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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출신의 이찬교 후보에게는 적극 지지를 선언한 시민사회단체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된다. 4월 18일, 구미.
 전교조 출신의 이찬교 후보에게는 적극 지지를 선언한 시민사회단체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된다. 4월 18일, 구미.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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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에서 진보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근년의 한국 정치 지형에서 영남은 시간이 더디게 가는 지역이다. 그나마 PK로 불리는 부산·경남은 사정이 훨씬 낫지만, 대구·경북은 옹색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도 TK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가 가장 높은 시도여서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을 정도다.

교육 부문에서도 이 지형은 바뀌지 않는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3개 시도에서 이른바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선출되었을 때, 그 바람과 무관한 곳이 대전광역시와 모두 영남권인 대구·경북·울산이었다. 이 세 개 시도 교육청에는 다른 시도에서 다투어 운영하는 '혁신학교' 같은 것은 물론 없다.

시도별로 무상급식이 보편적 시행으로 옮아가고 있을 때도 그 비율이 수준 이하였던 곳은 대구·경북·울산이었다. 특히 대부분 시도에서 초등학교 무상급식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올 2월까지만 해도 경북지역의 4개 시에선 부분 무상급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경북의 진보 교육감 후보 이찬교의 출사표

이 사실이 알려진 뒤 시민사회단체와 여론의 비난이 고조되자 이들 도시도 서둘러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단체장들이 여론에 굴복하면서 간신히 경상북도도 초등 전면 무상급식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이다.(관련 기사: 마지막 4개 섬, 경북에도 '무상급식' 물결)

영남권 가운데 대구·경북 지역의 후진성을 말했지만, 경북은 정작 이웃인 대구와도 비기기 어렵다. 전국에서 전교조 등 진보 진영에서 교육위원을 배출할 때, 거기서 빠진 유일한 시도가 경상북도였다. 2002년 교육위원 선거엔 지지 후보와 조직 후보(현직교사)가 1명씩, 2006년에는 조직 후보로 세 명이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의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현직 교육감 가운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인 민병희(강원), 김지철(충남), 김병우(충북), 장휘국(광주), 이석문(제주) 교육감이 모두 선출직 교육위원을 거쳤다. 교육감을 내지는 못했지만 전교조는 서울, 경기, 전북, 대구, 울산, 경남, 부산 등지에서도 여러 명의 교육위원을 배출했다. 교육감으로 선출되는 과정에 교육위원 직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 행정 경험을 쌓는 과정으로는 매우 요긴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2018년 6월 13일에 시행되는 지방선거에 경북에서도 진보 진영 교육감 후보를 냈다. 경선은 아니었지만, 지역의 시민·농민·노동·사회단체로 구성된 선출위원회의 꼼꼼한 검증을 거쳤다. 지난해 8월 현직에서 물러난 국어교사 출신의 이찬교(59) 후보다.

그는 전교조 경북지부장과 포항지역 고교평준화 추진위원회 공동대표를 지냈고, 현재 경북혁신교육연구소 공감 소장과 경북 친환경 무상급식 추진 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활동하면서 <시 맥락 읽기>(공저)를 펴냈고,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해냄에듀) 집필에도 참여했다.

1990년대 이후, 각급 선거에는 진보 진영에서 이른바 '후보 전술'에 따라 당락과 무관하게 후보를 내곤 했다. 이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냥 나와 보는 거냐'고 물었다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이른바 '열린 공간'을 활용하는 후보 전술이 아니라, 당선하여 경북교육의 혁신을 꾀하겠다는 목표다.

"보수 본거지지만 경북 민심도 바뀌어 가고 있다"

현재 경북 교육감 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는 이찬교 후보를 비롯하여 경북교육연구소 이사장 안상섭(55), 전 포항교육장 이경희(65), 전 경북교육청 교육정책국장 임종식(62), 한동대 교수 장규열(61) 후보 등 모두 다섯 명이다. 이 가운데 안, 이, 임 후보는 보수, 장 후보는 중도를 표방하고 있다.

지난 5월 4일, 대구경북인터넷기자협회가 주최한 경북 교육감 선거 토론회에서는 OX 질문·답변을 통해 진보적 교육 정책에 대한 후보들의 소견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찬교 후보는 고교평준화, 등교 시간 늦추기, 작은 학교 통폐합, 전교조 합법화, 투표연령 만 18세 인하, 페미니즘 교육,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에 대해 찬반 의견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진보 후보로서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냈다.<표 참조>

보수 본향 경북에서 진보 후보가 가는 길이 수월하기는 어렵다. 각 지역 시민사회, 농민, 노동 단체에서 지지를 선언하고 퇴직 교사들의 전폭적 지원이 큰 힘이긴 하지만 보수 정권 시기에 전교조에 덧칠한 부정적 인식을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 점이 걸린다. 지금도 전교조를 민주노총, 참여연대와 함께 자유국가의 공적으로 매도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대표에 대한 19대 대선 지지가 가장 높았던(48.6%) 지역이 경북이다.

구미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연 민주진보교육감 이찬교 후보 지지 기자회견에서의 기념촬영. 4월 18일, 구미.
 구미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연 민주진보교육감 이찬교 후보 지지 기자회견에서의 기념촬영. 4월 18일, 구미.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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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찬교 후보 중앙선거대책본부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11일 전화로 연결한 이찬교 후보 선거대책본부의 이용기 본부장은 이 후보가 경북지역 41개 시민사회단체에서 추대한 단일후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만큼 경북의 교육 민주화와 혁신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지지가 높다는 것이다.

