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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나주 국립나주박물관에 들렀다. 나는 무엇보다도 전남 영광 화평리 수동 목관 무덤에서 나온 '의기'가 보고 싶었다. 의기(儀器)는 제사 때 쓴 기구 또는 제사장이 몸에 치장한 치레거리를 말한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의기다. 이 의기는 위아래로 5.2cm밖에 안 된다. 그래서 박물관에서는 앞에 돋보기를 두었다. 하지만 이렇게 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전남 영광 화평리 수동 목관 무덤에서 나온 의기다.
▲ 청동 의기 전남 영광 화평리 수동 목관 무덤에서 나온 의기다.
ⓒ 국립나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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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이 의기 옆에 이런 설명글을 달아 놓았다.
 
새무늬 청동기
부채와 같은 형태의 청동판의 중앙에 마주보는 새 두 마리를 배치하고 그 주변을 점열무늬, 고사리무늬, 산(山) 자 모양 무늬, 태양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고성 동외동의 의례와 관련된 수혈에서 거의 형태가 유사한 청동 제품이 출토되어 의기(祭器)로 추정된다. 새무늬 청동기가 출토된 널무덤에서는 새무늬 청동기를 비롯해서 본뜬거울 2점, 유리구슬 357점, 손칼, 항아리 등이 출토되었으며 그 주인은 제의를 담당했던 사람으로 추정된다.
 
청동 의기 크기가 위아래로 5.2센티미터밖에 안 되어 박물관에서는 앞에 돋보기를 두었다.
▲ 국립나주박물관 청동 의기 청동 의기 크기가 위아래로 5.2센티미터밖에 안 되어 박물관에서는 앞에 돋보기를 두었다.
ⓒ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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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참 어려운 설명글이다.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어른인 나도 읽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초등학생들은 더할 것이다. 우선 어려운 낱말을 풀어 보겠다.
 
점열 무늬 : 말 그대로 점을 점점이 찍어 베푼 무늬란 뜻이다.
고성 동외동 : 고성은 경남 고성을 말한다. 앞에 '경남'이라 써 놓아야 할 것 같다.
수혈 : 구덩이를 말한다. 수혈묘는 구덩이묘다.
널무덤 : 넓적한 나무 널로 관을 짜 그 안에 시신을 모시고 쓴 무덤을 말한다.
본뜬거울 : 중국 동경을 모방해서 제작한 거울이라 해서 방제경(倣制鏡)이라 하고, 한나라 동경을 모델로 했다 해서 한식경(漢式鏡)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중국 동경을 본떠서 만든 거울이다.
제의 : 제사 의식, 제사를 말한다.
 
아지랑이가 막 피어오를 때 새 한 마리가 곡식 씨앗을 하나 물고 하늘 세상에서 땅으로 내려온다.
▲ 나주 청동 의기 아지랑이가 막 피어오를 때 새 한 마리가 곡식 씨앗을 하나 물고 하늘 세상에서 땅으로 내려온다.
ⓒ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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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동기 문양은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가장 위에 있는 것은 새다. 아주 조그맣게, 단순하게 표현했다. 그 아래 점점이 무늬가 있는데, 이것은 곡식이다. 옛사람들은 새를 '곡령(穀靈 곡식곡·신령령)'으로 봤다. 다시 말해 곡식의 신으로 여긴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 새가 인간에게 곡식 씨앗을 주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믿었다.


곡식 점 아래에 아지랑이 무늬가 있는데, 이것은 봄 들판에 피어오르는 땅의 기운을 뜻한다. 옛사람들에게 아지랑이는 생명의 기운이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 들판에서는 온갖 씨앗이 새싹을 밀어 올렸다. 실로 판타스틱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고사리 순이나 호박 넝쿨의 더듬이 손도 마찬가지다. 이 아지랑이 무늬가 나중에 고구려 벽화의 영기문(靈氣文, 영험한 기운 무늬)으로 발전한다.


아지랑이가 막 피어오를 때 새 한 마리가 곡식 씨앗을 하나 물고 하늘 세상에서 땅으로 내려온다. 박물관 설명글에는 '산(山) 자' 무늬라 했는데, 보면 알 수 있듯이 분명히 새다. 이 새 양쪽으로 해와 달이 빛나고 있다. 이 또한 박물관 설명글에는 '태양'이라 했지만 나는 해와 달로 보고 싶다.


그 아래 새 두 마리가 입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여자와 남자가 아닌가 싶다. 남자와 여자가 입을 맞출 때 곡식의 신인 새가 생명의 씨앗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청동기는 씨앗과 생명의 탄생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농사와 아이의 탄생은 같은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나 싶다.



 
경남 고성 동외동 구덩이 무덤에서 나옴. 위아래로 8.9센티미터. 삼한시대. 점점이 무늬 위 새 문양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에 견주어 나주에서 나온 의기는 새 문양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경남 고성 동외동 청동 의기 경남 고성 동외동 구덩이 무덤에서 나옴. 위아래로 8.9센티미터. 삼한시대. 점점이 무늬 위 새 문양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에 견주어 나주에서 나온 의기는 새 문양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국립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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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태그:#전남나주청동의기, #경남고성청동의기,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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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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