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혁명 속에 꽃 핀 사랑, 뮤지컬 <닥터 지바고> 지난 2월 27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여 지난 7일에 폐막한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공연 사진. 3월 6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시연된 장면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입양된 가정에서 의사이자 시인으로 자란 지바고는, 안정된 가정을 새로 꾸리지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코바롭스키에게 총구를 겨눈 낯선 여자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의 노래가 시작된다.

▲ 라라를 기억하는 지바고 지난 2월 27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여 지난 7일에 폐막한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공연 사진. 3월 6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시연된 장면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입양된 가정에서 의사이자 시인으로 자란 지바고는, 안정된 가정을 새로 꾸리지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코마로프스키에게 총구를 겨눈 낯선 여자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 곽우신


유리 안드레예비치 지바고. 부유한 지바고 가의 후계자였으나 어려서 부모님을 잃은 그는 자애로운 그로메코 부부의 손에 자라게 된다. 그로메코 부부의 딸인 토냐는 유리의 친구로서 언제나 곁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줬다. 시인이자 의사로 성장한 유리 지바고의 미래는 탄탄한 것처럼 보였다.

지바고와 그로메코가 하나 되는, 유리와 토냐의 결혼식 날. 한 여인이 결혼식장에 들어와 부패한 법조인이자 부르주아인 코마로프스키에게 총구를 겨눈다. 총알은 그를 빗나가지만, 유리 지바고는 그 여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독일과의 전쟁을 위해 떠나는 길에 다시 스쳐 마주친 그녀. 그리고 전선의 야전 의무실 천막에서 세 번째로 마주한다. 라라 안티포바. 참전 이후 소식이 끊긴 남편을 찾으러 왔다는 그녀는 의사 닥터 지바고가 아니라 시인 유리 지바고를 기억하는 이 중 하나다. 모스크바에서는 그가 남긴 시가 많은 이의 위로가 되고 있으니까. 특히 빗속의 여인…. 라라는 지바고의 시에 등장하는 그 빗속의 여인이 자신이란 걸 모른다.

전쟁과 혁명이 맞물려 소용돌이치던 격변의 러시아. 그 속에서 유리 지바고와 라라 안티포바 사이에 특별한 감정이 싹 튼다. 그들에게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받지 못한 세계, 사랑 없는 혁명

혁명 속에 꽃 핀 사랑, 뮤지컬 <닥터 지바고> 지난 2월 27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여 지난 7일에 폐막한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공연 사진. 3월 6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시연된 장면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입양된 가정에서 의사이자 시인으로 자란 지바고는, 안정된 가정을 새로 꾸리지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코바롭스키에게 총구를 겨눈 낯선 여자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의 노래가 시작된다.

▲ 조정은의 라라 전작인 <모래시계>의 혜린도 그렇고, 그 전작인 <몬테크리스토>의 메르세데스도 그렇고…. 뮤지컬 배우 조정은은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게 흔들리지 않는 굳센 무언가를 부여한다. 이 심지는 캐릭터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흔들려도 중심을 잡고 이 인물이 추동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캐릭터 해석부터 그 표현까지, 조정은은 어떤 하나의 선을 넘은 배우가 됐다. ⓒ 곽우신


뮤지컬 <닥터 지바고>를 여는 넘버는 'Two Worlds'이다. <닥터 지바고>는 두 세계의 충돌, 그리고 그 충돌 사이에 어느 쪽 세계도 선택하지 못한 채 끼어버린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이다.

"거대한 산맥이 가른 두 개의 세상, 기쁨과 절망이 몸을 맞대는 러시아. 여기 귀족과 천민의 나라 칼날과 쟁기의 나라. 겸손과 자만이 서로 목을 죄는 곳…. (중략) 선택받은 자에겐 구원의 손길이, 선택받지 못하면 가난의 굴레로. 여기 탐욕과 순수의 러시아. 먹히고 먹는 곳 러시아. 기도의 응답은 귀족이 차지하는 곳." - 뮤지컬 <닥터 지바고> 제1막 No.01 'Two Worlds' 중에서

