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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찾아오는 초미세먼지. 이 정도면 '국가 재난'이다, '이민만이 답인가'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세먼지는 우리 일상을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국내외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엄마. 한국에서는 맨날 쓰던 물건인데 밴쿠버에는 없는 게 뭔지 알아?"

인터넷으로 한국의 뉴스를 살펴보던 초등학생 아들이 뜬금없이 퀴즈를 냈다.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이곳 캐나다 밴쿠버는 다문화를 매우 존중하는 분위기여서 세계 각국의 마트들이 다 들어와 있다. 때문에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 중 못 구하는 건 거의 없다.

한국 이민자들의 비중이 높은 밴쿠버의 위성도시 코퀴틀람의 쇼핑몰 주변엔 겨울철이면 호떡과 붕어빵을 파는 노점까지 들어설 정도니 말이다. 잘 모르겠다고 하자 아들이 답을 알려줬다. 한국에서는 매일 썼지만, 이곳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고 구할 수도 없는 것. 그건 바로 '마스크'였다.

정말 그랬다. 지난 겨울, 감기 기운이 있어 마스크를 하고 외출하려고 했으나 집 근처 마트든, 약국이든, 대형마트든 마스크는 팔지 않았다. 이민 온 지 오래된 이웃에게 마스크를 어디서 파냐고 묻자 "여긴 공기가 좋은데 마스크가 뭐가 필요 있어. 공사장이나 병원에서나 쓰지 일반인용은 안 팔 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마스크 없이 겨울을 났다. 그리고 한국에선 마스크 없이는 살 수 없었던 미세먼지의 계절이었던 봄이 됐다. 올해는 미세먼지가 더 극성인지, 한국의 뉴스를 보면 어김없이 메인 면에 미세먼지 농도가 나오고 친구들은 SNS를 통해 집에서 창밖 너머로 찍은 뿌연 풍경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곳 캐나다 밴쿠버에서 첫 봄을 맞고 있는 우리 가족은 아들이 퀴즈를 낼 때까지 '마스크'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금 우리 가족이 머물고 있는 캐나다 밴쿠버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목재들이 난다는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의 유일한 대도시이다. 밴쿠버 북쪽은 온통 삼림지대로 당연히 공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여름 이곳 밴쿠버에 도착한 후,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는 당연하지 않았던,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마스크 없이 지내게 된 것 외에도 이곳의 맑고 깨끗한 공기는 우리 가족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발코니에서 즐기는 차 한잔의 여유

먼저,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뻥 뚫린 발코니에서 차 한 잔을 하는 여유를 부리게 됐다. 한국의 아파트들은 발코니 바깥쪽이 대부분 유리창으로 막혀있다. 설령, 열어 놓았다 해도 뽀얗게 싸인 먼지를 보면, 결코 나가고 싶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은 아무리 작은 아파트라도 발코니를 꽤 넓게 만들어 놓았다. 대부분 가정에서 발코니는 테이블과 바비큐 그릴을 설치해두고 고기도 구워먹고, 차 한 잔도 나누는 가족공간으로 활용된다.

우리 부부도 지난해 여름 이곳에 오자마자 발코니에 테이블 세트를 장만했다. 그리고 날이 춥지 않을 때는 발코니에 나가 석양을 보며 함께 차를 마신다. 때로는 야경을 보며 와인을 한잔하기도 하고, 고기를 구워먹기도 한다. 휴양지의 리조트 같은 분위기를 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비가 오는 겨울철만 제외하고 발코니는 아파트에 사는 우리 가족에겐 마당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발코니에 먼지가 쌓이지 않을 만큼 깨끗한 공기 덕에 찾아낸 행복이다.

우리 집 발코니에서 바라본 밴쿠버의 석양. 맑은 하늘은 매일 달라지는 빛의 다채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 집 발코니에서 바라본 밴쿠버의 석양. 맑은 하늘은 매일 달라지는 빛의 다채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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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활동의 즐거움

가족끼리 피크닉을 가고 공원에서 뛰노는 것이 자연스런 주말의 모습이 됐다. 한국에서 지낼 땐 외출 전 반드시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해야 했다. 그냥 무시하고 피크닉을 갔다간 집에 돌아와 목이 따끔거리고 때로는 입 안에 무언가 씹히는 것 같기도 하고 옷이며, 자동차며 먼지를 뒤집어 쓰기 일쑤였다.

하지만 여기선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언제든 원하면 도심과 외곽지대 곳곳에 공원의 피크닉 장에 나가서 마음껏 휴일을 즐긴다. 돌아온 뒤 씻어내는 건 땀이지, 먼지가 아니다.

