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군함도> 제작 현장 모습 ⓒ CJ 엔터테인먼트
노동시간을 주당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7월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영화계가 대책 마련에 부심한 모습이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제작자들은 부담감을 나타내고 있다. 제작비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촬영횟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
영화노동자들은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과 차별이 줄면서 작업환경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기존 근로기준법에서는 특례업종에 지정돼 노동자들과 합의할 경우 12시간 이상 연장근로가 가능했다. 그러나 개정 근로기준법에서는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명시된 시간 외의 근무가 불가능하게 됐다. 다만, 이들은 제작비가 오를지는 몰라도 임금 인상 등의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화계에서는 제작비 상승으로 인해 한국영화 제작 편수가 줄어들면서 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다. 중저예산 영화의 압박이 상대적으로 클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3월 28일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놓고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사랑방 좌담회에서도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좌담회에서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최정화 대표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를 통해 바라보는 영화만들기의 현실'이란 발제를 통해 앞으로 처하게 될 상황들을 짚었다. 최 대표는 "특례업종에서 영화업이 제외됨에 따라 누구라도 주 52시간을 초과하게 될 경우 제110조에 의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또 휴일 문제와 관련해 "모든 쉬는 날에 유급 수당(8시간 급여)을 지급하여야 하고, 날짜를 대체한다고 하여 수당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일요일에 촬영해야 해서 합의하에 휴일을 화요일로 지정하였다면, 일요일 촬영을 하고(휴일수당 없이 일반 촬영) 화요일에 쉬면서 유급수당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제작비 30% 이상 상승 불가피... 중저예산 영화 부담 커질 것"
한 중견 영화제작자는 "구체적인 시뮬레이션을 안 해봤으나 제작비가 최소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사극의 경우는 제작비 상승 압박이 50%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사극은 분장만 2시간 이상 걸리는 등 촬영 준비에 소요되는 작업이 길어 주당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대작영화들은 지장이 없을 것"이라며 "돈으로 해결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작 편수가 줄어들면 영화 현장 인력이 방송 쪽으로 나갈 가능성도 높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중저예산 영화가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일반적으로 40~50억 정도가 평균 제작비로 들어가는데, 앞으로는 제작비 상승이 불가피해 60~70억으로 늘어나야 한다. 홍보마케팅 비용을 더하면 80~100억대다. 제작비 100억이면 손익분기점이 300만이다. 극과 극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제작 현장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 영화제작자는 "기존에는 촬영팀을 제작 프로듀서가 선택했는데, 아마 팀으로 움직이는 게 무너지고 개별적으로 숙련도에 따른 선택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스태프는 30분이면 세팅이 되는데, 어떤 스태프는 1~2시간이 걸린다. 거기에 대한 책임도 없다. 앞으로는 숙련도가 떨어지는 스태프를 쓸 수는 없지 않겠나. 할리우드는 스태프의 숙련도에 따라 시간당 임금이 다르다. 협회나 노조 차원에서 검증을 하고 숙련도를 평가한다. 앞으로 우리 제작환경도 이런 식으로 달라져야 한다. 스태프를 팀이 아닌 개별적으로 고용할 수밖에 없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단순히 근로시간 연장의 문제가 아니다."
