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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장미를 위해 만든 있는 펜스. 손재주 좋은 동네사람과 반나절 동안 작업을 했다. 나는 심부름꾼 역할을 했다
▲ 장미넝쿨 펜스 5월의 장미를 위해 만든 있는 펜스. 손재주 좋은 동네사람과 반나절 동안 작업을 했다. 나는 심부름꾼 역할을 했다
ⓒ 정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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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종종 나를 '동네 바보형'이라 부른다. 그를 알고 지낸 지도 어느새 15년 남짓, 자주는 아니어도 일 년에 십 여 차례 정도 술자리를 갖거나 잡다한 일로 만난다. 만난다는 표현보다는 사정이 급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많다고 하는 게 정확할 듯싶다.

내가 손재주가 없는 데다 기계치여서 그의 손길이 자주 필요할 때가 있다. 집안에서 발생하는 자잘한 사고(?) 가운데 나 혼자 직접 처리를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수도꼭지가 잘 잠기지 않아 물이 새면 새는 대로, 전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암흑인 채로 몇 달을 지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번은 샤워기가 고장이 나 전화를 했더니 철물점에서 수도꼭지를 사와 교체를 하면 된다며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을 했다.

"그걸 아무나 바꿀 수 있어?"
"그럼요. 그런 건 길가는 바보도 할 수 있어요."

동네 사람, 오가이버

타고난 게으름과 타고나지 않은 손재주로 인해, 정작 고생은 내가 아니라 그가 맡아서 한다. 그는 전문적인 도배사이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정작 도배와 장판 일을 집중적으로 한 것은 젊은 시절 4년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후에는 인테리어를 주로 했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이 자신을 도배사라고 생각한다는 푸념을 한 적이 있다.

전문 인테리어 사업자라는 인식이 안 되어 있다는 설명으로 들렸다. 주변사람들은 그를 오 사장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오랫동안 일을 한 경력과 주변의 네트워크 덕분에 소개와 입소문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한때는 간판을 달고 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어서 나 역시 그를 오 사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오 사장과 나는 재작년에 손바닥만한 농막을 지을 때 함께 일을 했다. 당시에는 전문 기술자 1인과 그 다음 기술자인 오 사장이 참여를 했고 나는 잔심부름이나 하는 아무런 경력이 없는 농막주인에 불과했다.

거창하게 말하면 건축주였지만 이렇다 할 설계도면 없이 말로만 설계를 하면서 농막을 지었기 때문에 건축주로서 권위는 눈곱만큼도 가질 수 없었다. 셋이서 함께 지었다고는 하지만 전문기술자와 오 사장 둘이 지은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상량문에 이름 석 자를 넣어주는 것 뿐이었다. 일부를 옮겨본다.

"멀리 보이는 망신산은 오르고 내려오는 자연의 순리이며, 주변의 뻐꾸기 울음과 짙은 밤꽃 향기는 시심과 문재를 일깨우는 자연의 죽비이다. 머물고 떠나는 게 세상의 이치라 해도 머물러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한 법. 여기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더라도 산과 나무와 풀들이 보여주는 변화와 세속의 걱정을 성찰하는 기회가 되길 바랄 뿐이다. 고요의 산속에서 세상을 살피는 것은 시대를 비껴가는 자연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중략) 기술을 발휘해 비바람을 막아준 오00 송00 두 분의 공이 매우 지대하다." 

말 그대로 지대한 공헌 덕분에 농막은 보름 만에 외형을 드러낼 수 있었다. 농막이 제 모습을 갖추고 난 뒤 나머지 실내작업은 오 사장이 도맡아 진행을 했다. 공사가 다 끝난 이후에도 오 사장은 몇 차례 더 농막이 있는 시골에 다녀갔다.

그의 말대로 '동네 바보형'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바보형'으로 불렸고, 우리 집에서는 그를 맥가이버라고 부른다. 호칭 하나만 들어도 그의 정체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장미가 잘 뻗어나갈수 있도록 펜스를 만드는 작업, 기둥설치 작업을 하는 이가 맥가이버 뺨치는 동네사람 오가이버다.
▲ 장미넝쿨 펜스 만들다 장미가 잘 뻗어나갈수 있도록 펜스를 만드는 작업, 기둥설치 작업을 하는 이가 맥가이버 뺨치는 동네사람 오가이버다.
ⓒ 정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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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장미를 위해

지난 4월 하순에도 오 사장과 함께 시골에 있는 농막에 갔다. 넝쿨장미가 기댈 수 있는 펜스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이전에도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파이프로 장미터널을 만들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철거를 하기로 하고, 대신에 담장으로 흔히 쓰이는 철제자재로 지지대를 만들기로 했다.