라라는 선택받지 못한 세계의 사람이다. 한때 선택받는 세계를 동경하여 코마로프스키가 건네는 샴페인 잔에 취하고,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겼으나(No.06 'When the music played') 그건 결국 자신을 노예의 길로 묶어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라라는 직접 인쇄한 팸플릿을 파샤에게 나눠줄 정도로 당대 러시아의 현실 문제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였다. 철도 노동자의 아들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던 파샤와의 새롭게 시작될 내일을 그리는 사람이, 그와 사상적 접점이 없었을까. 파샤 역시 라라를 사랑했다. 그러나 라라가 코마로프스키에게 성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착취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파샤는 "이 부르주아 개새끼들!"이라고 외치면서 뛰쳐나간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계급 사회의 모순이 낳은 직접적 피해자라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그는 급진 혁명을 통해서 이 러시아의 앙시엥 레짐을 파괴하기로 마음먹는다. 파샤는 라라에게 새로운 러시아, 완벽한 러시아, 모두가 평등하고, 아무도 착취당하지 않는 세계를 건설하여 선물하고 싶었다. 군인들을 설득하고, 무장봉기를 주도하며 적색군의 사령관이 된 스트렐니코프의 가장 큰 추동력은 결국 이거였다.

혁명 속에 꽃 핀 사랑, 뮤지컬 <닥터 지바고> 지난 2월 27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여 지난 7일에 폐막한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공연 사진. 3월 6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시연된 장면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입양된 가정에서 의사이자 시인으로 자란 지바고는, 안정된 가정을 새로 꾸리지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코바롭스키에게 총구를 겨눈 낯선 여자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의 노래가 시작된다.

▲ 대한민국의 유일한 파샤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서도 파샤 캐릭터를 원 캐스트로 소화한 배우 강필석. 부드러우면서도 호소력 있는 연기가 강점인 그에게 <닥터 지바고>라는 필모그래피는 남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등장 때마다 확실한 흡입력으로 무대를 책임졌다. ⓒ 곽우신


"불공평한 세상 속에 순결한 소녀는 욕망의 노예로 짓밝혔지! 절망했지! 타락한 돼지들 너희들 모두가 죽는 그날까지 끊임없는 투쟁을 맹세하니, 자비는 없다. (중략) 타락해 버린 모든 것들 되돌리기 위하여, 총을 들리라! 몰아내리라! 순결한 조국 위해." - 뮤지컬 <닥터 지바고> 제2막 No.15 'No Mercy at All' 중에서

그러나 라라는 동시에 지바고의 시를 감상하고 그 시에 감동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파샤가 라라에게 주고자 했던 세계는 그러한 '시'가 발붙일 수 없는 세계였다. 그래서 라라는 파샤의 세상에서 행복할 수 없었다. 파샤를 기다리고, 파샤를 찾아 나서도 그저 파샤는 멀리서 라라를 바라보기만 할 뿐 숨 막히는 투쟁의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자신이 줄 수 없는 것을 라라에게 줄 수 있는 부르주아 유리 지바고를 시기했고, 동시에 그렇기에 지바고를 해칠 수도 없었다. 혁명 이후 모스크바에서 유리아틴으로 도망친 지바고를 적군의 전선으로 떨어트려 놓은 것도, 그러면서도 지바고의 신변에 직접적 위해는 가할 수 없도록 관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파샤는 죽을 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실패를 인정한다. 라라를 사랑하여 라라를 해방시키고 싶었으나, 정작 그 혁명 안에는 자비도, 시도, 인간애도, 사랑도 없었던 모순에 봉착했다. 그리하여 그는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스트렐니코프가 아니라 파샤 안티포브로 죽는다. 사랑 없는 혁명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그런 혁명 속에서는 라라가 살 수 없음을, 그래서 죽을 때에야 라라의 사랑으로 죽고자 했던 인물이다. 라라는 파샤 안티포브가 아닌 스트렐니코프를 사랑할 수 없었고, 그 대신 유리 지바고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선택받은 세계, 혁명 없는 사랑

혁명 속에 꽃 핀 사랑, 뮤지컬 <닥터 지바고> 지난 2월 27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여 지난 7일에 폐막한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공연 사진. 3월 6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시연된 장면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입양된 가정에서 의사이자 시인으로 자란 지바고는, 안정된 가정을 새로 꾸리지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코바롭스키에게 총구를 겨눈 낯선 여자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의 노래가 시작된다.

