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영화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한 장면

다큐영화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한 장면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2018년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38년째 되는 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왜곡돼 전해지던 역사의 진실의 밝히려는 움직임도 제법 활발하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물론 강연들이 적지 않게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당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린 사람은 독일 공영방송 기자였던 위르겐 힌츠페터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광주까지 데려다 준 운전사 김사복씨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아니었다면 광주의 진실은 어쩌면 한 세대가 지나고서야 입에 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힌츠페터의 카메라를 들여다 보는 김사복씨

힌츠페터의 카메라를 들여다 보는 김사복씨 ⓒ 드림펙트엔터테인먼트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KBS PD인 장영주 감독이 '위르겐 힌츠페터'가 실제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그가 전두환 군부 정권이 저지른 광주의 참혹한 진실이 담긴 필름을 목숨을 걸고 독일 ARD 방송국에 전달하면서 광주의 진실이 알려졌다.

1980년 당시 위르겐 힌츠페터는 도쿄 특파원으로 활동 중이었다. 그해 5월 19일, 한국의 광주에 계엄령이 선포되는 등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두 시간 만에 짐을 싸들고 한국으로 온다. 이후 그는 조선호텔에서 김사복씨와 만나 광주로 향하지만, 광주 도착 직전 길을 통제하는 군인들을 만난다. 하지만 힌츠페터는 '광주에서 연락이 끊긴 상사를 찾으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광주 진입에 성공한다.

쿠키통에 광주 참상이 담긴 필름을 숨기고...

 다큐영화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한 장면

다큐영화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한 장면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힌츠페터는 19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광주 진입에 성공해 광주의 현실을 최대한 많이 필름에 담는다. 그는 쿠키통 속에 필름을 숨기고 일본 도쿄로 돌아와 독일 ARD에 촬영 영상을 넘기는 데 성공한다. 광주의 현실이 담긴 참혹한 영상이 나올 땐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23일 시민군과 계엄군이 대화와 협상을 시작하지만, 협상은 결렬된다. 이후 27일 새벽 군부는 특공대를 투입해 광주 도청에서 마지막 항쟁을 벌이던 이들을 무차별 사살한다. 힌츠페터는 수십 구의 관이 놓인 곳에서 아들의 죽음을 발견하고 심장을 쥐어뜯으며 처절하게 울부짓는 여인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야 했던 아픈 심정을 토로한다.

또 힌츠페터는 자신이 카메라에 담았던 젊은이가 다음날 머리에 총을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하고 옥상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보초를 섰던 시민군이 계엄군에 의해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굴비처럼 엮여져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힌츠페터는 왜 두 번씩이나 광주를 갔을까. 김사복씨는 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광주로 데려다 줬을까. 힌츠페터는 말한다. 진실을 알리려는 자신의 열망과 진정성을 김사복씨가 알았고 꼭 광주의 진실을 제대로 알려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이후 힌츠페터는 1986년 민주화 항쟁의 열기로 대한민국이 뜨거울 때 다시 한국을 찾아 촬영하던 중 사복 경찰에게 폭행을 당해 목뼈 등에 커다란 손상을 입었고 결국 기자 생활을 접어야 했다. 수술 후유증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도 깊었다. 그는 군인이 등 뒤에 서 있는 환영에 시달렸다고 한다.

"광주시민이 묻힌, 망월동 묘역에 묻어 달라"

 다큐영화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한 장면

다큐영화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한 장면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힌츠페터는 2004년 심장마비로 쓰러져 투병 중일 때 "죽으면 1980년 5월 당시 희생된 학생과 광주시민이 묻힌 망월동 묘역에 묻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2016년 5월 5·18기념재단은 힌츠페터씨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일부 가져와 광주 망월동 5·18 구묘에 안치했고 묘지는 독일에 있다.

힌츠페터의 투철한 기자 정신과 정의감 덕분에 광주의 진실이 알려질 수 있었다. 진실을 알린 대가로 위르겐 힌츠페터가 떠안아야 했던 건 폭행으로 인한 상처와 정신적 고통이었고 운전사 김사복씨도 마찬가지였다.

<5.18 힌츠페터 스토리>를 통해 그동안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영상은 물론 당시 광주 현장, 시민군의 생생한 모습, 생존 시민군의 인터뷰, 진실을 알리기 위해 영상을 들여 온 신부 등의 증언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언론의 중요성과 진실을 알리려는 기자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 수 있다.

힌츠페터와 김사복씨가 재야 지도자 함석헌, 계훈제 선생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아래 시가 떠올랐다. 힌츠페터에게 김사복은 어쩌면 그가 가졌던 그 사람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다큐영화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한 장면

다큐영화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한 장면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 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탓 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 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 저하나 있으니" 하며
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찬성하여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힌츠페터 5.18 광주 김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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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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