"대구·경북이 보수진영의 근거지라고는 하지만, 여기서도 최근 변화의 조짐이 엿보입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높은 지지율과 함께 최근 남북관계 개선이 가시화되면서 지역 민심도 크게 바뀌고 있거든요. (……)

보수의 가치보다는 네거티브에 열중하고 있는 다른 보수 후보들의 전략은 결국 유권자들의 실망과 비판여론의 형성으로 귀결될 것으로 봅니다. 이미 보수 후보들의 단일화는 실패한 듯 보이고요. 지지율 추이와 상관없이 민주진보 진영의 숨어 있던 표들이 본선에서 경쟁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찬교 후보의 진보성은 대구경북인터넷기자협회 주최 경북교육감 선거 토론회(5.4.)에서 진보적 교육정책에 대한 소견을 밝힘으로써 명확히 증명되었다.
 이찬교 후보의 진보성은 대구경북인터넷기자협회 주최 경북교육감 선거 토론회(5.4.)에서 진보적 교육정책에 대한 소견을 밝힘으로써 명확히 증명되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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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에 문제를 해결하는 처방은 없다, 이해와 설득으로 접근할 터"

지금도 지역을 순회하고 있는 이찬교 후보에게 전자우편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았다. 사람들의 우려는 비슷한 모양이다. 36년 동안 교단에서 평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그는 다른 보수 후보에 비겨 교육 행정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 이런 취약점이 있는데 교육감이 되면 보수적이고 안정 지향적 가치관 일색의 관료들과 지역 교육장, 학교장과 함께 교육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에 대한 복안은 어떤가?
"수십 년 동안 틀에 박힌 교육 행정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과 제도는 결국 사람이 바꾸는 것이고,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의지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고 본다.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는 처방은 없다. 때로는 어려운 과정에 봉착할 수도 있겠지만 단시간에 해결하기보다는 설득과 이해를 바탕으로 경북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서서히 해결해 나갈 것이다.

- 급식과 교재, 교복 등 '무상교육'을 공약했다. 현실적으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생각인가? 경북도지사는 '무상'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온 자유한국당에서 승리할 전망이니 도의 지원 없이 가는 건 어려울 텐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가 되어 있는가?
"대한민국의 무상교육은 이미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처음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들이 무상급식 정책을 들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재원 문제를 우려했지만, 무상급식은 보편적 현실이 됐다. 결국, 이는 재원의 문제라기보다 의지의 문제다.

국가의 뒷받침 속에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고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을 통해서라면 무상교육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무상교육도 어려운 과정과 토론이 필요하겠지만, 시대적 사명감으로 진력한다면 반드시 실현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 공약 중 후보의 교육관이 반영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민주와 진보의 기치를 내건 후보답게 '혁신 교육'을 하겠다. 창의적 교육을 위한 혁신이다. 학생 인권 보호와 자치활동 보장, 교사 교육 권한 확대와 자긍심 고취, 내부형 교장 공모제 확대 등 교육 자치는 혁신에 이르는 방법이다. 교육내용과 교육방식도 평등교육, 민주 시민교육, 평화공존교육, 통일 교육을 전면 시행하고 문화·예술·체육교육을 활성화하고 학생 휴식권을 보장하도록 하겠다."

- 다른 후보와 견주어서 '나만의 장점이나 역량'이라고 자부하는 것은?
"더 나은 교육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라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36년 이상 현장교사로 근무한 것과 국어 교과서 집필에 참여함으로써 교육 현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내세우고 싶다.

또 경북 최초로 포항지역 고교평준화와 경북 친환경 무상급식 추진 운동본부 상임대표로 2018년에 경북의 초등학교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끌어냈다. 오랜 현장 경험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와 실천력 또한 다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현장은 경북교육 혁신의 출발점이며 종착점"

15일, 경북도교육청 브리핑실에서 열린 이찬교 후보 지지 기자회견에서 경북의 퇴직 교원들이 선언서를 읽고 있다.
 15일, 경북도교육청 브리핑실에서 열린 이찬교 후보 지지 기자회견에서 경북의 퇴직 교원들이 선언서를 읽고 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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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5월 14일, 경북교육청 브리핑실에선 경북 퇴직 교원 200명이 서명한 이찬교 후보 지지 선언 기자회견이 있었다. 퇴직 교원들은 이 후보의 공약이 곧 자신들이 교단에서 꿈꾸었던 것들임을 확인하고 못다 한 꿈을 이룰 후보로 그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초로의 퇴임 교사들이 읽은 지지 선언문의 한 구절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그것은 교단에서의 숱한 좌절과 상처를 겪으며 성장했던 평교사들의 공통된 깨달음 같았다. 모든 문제의 해답이 현장에 있는 것이라면 교단에서 숱한 좌절로 단련된 이찬교 후보에겐 이미 맞춤한 처방이 마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찬교 후보가 '교육문제의 해답은 바로 교육현장에 있다'는 일관된 신념을 지녀 온 것을 주목한다. 그렇다. 현장은 경북교육 혁신의 출발점이며, 종착점이다. 아쉬움으로 그 현장을 떠나온 우리는 이제 이찬교 후보가 나아갈 혁신의 길에 함께할 것을 다짐하면서 경북교육의 미래를 희망으로 그려보고자 한다."


태그:#경북 교육감 선거, #진보 단일후보 이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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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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