▲ 류정한의 지바고 베테랑 뮤지컬 배우 류정한은 자신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을 언제나 최선을 다해 소화한다. <닥터 지바고>에서도 그는 "강건하고 굳센" 지바고를 훌륭하게 풀어냈다. 많은 후배가 그를 모범적인 선배로 꼽는 것은, 단순히 실력이 아니라 극과 캐릭터를 대하는 '애티튜드'에서 나온다. ⓒ 곽우신


반면 유리 지바고는 선택받은 세계의 인물이다. 8살에 아버지를 잃었지만, 귀족 계급의 연대 속에서 그는 따뜻하고 풍요로운 상황에서 자랄 수 있었다. 그러나 유리는 음악이 흐르는 귀족 세계 밖의 움직임에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빵을 요구하며 전쟁을 거부하는 노동자와 시민들. 총성과 피 냄새가 진동하는 거리에서 유리는 황제의 진압으로 인해 부상을 입은 이를 치료한다. 코마로프스키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며 외면할 뿐인 현장을, 유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치료가 끝난 후 결혼식장으로 향한 유리. 그러나 결혼식장에서는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궁궐 밖 세상을 폭도들의 소란 정도로 치부한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이렇게 우리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부르주아 지식인 유리 지바고는 그런 세계에서 살 수가 없었다. 유리가 라라의 눈빛에 흔들린 건, 그 다른 세계를 처음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유리는 전쟁터에서 잠까지 줄여가며 한 명의 병사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애썼다. 전쟁에서 그가 목격한 건, 황제의 의미 없는 명령에 애꿎은 목숨을 버려가는 러시아 동포들의 절규였다. 간신히 살려낸 병사(얀코)를 덧없이 다시 잃어야 하는 세상이었다. 황제와 귀족이 지배하는 세계, 어린 병사가 고향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끝내 편지조차 전하지 못하고 죽는 세계. 군인들이 전쟁을 거부했을 때, 그가 만약 선택받은 세계에 충실한 귀족이었다면 다른 장교처럼 전선으로 향하자고 병사들을 재촉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걱정하는 건 부상병들의 안위뿐이었다. 그곳에서 그를 이해하고 함께해주는 건, 다른 세계에서 온 라라뿐이었다.

혁명 속에 꽃 핀 사랑, 뮤지컬 <닥터 지바고> 지난 2월 27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여 지난 7일에 폐막한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공연 사진. 3월 6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시연된 장면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입양된 가정에서 의사이자 시인으로 자란 지바고는, 안정된 가정을 새로 꾸리지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코바롭스키에게 총구를 겨눈 낯선 여자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의 노래가 시작된다.

▲ 이정화의 토냐 유리 지바고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고, 그를 사랑하는 아내였으며, 종국에는 그를 놓아주면서도 편지를 통해 끝까지 절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토냐. 어쩌면 그토록 지고지순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지 의아하면서도, 가장 안쓰럽고 마음이 쓰이는 캐릭터가 토냐이다. 다른 배우가 아닌 이정화가 소화하는 토냐였기에 그 애절함이 배가될 수 있었다. ⓒ 곽우신


토냐는 분명 착하고 헌신적이며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토냐는 선인이고, 지바고를 사랑하지만, 혁명 없는 사랑 속에서 지바고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로메코로 대표되는 토냐의 세계에서 그는 시를 쓸 수 없었다. 혁명 이후에 우리가 예전에 몇 가지 코스 요리를 먹었는지를 헤아리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다고 그저 한숨 쉬는 그로메코이니까. 유리 지바고는 혁명 이후의 세상에서 숨 쉴 수 없지만, 그렇다고 혁명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사람이다. 토냐는 왜 지바고에게 시를 쓰지 않느냐고 다그치지만, 당연하지 않은가. 밖에서 사람은 죽어가고, 시는 단 한 명의 사람도 구하지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 그는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겁기만 하다. 혁명 이전의 시기나, 혁명 이후의 시기나, 시처럼 미약한 온기가 깃들어 있기에 러시아는 너무 추운 동토였다.

황제의 군대에 있을 때나, 적색군에 끌려갔을 때나 그들이 찾는 건 의사로서의 지바고 뿐이다.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사람. 그러나 사람을 살리는 건 의료기술만이 아니다. 인간은 빵이나 사상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건, 그 아무 쓸모없는 시 한 줄, 사랑의 속삭임 한 마디뿐이었다. 적색군에 끌려다니던 그는, 위급한 병사에게 투여하려던 모르핀을 빼앗기고, 자살을 시도한 여인의 숨을 자신의 손으로 끊어주던 그는, 더 이상 이곳에 있어봤자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시를 쓸 수 있는, 라라의 품으로 돌아간다.



