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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70주년을 맞아 내놓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은 매우 충격적이다. 그의 발언에서 나타난 인식은 극우 세력들의 입장과 유사하다. 공당, 그것도 제1야당의 대표란 사람이 한 발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우선 홍 대표의 발언을 살펴보도록 하자. 홍준표 대표는 제주 4.3 70주년을 맞이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아래 두 가지 글을 올렸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은 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제주 4.3 70주년을 맞은 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 홍준표 페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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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념식 참석 전] "오늘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합니다. 건국 과정에서 김달삼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좌익 폭동에 희생된 제주 양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입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건국한 자유대한민국이 체제 위기에 와 있습니다. 깨어있는 국민이 하나가 되어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추념식 참석 후] "제주 4.3 추념식이 열리는 4월 3일은 1948. 4. 3. 남로당 제주도당 위원장인 김달삼이 350명 무장 폭도를 이끌고 새벽 2시에 제주 경찰서 12곳을 습격했던 날입니다. 제주 양민들이 무고한 죽음을 당한 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이 4월 3일입니다. 이 날을 제주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날로 잡아 추념한다는 것은 오히려 좌익 폭동과 상관없는 제주 양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8. CNN과 인터뷰 할때 제주 4.3은 공산폭동이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4.3 사건 재조명시 특별법을 개정할 때 반드시 이것도 시정하여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날을 추모일로 고쳐야 할 것입니다."

제주 4.3에 대한 홍준표 발언의 의미는 무엇인가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ㆍ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ㆍ3희생자 추념식에 여야 대표들이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바른미래당 박주선 공동대표,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 4.3 추념식 참석한 여야 대표들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ㆍ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ㆍ3희생자 추념식에 여야 대표들이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바른미래당 박주선 공동대표,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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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글을 보면서 필자는 홍준표 대표가 4.3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깊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 글을 보면 4.3 사건으로 인한 양민학살이 남로당의 폭동에 의해서 발생한 듯한 인상을 준다. 즉, 이 글을 보면 학살의 주체가 남로당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달리 해석하려고 해도 당시 행정권을 행사하고 있던 우익-극우 세력의 책임을 밝히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두 번 째 글을 보면 당시 행정권을 행사하고 있던 우익-극우 세력의 책임을 인정하는 듯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4.3을 무고한 민간인 학살과 분리시키고 있다.

홍 대표의 이와 같은 주장은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남로당의 무장봉기와 그 뒤의 민간인 학살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분하는 것이 당시 희생된 무고한 민간인들의 명예를 위한 행동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홍준표 대표는 자신 주장의 근거를 높이기 위해서 4.3 특별법 제정에 앞장서서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까지 인용했다. 오늘 나온 홍 대표의 발언 내용이 전적으로 사실이라면, 이는 간단한 사안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선 얼핏 '빨갱이'로 오인받아 학살당했던 '무고한' 민간인들의 누명을 벗겨주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 이러한 접근은 결코 무고한 민간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지 못한다. 또한 홍 대표가 인용한 김대중의 발언은 거두절미해 실제 내용을 사실상 왜곡하고 있기도 하다.

4월 3일을 기리는 의미, 홍준표는 모르나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03명의 시민이 4.3 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의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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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대표의 말대로 제주 4.3의 비극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의 무장봉기에 의해서 촉발됐다. 그런데 당시 남로당 무장봉기의 수준은 홍 대표가 언급한대로 350명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로 인해서 촉발된 양민학살의 규모는 3만 명에 이른다. 이는 무엇을 뜻하나?

이것은 제주 4.3의 비극이 근본적으로 당시 38선 이남 지역의 행정권을 행사하던 극우 세력들의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에 의한 것임을 의미한다. 당시 제주도에 있던 극우 세력들은 광기에 사로 잡혀 '인간사냥'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들의 목적은 무장대를 진압하는 것을 넘어 이와 연관됐다고 막연히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과 마을을 모두 절멸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망상이자 심각한 병적 태도였다. 특히 당시 극우 세력들은 제주 4.3이 최악의 제노사이드로 악화된 분기점으로 평가받는 1948년 5월 1일 '오라리 방화사건'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기도 하다.