"스태프 역할 분담·숙련도 향상 필요, 할리우드 시스템으로 가야"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이현승 감독도 "앞으로는 할리우드 시스템처럼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시간이 돈'인 만큼 스태프 역할 분담을 확실히 해야 하고, 스태프들 부르는 시간을 달리해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스태프들의 숙련도 향상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현승 감독은 "2005년부터 영진위에서 스태프들의 역할과 업무 문제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2007년 연구보고서를 냈다"며, "그동안은 제작자들이 한국영화가 잘 나간다고 이를 외면했는데, 늦었지만 한국영화 작업환경의 개선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 2007년 스태프 구성 등과 관련해 영진위의 연구보고서 ⓒ 영화진흥위원회
영진위 연구보고서는 촬영 현장에서의 역할이나 임무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과 승급이나 승진 체계가 없는 것 등 제작 현장의 제반 문제를 지적한다. 구체적인 부분으로 촬영, 조명, 미술, 후반작업, 기타분야 등의 직무에 대한 부분과 문제점 및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식이다. 지금껏 도제식으로 이어오던 구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당시 영화 제작 스태프의 합리적 구성방안과 제작시스템, 영화현장인력 교육 시스템에 대한 연구, 경력관리 체계 구축 방안 등의 연구를 수행했다"면서 "제작 환경 개선이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른 어려움을 타개할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이 감독은 구체적인 방식으로 "할리우드처럼 콜타임이 달라야 할 것이다"며 "굳이 전부가 모여서 하는 게 아니고 촬영준비가 끝났을 때 배우가 오고, 조명 등은 전날 세팅하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는 시간 배분과 일정 조정을 잘 해내는 사람이 유능한 프로듀서로 대우받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또 "크랭크업 날짜를 정확하게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촬영 스태프들도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서 "네 작품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크랭크업이 늘어지니 두세 작품밖에 못하고, 그러다 보니 작품당 스태프의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영화노조 입장은?이 같은 지적에는 영화노조 쪽도 일정 부분 공감하는 모습이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은 "숙련도는 중요하다"면서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어 스태프 교육 등에 대해서는 영화단체들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제작 환경이 극과 극일 것이라는 예상은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고, 표준계약서 이후 계속 변화가 있었던 것이라 새로울 것이 없다"면서 "이번 개정으로 근로시간이 명확해지면서 작업환경이 개선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안 위원장은 "그간 현장에서 적은 사람으로 충원 없이 일했는데, 앞으로는 이를 정확히 해서 바꿔나가야 한다"며 "미술 분야 같은 경우도 업무 영역이 다른데도 혼자 떠맡는 등의 불합리한 부분이 지속돼 왔다"고 말했다. 현장 스태프들 역시도 주 52시간 근무하는 프리랜서가 된다고 안정적인 직업군이 되기는 어렵다면서 촬영 여건이 바뀌는 정도일 뿐이라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 저예산 독립영화 <걷기왕> 촬영 현장 ⓒ 인디스토리
10억 미만 저예산 독립영화가 영향을 받을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부 엇갈린다. 최정화 프로듀서는 "노사 간의 임금협약에 관한 부칙에 '유급휴일 중 법정유급휴일'(주휴일, 노동절)만 적용하고, 임금협약 제10조(최저직급최저시간급)에 따른 영화산업 최저직급(수습) 최저시간급은 최저임금법 따르는 등의 특례 조항 등이 있으나, 뭘 해도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즉 최저임금법상 최저시간급은 이미 7530원으로 인상되어 6550원으로 돼 있는 영화산업 최저직급 최저시간급은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영각 영진위원은 "독립영화 표준계약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는 하나 독립영화가 저예산이라 투자도 쉽지 않은 데다 주로 지인들이 중심이 돼 같이 하는 구조"라며 상업영화와 같은 제작시스템을 벗어나 있는 상태에서 제작 위축에 대해서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독립영화 제작배급사인 인디스토리 김화범 이사도 "제작비와 촬영 회차는 늘어나겠지만 독립영화는 프로덕션 기간이 한 달 정도라 아직은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상업영화와 독립영화가 특성은 다르지만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는 보는데, 독립영화는 촬영현장 스태프를 최대한 줄여서 하기에 어느 정도 부담이 될지는 아직 확실히 말하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제작비 상승으로 밥차나 숙박제공 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제작자들은 "많을 때는 수억이 들어가지만 그것을 줄이거나 없앨 수는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현장 프로듀서들 역시 "제작편의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지 스태프 복지 차원 서비스가 아니라며 그런 예상은 현실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