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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는 쉼 없이 글쓰기에 도전하는 분들이 모여 있습니다. 바로 '시민기자'입니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시민기자들이 저마다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자신만의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와중에 이들은 어떻게 글을 쓰고 있을까요? 그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박초롱 시민기자는 앞만 보고 내달리던 공기업 직장인이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샤워하며 뉴스를 듣고, 운전하며 외국어 구문을 외우고, 헬스장 트레드밀에서 뛰며 CNN을 봤다. 1분을 1시간처럼 썼다. 성공한 1% 안에 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멈출지 모르고 질주하던 어느 날,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충격을 받은 그는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삶의 당연한 진리가 그를 멈추게 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멀리서 바라보게 됐고, 계속 치고 들어오는 미션을 해치우느라 정신없는 나를 발견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독버섯을 물리치며 다음 스테이지로 쉼 없이 나아가는 게임 속 슈퍼마리오 같았다.

"가는 데 순서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걸 머리로 아는 것과 온몸의 감각으로 체감하는 건 정말 달라요. 그때 전 후자였어요. 나도 죽는구나, 청춘이란 게 정말 소중한 거구나. 절실하게 느꼈어요. 그전까지는 중심추를 '내일'에 두고 살았거든요. 늘 오지 않는 내일을 막연하게 바라보면서 참고 희생하고... '회사에서 오래 버티는 놈이 이기는 거다'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른 채 살다가 떠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이제라도 중심추를 '오늘'로 끌어와야겠다고 결심했죠."

나같은 사람을 응원하기 위한 글

남미여행 당시 박초롱 시민기자
 남미여행 당시 박초롱 시민기자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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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바라보며 살던 '6년 차 박초롱 대리'는 오늘 하고 싶은 일, 오늘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3년 전 일이다. 입사할 때 버킷리스트에 적은 것들을 퇴사 후에 하나씩 해냈다. 100일 남미 여행, 시골에서 살아보기, 승마배우기, 연극하기, 출판, 강연으로 돈 벌기 등.

그리고 달라진 그의 삶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모두가 옳다고 하는 궤도에서 이탈해도 된다고,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서다. 그가 2015년부터 발행 중인 계간지 <딴짓>과 2018년 1월부터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하는 '프로딴짓러 일기'도 그런 취지다. 승진이나 연봉 인상, 명예 등의 성공으로 직결되지 않는 딴짓일지라도 내가 즐거우면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게 공통된 메시지다.

"'직업이 뭐예요?' '뭐하시는 분이에요?' '어디 다니세요?' 처음 누군가를 만나면 당연하게 받는 질문이에요. 직업이나 직장, 학교가 곧 나를 설명하는 거죠. 사실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 중 일부분일 뿐인데 우리 사회가 거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개인의 가능성을 틀에 가둔다고 할까요.

그 고리타분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어디에 속하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느냐로 사람을 이해했으면 해요. 사실 이런 말을 누가 해줬으면 했는데 아무도 안 해줘서 제가 글을 쓰게 된 것 같아요. 퇴사할 때 정말 많이 고민했거든요. 많은 사람이 반대했어요. 누군가는 조곤조곤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싶었죠. 어딘가 있을 저 같은 사람을 위해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그는 "박사나 교수, 유명인이 아닌 사람이 '소소한 글'로만 밥을 벌어 먹고사는 건 불가능하다"고 잘라말했다. <딴짓>은 발행할 때마다 한 번에 500권을 인쇄한다. 잡지 가격은 1만2000원. "서점 판매 수수료와 제작비용 등을 떼고 나면 한 권에 2000원, 다 팔리면 총 100만 원"의 이윤이 남는다. 잡지 발행에 참여하는 '딴짓 시스터즈'는 박초롱 시민기자를 포함해 총 3명. 독립출판계에서는 "꽤 성공한 잡지"인데도 이걸로만 생계를 유지하며 살 수는 없는 수준이다.

다른 일을 병행하는 '생계형 프리랜서'가 돼야만 했다. 글과 밥, 둘을 동시에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는 ▲ 관심 있는 분야 ▲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 일 ▲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균형 ▲ 생계유지를 위한 급여 등의 조건이 충족되는 일들을 추진했다. 북스테이 운영, 독립출판 워크숍, 글쓰기 강의, 축제기획 업무 등이 그가 했거나 하는 일이다. 올 6월에는 작은 가게를 빌려 책과 술을 결합한 북 바(Book+bar) '낮섬'을 열 예정이다.

글로 벌어 먹고사는 삶이 목표인 만큼 글과 관련된 일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판다. 회사에서 했던 마케팅 경력을 살려 브랜드 카드뉴스 스토리라인 업무를 외주(?)로 맡거나 서울문화재단과 손잡고 인터뷰 프로젝트와 글 첨삭 등을 진행하는 식이다.

