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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짓느라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크리스천인 나는 성경 말씀으로 아들의 이름을 짓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작명소를 운영해도 될 정도로 매일 같이 도서관에서 사주를 공부하며 손자의 이름을 연구하셨다.

팽팽한 긴장감 가운데 수많은 이름 후보들이 오르내렸다. 처음 15개가 넘는 후보로 시작해 살아남은 이름은 4개. 나의 작명 3개와 아버지의 작명 1개가 최종 입후보했다. 3:1로 과반 의석을 차지한 힘이었을까. 아버지와 평화협정을 통해 결국 내가 지은 '선강'이라는 이름이 당선되었다.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취미인 캘리그라피로 한글, 한자, 영어 이름 표현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취미인 캘리그라피로 한글, 한자, 영어 이름 표현
ⓒ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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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은 3개의 이름은 '선군(선하고 충성스러운 주의 군사)', '선후(선함으로 후히 베풀라)', '선강(선으로 악을 이기는 강한 자)'이었고 개인 SNS에서는 '선후'가 가장 반응이 좋았다.

아버지는 '선호(선할 선, 클 호)'라는 이름을 지으셨다. 가운데 '선' 돌림자에 음양오행, 형격, 원격, 이격, 정격 등을 고려한 최선의 이름이라고 하셨다. "돌림자로 인해 더 완벽한 이름이 나올 수 없어 아쉽다"라고 하시며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쓰신 연구 논문(?)을 전해주셨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적으신 아버지의 작명 연구 자료
 볼펜으로 꾹꾹 눌러 적으신 아버지의 작명 연구 자료
ⓒ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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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펜으로 꾹꾹 눌러 적으신 아버지의 작명 연구 자료
 볼펜으로 꾹꾹 눌러 적으신 아버지의 작명 연구 자료
ⓒ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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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정중히 나의 뜻을 피력했다.

"아버지, 저는 사주가 통계학에 기반을 두기에 전혀 근거 없는 미신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크리스천이라 생명을 주신 창조주가 삶을 주관하신다고 믿어요. 이름이 삶을 좌우한다면 '이름신'을 믿어야 하잖아요. 저는 성경 말씀으로 기도하며 지은 이름을 쓰고 싶어요."

진실한 마음이 전달된 것일까. 아버지가 답하셨다.

"그래, 잘 알겠다. 결국 너희가 키울 아이인데 너희가 이름을 정해야겠지. 다만 네가 지은 3개 중에 가장 좋은 이름이 무엇인지 연구해서 알려주마."

이렇게 '선강'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의미를 되새길 수 있어 기쁘다. 이름의 의미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유명한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아들 선강이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춘수 시인의 '꽃'이다(나는 김춘수 시인의 친장손이다). 이름은 관계적 존재를 의미한다. 하나의 몸짓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다. 의미 없는 몸짓이 이름을 통해 의미 있는 눈짓이 된다.

   지난 4일, 우리 부부와 아버지, 생후 100일 된 아들까지 3대가 친할아버지인 김춘수 시인의 산소를 찾았다.
 지난 4일, 우리 부부와 아버지, 생후 100일 된 아들까지 3대가 친할아버지인 김춘수 시인의 산소를 찾았다.
ⓒ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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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는 아담이 이름을 짓는 장면이 나온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온갖 들짐승과 새를 만드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 이끌고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들을 부르는 것이 바로 그 생물들의 이름이 되었다.' (창세기 2:19)

피조물인 아담이 창조주가 만든 생물들의 이름을 짓는다. 창조주는 생명을 창조하되 그 생명의 관계적 존재를 인간인 아담이 규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었다. 마치 아들의 생명이 내게서 온 것이 아닌데 내가 아들의 이름을 짓는 감격을 맛보았듯이.

   아들 선강이와의 기념 사진. '선강'이라고 부를 때마다 기쁘다.
 아들 선강이와의 기념 사진. '선강'이라고 부를 때마다 기쁘다.
ⓒ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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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름, #존재, #작명,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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