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토>의 한 장면.

영화 <레토>의 한 장면. ⓒ HYPE FILM


온몸을 뒤흔드는 강렬한 펑크록인데 관객들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자리에 앉아 밴드를 응시한다. 그리고 이들 입가에 번지는 미소. 영화 <레토>의 첫 장면은 구소련 내에서 하위문화를 즐기던 당시 상황을 적확하게 보여준다.

126분 짧지 않은 러닝타임임에도 <레토>는 지루하지 않다. 한 시대를 풍미한 록음악의 힘도 있겠지만 연출을 맡은 키릴 세레브레니코프 감독은 애니메이션 효과와 페이크 다큐 기법을 기묘하게 사용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정서에 어렵지 않게 동화되도록 한다.

스타와 전설의 만남

냉전시대의 상징이었던 구소련 내 록음악이라니. 일단 그 자체로도 생소하다. 그 때문에 영화 속 중심인물이자 당대 소련 록의 전설이 된 빅토르 최의 면모가 어떻게 그려졌을지 국내 관객 입장에서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하다.

배우 유태오가 주연으로 참여한 <레토>는 크게는 당시 이미 스타였던 밴드 주파크의 리더 마이크(로만 빌리크)와 빅토르 최의 우정을 그린 걸로 이해할 수 있다.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를 알아본 마이크는 음악작업, 나아가 일상의 일부를 빅토르 최와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감정 갈등을 영화는 묘사했다.

록을 사랑하는 팬이자 마이크와 결혼한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센바움)을 두고 두 남성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지만, 영화는 이걸 주요사건으로 소모하지 않고 오히려 주파크와 키노(빅토르 최가 결성한 밴드)의 음악을 중심으로 당대 청년들의 정서적 변화와 시대의 변화를 그린다. 이런 절제미가 <레토>의 미덕 중 하나다. 

또 다른 미덕은 바로 시대정신의 투영이다. 마음은 동요하고, 정신 역시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지만 그런 이들에게 "왜 적군인 미국 음악을 좋아하냐"고 타박하는 기성세대들. X세대와 제로(0) 세대의 교차를 통해 <레토>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변화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았다. 이걸 대사와 사건이 아닌 1980년대 록음악으로 오롯이 전달했다는 데에 묘미가 있다.

영화 속 분위기는 전혀 진지하거나 무겁지 않은데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구성된 몇 몇 장면들을 보다보면 억압된 청년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신비한 체험까지 가능하다. 무심하게 데이빗 보위, AC/DC, 비틀즈 등 동시대 혹은 그 직전과 직후 전성기를 맞이한 여러 나라의 밴드들과 자신들의 음악을 비교하는 이 뮤지션들의 모습이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애잔하게 다가온다.

지금의 현실

 영화 <레토>의 한 장면.

영화 <레토>의 한 장면. ⓒ HYPE FILM


이 영화를 연출한 키릴 세레브레니코프 감독은 횡령 의혹으로 자택에 강제 구금 중이다. 혐의가 있다지만 현지에선 오히려 체제 비판적 작품을 많이 찍은 감독에 대한 일종의 길들이기로 보고 있다. 칸 영화제 초청 직전 <오마이뉴스>는 이미 배우 유태오를 접촉해 관련 소식을 전한 바 있다(관련 기사: 가택 구금' 당한 러시아 감독 곁에 한국배우 있었다 http://omn.kr/o2bp)

구소련은 무너졌고, 냉전시대를 지나 이젠 '지구촌'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억압과 검열이 존재하는 현실인 셈.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을 포함해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이런 표현의 자유와 독립성이 훼손당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레토>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우정 영화를 뛰어넘어 표현의 자유와 사랑할 자유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저변에 깔아 일종의 보편성을 담보했다.

영화는 주로 흑백 장면이 대부분이며 그 사이사이 컬러 장면을 통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식이다. 컬러 장면에서 감독은 디지털이 아닌 필름 작업을 고수했다. 또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애니메이션 효과를 통해 강조하는데, 이에 대해 10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필름에 스크래치를 내는 등 여러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관계자가 알린 바 있다. 애니메이션 효과는 주로 키노와 주파크의 음악 안에서 사용됐다.

서사적 이야기 안에 포함된 개성 넘치는 뮤직비디오들이 마치 선물처럼 다가온다.

 10일 오전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진행된 영화 <레토> 기자간담회 현장.

10일 오전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진행된 영화 <레토> 기자간담회 현장. ⓒ 이선필


평점 : ★★★★☆(4.5/5)

레토 유태오 빅토르 최 러시아 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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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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