혁명 속에 꽃 핀 사랑, 뮤지컬 <닥터 지바고> 지난 2월 27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여 지난 7일에 폐막한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공연 사진. 3월 6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시연된 장면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입양된 가정에서 의사이자 시인으로 자란 지바고는, 안정된 가정을 새로 꾸리지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코바롭스키에게 총구를 겨눈 낯선 여자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의 노래가 시작된다.

▲ 라라에게 입 맞추는 유리 박은태는 수수하면서도 단단한 배우이다. 대극장 주연을 연이어 맡으면서 그는 갈수록 이 무대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 이번 <닥터 지바고>에서도 류정한의 지바고와는 또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훌륭하게 작품을 마무리했다. 이미 정점에 가까운 배우이지만, 그가 앞으로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지 더 궁금해진다. ⓒ 곽우신


혁명 없는 사랑도, 사랑 없는 혁명도 두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 유리와 라라는 선택받은 세계와 선택받지 못한 세계 사이에 끼어버린 인물이었다. 각각의 세계를 대표하는 토냐와 파샤는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없었다. 유리와 라라는 오로지 얼어붙은 벼랑 끝에 간신히 하나 남은 겨울나무 새잎이었다.

"어둠 너머의 한줄기 빛 따스한 온기로. 한밤의 태양, 별의 노래, 기도가 된 그대. 꿈꾸게 하고 숨 쉬게 하여, 나를 구원해준 단 한 사람, 벼랑 끝의 시간에. 꿈을 꾸어도 안전한 곳. 그대의 품에서, 모든 상처와 혼돈들은 별처럼 사라져. 겨울나무의 새잎이 되어, 나의 모든 꿈은 피어나네. 벼랑 끝의 시간에." - 뮤지컬 <닥터 지바고> 제2막 No.22 'On the Edge of the Time' 중에서

아쉽기만 했던 <닥터 지바고>

혁명 속에 꽃 핀 사랑, 뮤지컬 <닥터 지바고> 지난 2월 27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여 지난 7일에 폐막한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공연 사진. 3월 6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시연된 장면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입양된 가정에서 의사이자 시인으로 자란 지바고는, 안정된 가정을 새로 꾸리지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코바롭스키에게 총구를 겨눈 낯선 여자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의 노래가 시작된다.

▲ 유리를 바라보는 라라 전미도 같은 배우가 또 있을까. 언제 어디에서 무슨 옷을 입어도 기대 이상을 해내는 배우. 그의 넓은 스펙트럼만큼이나 심원한 깊이를 가진 배우. 전미도와 같은 배우와 동시대를 살아갈 수 있어서, 그의 연기와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관객이어서 감사하다. ⓒ 곽우신


2012년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닥터 지바고>가 지난 7일 폐막했다. '성황리에 폐막했다'라는 상투적 표현을 쓰기에는 머뭇거려지는 성과였다. 스크린에 의존하는 빈약한 무대도 한몫했지만,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진정한 패착은 시대적 맥락을 덜어내고 유리와 라라의 감정에 집중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오히려 그러한 연출적 선택이 유리와 라라의 사랑에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길목들을 끊어내 버린 셈이다. <닥터 지바고>의 주제는 '혁명 속에 피어난 운명적 사랑'으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그 '혁명'이 무엇인지, 그들은 왜 이 혁명 속에서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설득되어야 한다.

혁명 속에 꽃 핀 사랑, 뮤지컬 <닥터 지바고> 지난 2월 27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여 지난 7일에 폐막한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공연 사진. 3월 6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시연된 장면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입양된 가정에서 의사이자 시인으로 자란 지바고는, 안정된 가정을 새로 꾸리지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코바롭스키에게 총구를 겨눈 낯선 여자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의 노래가 시작된다.