아무리 작은 공사라 하더라도 물건을 옮길 수 있어야 하는 트럭이 있어야 하고, 자재를 자르고 조립하고 설치할 수 있는 장비가 있어야 한다. 오 사장이 웬만한 장비들은 대부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의존도는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6미터 남짓의 펜스 하나를 설치하는 데도 반나절 가량 시간이 걸렸다. 나무를 잘라 흔들리는 대문을 보수하고 화단에 작은 구조물을 설치하는 등 자잘한 일들을 함께 했기 때문에 시간은 제법 걸렸다.

물론 일은 거의 대부분 오 사장이 하고 나는 곁에서 되지도 않는 훈수를 두면서 좀처럼 숙련되지 않을 것 같은 심부름꾼 역할만 맡았다. 일은 거의 하지 않는 심부름꾼이 쉬는 시간이 가장 길었고, 또 쉽게 지친 내색을 보이는 것도 나였다. 어쩌다 삽질이라도 할 것 같으면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증말 삽질하시네."
"아래에 돌멩이가 있어 잘 안 파져서 그려."
"돌멩이를 걷어내면 되는디."
"알긴 아는디 그게 잘 안 된다니까."
"삽질 그렇게 하다가 해 넘어 가겠네요."

이런 대화는 비일비재하다. 펜스를 잡아주는 지지대를 묻기 위해 몇 군데 구덩이를 파야했는데,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한다며 핀잔을 주었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감내할 수 밖에 없지만, 실제로 삽질 몇 번만 해도 손이 후들거릴 정도로 힘에 부쳤다.

"내가 허리가 아퍼서 그려."
"누가 뭐라고 했슈."
"좀 쉬었다 할까."
"지금까지는 쉰 게 아니면 뭐래요."

아무리 저질체력이라고 해도 그가 보기에는 한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 사장은 큰 불평없이 일을 마무리 했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에 있는 꽃과 나무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전망좋은 터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지난해 그도 부모님이 살고 있는 논산 시골에 장미를 몇 그루 심었다. 가을까지 장미꽃이 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철 내내 피는 것 같아요."
"오월에 피면 늦가을 까지는 가는 것 같던데."
"장미꽃이 그렇게 오래갈 줄 몰랐어요."
"나도 가까이서 보니까 그렇더라고."

그는 장미넝쿨이 잘 뻗을 수 있는 펜스를 만들면서, 어쩌면 장밋빛 같은 시절을 떠올렸는지 모른다. 아니면 장밋빛 같은 희망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수평을 잡고 반듯하게 세우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담장전문가를 부르기에는 규모가 작아서 동네사람과 상의해서 만들었다
▲ 펜스작업중 수평을 잡고 반듯하게 세우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담장전문가를 부르기에는 규모가 작아서 동네사람과 상의해서 만들었다
ⓒ 정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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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절정에서

해가 산에 걸칠 때 쯤 일은 마무리됐다. 공사를 끝내고 난 뒤 오 사장은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나는 게으른 고마움을 전했다. 그와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은 여간 다행이 아니다.

맥가이버처럼 손놀림이 좋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늙어가는 나이를 정서적으로 공유하기 때문이다. 아들과 딸은 대학생, 부인은 뒤늦게 공부를 한다며 대학원에 진학하는 바람에, 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하지만 감내할 수 있는 무게이기에 즐거워하는 눈치다.

"그래도 요즘 참 행복해요. 공부를 안 하는 게 문제지, 공부하는 게 뭐가 문제래요."

나이 오십을 넘긴 그의 계절은 봄이다. 그의 봄은 쉽게 지지 않을 것 같다. 5월의 장미가 늦가을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전에서 발간하는 월간 토마토 5월호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5월, #5월의 장미, #장미담장, #장미넝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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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글쓰고 영상기획하고, 주로 대전 충남에서 지내고, 어쩌다 가끔 거시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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