제주 4.3 직후 9연대장 김익렬과 무장대 총책인 김달삼 사이에 평화협상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런데 5월 1일 이른바 '오라리 방화사건'으로 인해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오라리 방화사건'을 극우 세력들의 조작극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제주 4.3 비극의 본질은 극우세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인 것이다. 이것이 350명의 남로당의 봉기가 3만 명의 학살로 이어지게된 원인이다. 학살이 진행되면서 토벌대의 학살에 저항하고자 했던 민간인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이념과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좌익 무장대'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호 보복과정에서 아무런 잘못없는 우익과 그 가족들의 피해도 발생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피의 악순환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게 필요하다.

지금 홍 대표는 이것을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의 무장봉기에서 찾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4.3의 비극이 남로당의 무장봉기에 의해 촉발된 것은 맞으나 근본적으로 이는 당시 극우 세력들의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4월 3일을 기리는 것은 그와 같은 비극의 시작과 확산 모두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진정한 평화와 인권을 갈망하자는 뜻이다. 그런데 홍 대표는 여기에 반인권적이고 반평화적인 고루한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제주 4.3의 참 뜻을 왜곡했다.

김대중 발언 내용도 왜곡한 홍준표

2000년 1월 11일 김대중 대통령이 4.3유족대표와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을 초청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4.3특별법에 직접 서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00년 1월 11일 김대중 대통령이 4.3유족대표와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을 초청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4.3특별법에 직접 서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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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보니 홍준표 대표는 1998년 제주 4.3과 관련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도 결과적으로 왜곡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11월 23일에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질문 : "한국과 미국 정부는 1948년 제주 4.3 사태에 대한 진상은 서로 언제 공개할 방침입니까?"

김대중 : "제주 문제가 국회에 청원되어 있습니다. 정부로서는 과거의 억울한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문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해서 유가족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 1998년 11월 23일 CNN과의 회견 중에서

당시 김대중의 발언은 현재 학계에서 공인받고 있는 제주 4.3에 대한 정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제주 4.3은 남로당의 무장봉기에 의해서 촉발됐지만 그 뒤에 발생한 공권력에 의한 무차별적인 양민 학살'. 이것이 4.3에 대한 공인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1998년이면 제주 4.3 사건에 대한 공론화가 제대로 이뤄지기 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때 이런 발언을 했다. 당시 상황을 놓고 보면 매우 앞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4.3 특별법 제정에 앞장서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가능하도록 한 인물이다.

그런데 홍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을 거두절미해서 인용해 결과적으로 내용을 왜곡했다. 그리고 이것을 자신의 정치공세 도구로 이용했다. 매우 잘못된 태도다.

이미 김대중평화센터는 지난 1월 19일 '제주 4.3은 공산 폭동'이라는 극우 세력의 발언이 대한 반박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김대중평화센터는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1월 제주4.3사건 특별법 제정에 서명을 한 것은 국가폭력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과 그 유족에 대한 한을 풀어주고, 민족의 비극을 제대로 밝혀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 취지였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주 4.3 사건을 '한국전쟁을 전후해 제주지역에서 발생한 양민학살 사건이다. 나는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수십년 동안 '폭도' '빨갱이'들로 매도되어 살아온 것에 국가가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3사건은 현대사의 치부이자 살아있는 우리들의 수치'라고 정의했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일부 단체가 김대중 대통령 진의와는 별도로 일부 내용을 악의적으로 발췌, 김 대통령의 진심을 왜곡하고 있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라고 밝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은 상당수 우익과 극우 세력의 일반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벌써 70년이 흘렀다. 아직도 망국적 색깔론의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유, 인권, 평화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당수 우익 세력들의 수준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태그:#홍준표, #김대중, #4.3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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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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