▲ 시민 코마로프스키 동지 코마로프스키는 <닥터 지바고>의 악역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유리의 아버지가 몰락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암시가 나오고, 라라의 엄마에 이어 라라에게까지 손을 뻗는다. 그러나 마냥 미워하기는 어려운 순정이 어디선가 느껴진다. 특히 서영주 배우가 표현하는 코마로프스키가 특히 그랬다. 라라를 사랑했지만, 제대로 사랑할 줄 몰라서 그렇게까지밖에 하지 못했던 인물인 것마냥. ⓒ 곽우신


코마로프스키 캐릭터도 헷갈렸지만(그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철저했던 악인인가, 아니면 라라를 사랑했으나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인물인가) 결국 파샤와 토냐의 세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명강사 최진기까지 불러들여 <닥터 지바고>의 배경이 되는 혁명사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했지만, 작품 안에서 설명되지 않는 걸 외부 요소로 충족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 외부 요소를 통해 더 재미와 의미가 확장되는 건, 작품 안에서 충분히 이해되고 설명되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두 세계는 왜 갈등했는지, 유리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황제와 귀족의 치세 하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느낀 건지, 파샤와 러시아 민중은 왜 그토록 혁명을 간절히 원했었는지, 그 혁명은 왜 애초 목표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었는지, 구시대를 대표하는 귀족들은 왜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왜 라라는 파샤와 행복할 수 없었는지, 무엇보다 왜 유리는 토냐의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었는지….

적절한 부재료가 있을 때 주재료도 빛난다. 약간의 소금이 단맛을 더 강하게 한다. 적당한 안개꽃이 가운데 장미꽃을 더 빛나게 한다. 유리와 라라의 사랑에 집중하다가 오히려 유리와 사랑의 설득력을 잃어버렸다. 그러다보니 뮤지컬 <닥터 지바고> 속에서 유리는 지고지순한 토냐를 배신한 불륜남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그저 유약하고, 욕망에 쉽게 흔들리는 부르주아 지식인의 한 사람일 뿐이다.

작품 속에서 지바고가 시를 쓰는 순간들은 라라를 통해서 숨 쉴 여유를 찾았을 때뿐이었다. 그의 시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지만, 혁명으로 완성된 러시아에서는 금서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다른 세상에서는 인류애를 간직하고픈 이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 어둠의 시대를 지탱하는 글이 되었다. 그러나 허술한 서사 속에서 그들에게 왜 '시'가 의미가 있었는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는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채 퇴색되어 버렸다.

<닥터 지바고>는 우리가 건설하고자 추구해야 할 세계가 무엇인지 제시할 수 있었다. 현실에 눈 돌린 채 낭만과 환상만이 가득한 사회는 위선과 착취의 세계이다. 반면 현실의 불평등을 제거하여 인간을 해방하겠다는 목표 아래에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세계는 모순적이다. 혁명 없는 사랑은 공허했으며, 사랑 없는 혁명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바고와 라라가 원했던, 사랑과 혁명이 공존하는 세계를 두 사람의 연결을 통해 더 강렬하게 보여줘야 했다.

결과적으로 <닥터 지바고>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율, 시적이고 미려한 가사 위에서 섬세하게 조율된 배우들의 감정 연기를 감상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동시에 2018년의 <닥터 지바고>는 그 감정들이 엉성한 서사 위에서 긴 여운을 남기지 못한 채 순식간에 흩어져 버려서 화가 났다. 이렇게 훌륭한 배우들을 데리고 이 정도로밖에 뽑아내지 못한 것은 프로듀서의 역량이 부족한 탓인지, 연출이 방향을 잘못 잡은 탓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대로는 <닥터 지바고>의 브로드웨이 재도전도, 국내 세 번째 공연도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혁명 속에 꽃 핀 사랑, 뮤지컬 <닥터 지바고> 지난 2월 27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여 지난 7일에 폐막한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공연 사진. 3월 6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시연된 장면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입양된 가정에서 의사이자 시인으로 자란 지바고는, 안정된 가정을 새로 꾸리지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코바롭스키에게 총구를 겨눈 낯선 여자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의 노래가 시작된다.

▲ 내일은 오지 않을지 몰라 뮤지컬 <닥터 지바고>는 오디컴퍼니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 중의 하나이고, 나름의 공을 많이 들인 작품임에 분명하다. 모든 캐스트의 모든 배우가 사랑인 작품은 생각보다 드물다. <닥터 지바고>는 그런 작품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더욱 아쉽고 착잡한 감정이 드는지 모르겠다. ⓒ 곽우신



닥터지바고 지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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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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