주말 뿐 아니다. 평일에 우리 가족은 저녁 식사 후 강아지와 함께 산책에 나선다. 집 앞 해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자전거 길은 저녁 시간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심지어 다운타운을 걸어서 활보해도 매연이라고 느껴지는 매캐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가족이 다함께 걸으면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한국에 귀국한 후에 무척이나 그리워질 것 같다.

비 맞고 뛰어노는 자유

밴쿠버에 와서 첫 가을과 겨울을 보내면서 놀랐던 일 중에 하나가 비가 거의 매일 온다는 거였다. 절기에 '우기'라고 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말 '우기'라고 할 정도로 거의 매일 비가 온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우산을 쓴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폭우만 아니면 밴쿠버 시민들은 대부분 비옷을 겸한 외투를 입고 그냥 다닌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 주며 남녀가 가까워지는 장면은 밴쿠버에서는 연출되기 힘든 모습이다.

아이도 학교 갈 때 우산없이 간다. 대신 비오는 날 우비와 장화는 필수품이다. 이곳에선 공기를 씻어 내리는 비를 맞는 일이 전혀 몸에 해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에서 바깥놀이를 하지 못하고 종일 교실에만 앉아 있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 정신과 몸에 매우 해로운 일로 여겨진다.

때문에 비가 아무리 와도 이곳 아이들은 학교 일과 중 1시간 가량은 운동장에서 무조건 뛰어 놀아야 한다(심지어, 휴식시간과 점심시간엔 교실 문을 잠근다).

한국에선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미세먼지가 높은 날이면 '학교 운동장 사용금지'라고 알림문자가 오곤했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낯선 문화였다. 덕분에 한국서 옷이 조금만 젖어도 짜증을 냈던 아들 녀석은 이곳서 장화를 신고 진흙탕을 첨벙거리는 놀이를 제일 좋아하는 아이로 변신했다. '비 맞으면 몸에 해롭다. 비 맞으면 대머리가 된다'는 말은 이곳에선 상상할 수조차 없다.

어느 일요일. 밴쿠버의 맑은 하늘.
 어느 일요일. 밴쿠버의 맑은 하늘.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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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든 청소와 세탁 시간

맑은 공기 탓에 생긴 가장 좋은 변화 중 하나는 청소와 세탁 시간이 줄었다는 점이다. 창문을 열어 놓아도 집안에 먼지가 거의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청소를 자주 하지 않는다. 아주 가볍게 청소기로 쓱 밀면 그냥 청소 끝이다.

하루만 닦지 않아도 까만 먼지가 쌓이는 한국 아파트의 창틀과 달리, 여기선 창틀에 먼지가 잘 쌓이지 않는다. 발코니의 미닫이문까지 활짝 열어 놓아도 집안 바닥이 시커멓게 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때문에 청소시간이 많이 줄었다.

청소뿐만이 아니다. 밝은 색 셔츠를 입고 외출했을 때 금세 목이 새까매지는 한국과 달리 이곳에선 흰색 셔츠도 목 부위가 까매지지 않는다. 거의 매일 빨아야 했던 와이셔츠나 흰 색 옷. 여기선 2~3일 정도는 그냥 입을 수 있다. 세탁도 적게 한다. 목의 찌든 때를 지우기 위해 세탁기 투척 전 손으로 일일이 비벼 빨던 일. 이제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맑은 공기를 가진 도시를 꿈꾸는 밴쿠버시
 세계에서 가장 맑은 공기를 가진 도시를 꿈꾸는 밴쿠버시
ⓒ 밴쿠버시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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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부터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면서 접한 '맑은 공기'는 우리 가족의 일상을 이토록 풍요롭고 편리하게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이곳 시민들은 지금의 좋은 공기에 만족하지 않는 듯하다.

밴쿠버 시는 '세계 주요도시 중 가장 신선한 공기로 숨 쉴 수 있는 도시 만들기'를 목표로 환경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부분의 대중교통을 전기차로 바꾸었고, 곳곳에 전기 차 충전소를 설치하고 전기차 사용을 권장하는 등 더 깨끗한 공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맑은 공기'를 자랑으로 여기고 계속해서 욕심내는 이런 태도가 늘어나는 인구와 차량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공기가 유지되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우리 가족은 1년 후 귀국한다. 한국의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를 마시더라도 견뎌낼 수 있도록, 이곳서 남은 기간 동안 맑은 공기를 실컷 충전하고 돌아가야겠다.

덧) 밴쿠버에서도 공기가 안 좋은 시기가 1년에 2주 정도 있다. 바로 7~8월 경 건조한 여름에 나타나는 연무현상이다. 이 때의 연무는 밴쿠버 인근의 산에서 생태계 순환을 위해 자연적으로 산불이 나면서 발생한다. 연무가 있을 땐 2주 정도 하늘이 뿌옇게 변하고 매캐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산불이 잦아들면 곧 맑은 공기를 되찾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맑은공기, #미세먼지, #캐나다, #밴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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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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