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동학대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교사, 얼마 전에 접한 기사는 심지어 친부모였다. 끊이질 않는 아동학대 기사를 접할 때마다 이게 대체 인간의 탈을 쓰고 자식에게 할 행동인가 싶을 때가 많다. 겨우 '무기징역'이라는 형을 선고받는 그들을 보며 이런 때만큼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의 법을 적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도 아이들을 혼낸다. 드물지만 회초리로 손바닥을 때리며 혼내기도 한다. 회초리에 이르기 전까지 어르고 달래다가 안 되면 소리를 '꽥꽥' 지르며 혼을 쏙 빼놓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는 후회한다. 아이들이 무에 그리 혼날 일을 했다고 그렇게 다그치고 화를 냈을까 하고 말이다. 오늘도 좋은 엄마 노릇을 못했다며 자책한다.

워킹맘이 된 이후로 내가 관심을 가지는 엄마 자격은 바로 '평균'이다. 완벽한 엄마(Perfect Mother)와 나쁜 엄마(Bad Mother) 사이에서 적당히 좋은 엄마(Moderately Enough Mother)가 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적당히 나쁜 엄마는 자기가 나쁜 사람임을 알지만 진짜 나쁜 엄마는 자기가 나쁜 엄마인지 모른다.
 적당히 나쁜 엄마는 자기가 나쁜 사람임을 알지만 진짜 나쁜 엄마는 자기가 나쁜 엄마인지 모른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많은 육아서나 주위의 시선은 아이에게 희생하는 엄마, 여성이자 나를 내려놓고 아이를 삶의 최우선으로 하는 엄마를 좋은 엄마로 규정한다.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강압적으로 지시하기보다 시간이 걸려도 아이를 설득하고 대화하기를 권한다.

나도 안다. 부모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아이와 대화하는 게 좋고 아이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옳은 결정을 내리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풀타임 잡을 가진 워킹맘이다. 아침에 눈 뜨면 남편과 아이들 식사 준비를 하고 등교 준비를 하고 회사 출근 준비를 한다. 회사에서는 여느 직장인과 똑같이 주어진 일을 하느라 바쁘다.

언젠가는 아픈 아이를 두고 출근했던 날에 일하느라 여러 시간 동안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완전히 까먹기도 했다. 퇴근할 때가 돼서야 낮에 토해서 학교를 조퇴하기까지 한 아이가 생각나서 집으로 허겁지겁 전화를 해서 아이를 챙긴 일도 있다. 

또 회사에서 일하는 틈틈이 아이들 학교의 통신문 알림 앱이나 엄마들의 단톡방을 들여다 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쑥쑥 크는 아이들 옷, 이번 주말 먹거리, 집안 대청소 등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것들을 수시로 메모해 놓고 출퇴근 지하철에서 폭풍 쇼핑을 하기도 한다.

늘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 보니 주중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아이들에게 늘 '빨리빨리'를 달고 산다. 5분, 10분 늦는다고 큰일 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하나가 늦어지면 다른 것들도 줄줄이 틀어지고 그만큼 내가 쉴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서인지 아이들을 재촉하게 된다.

가끔은 이 방식으로 가족 전체를 잘 몰고 다니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5분 재촉하려다가 남편하고도 싸움이 나서 그날 일정이 다 틀어진 적도 있다. 이렇게 육아도 일도 거기에 가사나 부부간의 관계 다지기조차 모두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가지는 것은 워킹맘의 숙명인 것만 같았다.

내가 회사를 이직하면서 출근 시각이 늦어져서 친정부모님께 의존하던 아이들의 등교를 직접 챙길 수 있게 됐다. 엄마가 집에 있어서 좋은 시간은 잠시뿐이고 어느 날인가부터 아이들에게 더 빈번하게 짜증을 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화를 낼 바에야 이전처럼 친정부모님께 아이들 등교를 부탁하고 엄마는 일찍 출근하겠다고 선포했더니 엄마가 화내는 건 싫지만 먼저 출근해서 엄마를 못 보는 건 더 싫단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고마운 순간이었다.

"적당히 나쁜 사람은 자신이 크게 선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지만 철저하게 나쁜 사람은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한다(A moderately bad man knows he is not very good: a thoroughly bad man thinks he is all right)."

기독교 사상가 C.S. 루이스의 경구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에게 화를 냈다, 혼냈다, 부모로서 일관성을 지키지 못했다 혹은 워킹맘이라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못했다는 다양한 이유로 아이에게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가진다. 적당히 나쁜 엄마는 자기가 나쁜 사람임을 알지만 진짜 나쁜 엄마는 자기가 나쁜 엄마인지 모른다. 그래서 아이를 학대하고 방치하는 선을 넘는 거다.

낮에 아이들을 혼내고 밤에 잠든 아이들을 보며 속상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블로그에 이실직고하는 걸 보면 나는 좋은 엄마는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직시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엄마들이 하는 행동은 나쁜 사람이나 하는 아동학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아이가 잘 되라고 잔소리한 것을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워킹맘육아, #70점엄마, #쌍둥이육아, #죄책감, #적당히좋은엄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