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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우는 친구가 있다. 기뻐서, 슬퍼서, 지난 일 때문에, 앞으로의 일 때문에, 셀 수 없이 많은 이유들로 눈물을 보인다. 정말 미안하게도, 그녀의 넘치는 눈물을 미성숙함으로 이해한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어른이 되며 감정을 절제하고, 절제된 그것을 눈물 아닌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던가, 그렇게 생각했다.

지난 4월, 제주 4.3 평화공원을 방문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나는, 내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곳과 아무 관련 없는 말들을 쏟아냈고, 결국 눈물을 감추는데 성공했다. 슬픔을 감춘 내 절제력에 나조차 놀란 순간, 그제서 뒤통수를 내려치는 깨달음이 몰려 왔다. 미성숙한 것은, 친구가 아닌 나였다는 것. 나는 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나는 나에 대해, 내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에 퍽 서툴다. 못난 것은 못난 대로, 잘난 것은 잘난 대로 감추고 싶다. 고통과 불행은 물론, 기쁨과 행복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나를 숨기다보니, 어느 새 나에게조차 모습을 드러내기 어색해하는 내가 보인다. 이제야 발견한 '나'다.

나를 알아간다는 건 참 반가운 일이다. 나를 깨닫고 나를 먼저 보듬을 수 있어야, 내 곁의 사람도 스스럼없이 껴안을 수 있을 테다. 나 자신을 따스하게 마주하도록 돕는, 그래서 참 반가운 책을 만났다. '넘어지면 어때 후회하면 어때'(부제)하고 말을 건네 온다. '서늘한여름밤'이 그리고 쓴, <나에게 다정한 하루>다.

<나에게 다정한 하루> 책표지
 <나에게 다정한 하루> 책표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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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퇴사를 하고 나온 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노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삶은 참 힘들었다고, 그리하여 증명하는 삶 대신 즐거운 삶을 택했다고 말한다.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가고 싶다"(p8)고. 사랑스러운 그림에 마음이 말랑해지고, 펼쳐질 이야기에 기대감이 차오른다.

"새로운 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예스." (p10)


저자는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도 여전히 신나기도 했지만, 때때로 허무와 무기력과 우울 등 불안정한 자신을 만나야 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시 또 하나의 자신임을 말한다. 이렇게,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다.

"이토록 위태롭고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나의 두려운 반쪽. 
도망치지 않을 거야.
끌어안을 거야, 너를." (p39)


저자는 가만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 새 나는 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훈계나 조언은 없다. 짐짓 고상한 체 또한 없다. 오히려 거친 표현에 놀랄 때도 있지만, 전달되는 것은 따뜻한 공감과 위로다. 덕분에, 나 역시 싫어하고 감추려 했던 나의 마음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외로움은 내 마음의 문을 열어줬다. 분노는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되고 불안함은 나를 성실하게 먹여 살려준다. 히스테릭함은 나를 표현할 수 있게 해줬고 혼란스러움은 나를 풍성하게 해줬고 구체적인 자기혐오는 나를 구체적으로 사랑하게 해줬다." (pp264-266)


합리화가 아닌 사실이렷다. 모든 것엔 긍정과 부정이 함께 하거늘, 한 면에만 집중하는 것은 공평치 못하다. 가끔, 아니 실은 자주, 나 자신을 요목조목 비난하고, 나를 비난하는 나 자신을 또 비난하는 나로서는 이런 생각의 전환이 퍽 반가웠다.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할 것이 확실한 세상 유일한 사람인 나를, 조금은 더 긍정하고 싶다.

"습관적으로 드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그냥 방치하지 않기로 했다. 괜찮은 날에는 쉽게 떨쳐버릴 수 있지만 괜찮지 않은 날의 나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하나 그때그때 반박하기로 했다. 내 마음 속에 좋은 믿음을 심고 싶다." (p109)


우리는 모두 역할 속에서 살아간다. 대개는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지만, 가끔은 스스로 만든 역할에 불필요하리만치 짓눌리기도 한다. 저자 역시 그런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상대의 기대에 맞추고 싶었고, 그것은 나름의 예의이자 스스로에 대한 방어막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로 인한 갑갑함에서 벗어나 편안해지고자 한다. 이 역시, 진짜 내가 되는 길일 테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 전 '내가 되자'는 말을 마음속으로 주문처럼 외우고 간다." (p70)

책의 후반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가부장제와 여성혐오, 페미니즘, 나아가 성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연대해야 할 것이다.

"함께 이야기하자.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테니." (p312)


저자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현재 심리상담센터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심리전문가라고 해서 고통이 없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지만, 그 누구라도 자신의 내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것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응원을 건넨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응원과 감사를 꾹꾹 눌러 담아.

내겐 비교적 평화로웠던 요즘이다. 그러니 위로받을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위로받았다. 덕분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진다. 혹시 내가 작지만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그러나 누구보다도 먼저, 나에게 '다정한' 내가 되어야겠다. '나에게 다정한 하루'들이 모여, 다정하고 편안한 내가 만들어질 테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내 말랑한 마음이, 내 곁의 사람들을 더 보듬을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도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p215)


나에게 다정한 하루

서늘한여름밤 지음, 위즈덤하우스(2018)


태그:#나에게 다정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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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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