그는 "독립잡지만으로 먹고 살 수는 없지만, 그런 콘텐츠를 만들어둔 덕에 글과 관련된 일이 들어오는 것 같다"라며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면 먼저 자기 콘텐츠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거기서 일이 파생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독서는 운동선수의 훈련 같은 것

독립출판 워크숍 중인 박초롱 시민기자
 독립출판 워크숍 중인 박초롱 시민기자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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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수입'이란 난관을 타개하기란 쉽지 않다. 생계형 프리랜서는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 내가 가능할 때 원하는 만큼 일이 들어오는 게 아니므로 일이 굴러 들어오면 일단 잡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쁘게 지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7개의 일을 동시에 맡았는데, 그렇게 일해서 번 총수입이 이전 회사 월급에도 못 미쳤다고 한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압박이 심할 때는 회사 다닐 때가 생각나요. 통장 잔액이 50만 원을 찍었을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더라고요. 당연히 그런 순간은 와요. 고뇌를 한 방에 날릴 극복방법은 사실 없어요. 그냥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잖아요. 내가 선택했으니 책임지는 건 당연한 거죠."

대신 '나는 왜 쓰는가'를 잊지 않기 위해 게을리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책 읽기다. 글 쓰는 사람에게 독서가 중요하다는 건 '밥은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처럼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는 중요한 정도를 넘어서 지금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나침반 같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운동선수들이 매일 훈련을 빼먹지 않듯이, 방향과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책을 읽으며 단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글을 계속 읽지 않으면 나오는 글도 좋지 않아요. 계속 바쁘게만 살면 글이 교조적으로 흐르더라고요. 생각도 삭막한 쪽으로 가요. 월세, 적금, 연금 이런 거. 책을 읽으면 중심을 잡게 되죠."

요즘에는 '글 좀 쓴다'는 사람이 많다. 출판사에서 책을 내주지 않아도 나만의 1인 출판을 할 수 있게 됐다. 굳이 종이가 아니어도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제나 블로그 등의 플랫폼을 활용해 글을 발표한다. 누구나 글을 쓰는 세상에서 글로 벌어 먹고산다는 게 가능할까.

"예전에는 신춘문예에 합격해야만 작가였는데, 이제 그런 섬이 무너져서 모두가 작가고 소비자인 세상이잖아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글의 위계질서가 무너지는 게 좋아요. 글 쓰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분야에서 조금씩 각자의 방식대로 먹고 살았으면 해요. 세계적인 파티시에가 있는 반면에 동네 빵집에서 빵을 굽는 사람도 있고, 강남의 유명 헤어숍이 있는 반면에 동네 미용실도 있는 거잖아요. 작은 가게에서 매일 밀가루 반죽을 하고 머리를 말 듯, 글 쓰는 일도 그런 맥락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박초롱 시민기자가 아끼고 아껴 읽는 책은 김연수 작가가 <소설가의 일>. 왜, 어떻게 소설을 써야 하는지 생생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이 책을 읽으면 글 쓰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겨나고, 마음에 드는 문구들이 떠오르고, 테이블 위에 앉게 된다고 한다. 그는 "글 쓰는 사람들은 힘들 때 나를 노트북 앞에 앉게 하는 책을 한 권쯤은 찾아둬야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퇴사? 병행? 일단 선택부터

박초롱 시민기자
 박초롱 시민기자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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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글 쓰는 삶을 꿈꾸며 '퇴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무엇이든 일단 선택하라"라고 조언했다. 회사에 다니며 병행하든, 자유로운 몸이 되든 일단 내가 직접 결단을 내려야 결과를 감내하기 수월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면서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며 미적지근하게 있으면 나만 힘들다, '1년 더 다니면서 준비한다'는 식으로 방향을 설정해야 마음도 편하고 회사 조직에도 피해를 안 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에게는 병행이란 선택지가 없었다. 단순히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퇴사한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있으면 확실히 안정적이지만, 똑같은 일, 원하지 않는 일만 하며 버티면 무기력해지겠구나" 싶었다. "회사가 목줄을 잡고 흔드는 현실" 또한 자존심이 상했다.

'여기서 나가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조직의 부품이 아닌 하나의 주체로 살기 위해 사표를 냈다. 다행히도 나와 보니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일도, 기회도 많았다.

"개인마다 처지나 사정이 다르니까 병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어요. 지키고 싶은 게 있어서 뭔가 포기하는 게 나쁜 선택은 아니죠. 단지 선택일 뿐이니까요. 다만 병행이란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걸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퇴근하고 나서 오후 7시부터 자기 전까지 글 쓰면 되겠네'라고 말해요. 그런데 그 시간에 무조건 퇴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설령 그때 앉는다고 해서 글이 저절로 나오진 않아요. 글을 쓰려면 채워 넣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보거나, 듣거나, 읽거나. 밥을 먹지도 못했는데 배설만 하라는 뜻이나 다름없어요. 그리고 온종일 직장생활 하다 돌아오면 에너지가 다 소진돼서 쓸 기력도 안 남고요. 잡고 싶은 게 있으면 내려놔야 해요. 전부 다 꽉 쥐고 있으면 새로 잡을 순 없어요. 결국 무언가를 내려놓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박초롱 시민기자 대표 기사]
대기업 퇴사 3년, '생각'없이 살아봤더니(http://omn.kr/pwl9)
"회사에 감사하며 일하세요" 자괴감에 빠졌다(http://omn.kr/qs95)
시간 거지였던 나, 퇴사 후 이렇게 달라졌다(http://omn.kr/rcs7)


태그:#시민기자, #박초롱, #딴짓, #독립잡지, #나는어떻게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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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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