 시간을 투자하며 가장 많이 공부하고 가장 잘하려 애쓰고 있는지... 유난 떨어서라거나 나약하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구조에 결박되어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앞으로 쓸 글에서 어린아이를 돌보면서 겪는 일반적이며 육체적인 어려움, 예를 들어 극심한 수면부족, 화장실에서 볼일조차 마음 편히 볼 수 없고,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도록 침해받는 양육자의 기본권 문제는 제외하려고 한다.

그보다 과거의 엄마들과 다르게 천 기저귀를 쓰지 않고 각종 가전의 도움을 받고, 궁금하면 바로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는 각종 육아정보 속에서도 왜 엄마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겪는지 살펴보고 싶다.

나는 아래와 같이 크게 네 가지로 '요즘의 육아가 힘든 이유'를 정리해 보려 한다.

1. '상전'이 된 아이들과 주 양육자에게 요구되는 '아이의 미래를 만들라'는 명령  
2. 너무 많은 선택지, 각양각색의 육아 방식이 주는 불확실성이라는 고문 
3. 유연해진 만큼 불안정한 노동환경, 유아에 적대적인 도심환경과 국제적인 규모의 환경재해  
4. 개인의 인생을 기획하라는 근대성의 요구와 모성애가 강요하는 헌신과의 충돌 

주 참고도서는 <모성애의 발명>(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정상적인 혼란>(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 울리히 벡), <부모로 산다는 것>(제니퍼시니어). 이 책들은 독일 사회학자와 미국 언론인의 연구서이다. 육아의 어려움이 비단 한국사회에서만 도드라지는 특수성이 아니고, 특정 개개인의 호들갑 또는 무능력이 아니라는 것에 나는 큰 공감과 위로 그리고 통찰을 받았다.

이 책들을 읽으며 요즘의 육아가 힘든 이유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고 앞으로 두세 차례에 걸쳐 관련 글을 써 보려고 한다. 당연히 저 이유들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도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 육아가 개인의 자질에 한정된 문제만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 수많은 육아의 과업 앞에서 '내가 잘못해서 혹은 못나서'라고 자책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한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와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태그:#독박육아 , #육아, #육아가힘든이유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주간애미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