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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월경 페스티벌 기획단은 월경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터부를 걷어내고 세대·계층·장애·성정체성 및 성적지향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월경 경험을 드러내고자 연속 기고를 준비했다. -기자말

수학여행에서 생리를 하지 않는 일, 체육시간에 생리를 하지 않는 일, 생리가 출장이나 중요한 발표를 피하는 일은 여성들 사이에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생리를 한다는 일은 어지간히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다. 출장기간에, 시험기간에 정신없이 바쁠 때 맞닥뜨리는 생리는 고역이기까지 하다.

생리를 한다는 것은 40년 동안 1만 개의 생리대를 사용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어떤 생리대를 선택할지에서부터, 생리 과정에 따라오는 아픔이나 통증을 겪어 내는 일이다. 때로는 생리를 겪으며 오는 통증과 증상이 참을성 없고 불평불만 많은 여자들의 투덜거림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을 마땅히 그러할 만한 일로 인정받고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수 있는가, 없는가. 그러니까 결국 생리를 어떻게 경험하는가의 문제는 여성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가을 때마침, 터져버린 '생리대 논란'은 그간 한국의 여성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를 깨우치게 했다. 기업과 정부는 생리대에 대한 최소한의 안정규정도 책임도 지고 있지 않았다. 여성들은 자신의 건강과 환경을 위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회용 생리대만이 아니라, 해외 브랜드나 생리컵, 면 생리대를 선택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회용 생리대의 대안은 일회용 생리대여야 한다.

여성들은 생리를 둘러싼 모든 과정에 돈과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한다. 같은 값의 생리대도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생리를 '겪고'있는 여성 개개인의 노동 조건과 주거환경, 장애의 유무 등에 따라 생리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모두가 생리를 하면서 같은 수준의 노력과 시간을 투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오산이다.

생리대 유해물질 감시, 지구와 여성건강을 위한 대안생리대 확대와 보급을 요구하는 여성들
▲ 안전한 생리대를 요구하는 여성들 생리대 유해물질 감시, 지구와 여성건강을 위한 대안생리대 확대와 보급을 요구하는 여성들
ⓒ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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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의 40%가 비정규직이다. 이는 남성노동자 비정규직 비율(25.5%)보다 월등히 높다. 쉬는 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일터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환경과 건강을 생각해 다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라는 말은 꿈같은 소리인지 모른다. 다회용 생리대를 빨고 말리고 할 공간을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는 여성들, 장애가 있는 여성들, 생리대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사용법을 얻기 어려운 여성들도 보다 안전한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생리용품을 만들 것인가, 어떤 생리용품을 선택할 것인가.

광고만 있었을 뿐이다. 어떤 종류의 생리대가 있는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그것이 환경과 여성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기업과 정부에 생리대에 대해 어떤 물질이 들어있냐 물어도 영업비밀이라는 답변만 돌아왔을 뿐이다. 생리대를 생산하고 사용하고 폐기하기까지 기업의 책임도 정부의 관리도 없었다. 모든 것이 여성의 몫으로만 돌아왔을 뿐이다.

냄새가 덜하게 하기 위해 향료를 집어넣고, 흡수력이 좋게 하기 위해 화학약품을 첨가하고, 팬티에 생리대가 부착되도록 접착제를 넣은 생리대. 석유에서 나온 합성화합물로 만들어진 생리대는 아무리 많은 안전기준을 세우고 물질을 바꾼다 해도 100% 깨끗해질 수 없다. 얼마만큼의 유해물질까지 인정할 것인가. 이것은 지속적이고 책임 있는 연구와 여성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가 기준을 만들고 관리해야 할 것이다.

일회용 생리대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
 일회용 생리대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
ⓒ 엄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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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를 하는 모든 여성이 40년 동안 생리를 하면서 1만 개의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할 것인가. 여성환경연대에 의하면 국내에서 일회용 생리대는 연간 20억 개 정도 버려진다고 한다. 이렇게 버려지면 태워지거나 매립된다. 이 과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할 것이다. 어떤 물질로 생리대를 만들었느냐에 따라 생산과 사용 페기의 전 과정에서 여성의 건강과 환경에 어느 만큼 영향을 미치는지 결정된다.

우리는 지난해 생리대 안전성 논쟁을 뜨겁게 겪으면서 다양한 생리대가 선택지로 있다는 것을 배웠다. 여성들, 우리의 삶이 한 종류의 생리대만 사용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어떤 생리대를 사용할 것인가. 가능하다면 지금까지와 다른 이유로 결정되기를 희망한다.

[월경 페스티벌 연속기고]
① "왜 하지? 자궁 떼고 싶어" 월경이 미운 이유

덧붙이는 글 | 배보람 녹색연합 활동가입니다.



태그:#생리대, #생리컵, #월경, #쓰레기, #식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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