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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와 경비원 등을 폭행하고 폭언을 일삼은 혐의를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아내 이명희씨가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조양호 한진 회장 부인 이명희, 구속영장 심사 출석 운전기사와 경비원 등을 폭행하고 폭언을 일삼은 혐의를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아내 이명희씨가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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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영장이 신청된) 5월 31일 경인가, 합의 볼 생각이 없느냐고. 먼저 합의했던 사람들이 5천(만 원)에서 1억(원) 이렇게 얘기하길래…."

5일 KBS <뉴스9>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와 합의를 봤다는 피해자 인터뷰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앞서 경찰은 진술을 확보한 피해자 11명 가운데 5명은 영장 심사 직전 법원에 합의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KBS는 그중 일부가 수천만 원에서 억대 합의금을 받았다고 전했다.

직원들을 개처럼 부리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고, 심지어 돈을 아끼자고 필리핀 가정부를 회사를 동원해 고용했던 한진가와 이명희 전 이사장. 그러나 구속을 면하기 위해서라면 그 아꼈던 돈을 펑펑 써대는 천박함과 또 그 돈 앞에서 결국 합의서를 제출해야 했을 '을'들의 입장이 씁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앞서 4일 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특수폭행·특수상해·상해·특수폭행·특가법(운전자폭행)·상습폭행·업무방해·모욕 등 7가지 혐의를 받은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이 든 기각 사유는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사실관계와 법리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볼 수 없"으며, "이 씨가 합의를 통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 주요 사유였다.

이러한 법원의 불구속 결정만큼이나 분노를 자아내는 것이 바로 한진 가와 이명희씨의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그 천박하고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가치관일 것이다. 이와 관련, SBS <8시뉴스>는 <합의서 잔뜩 모아온 이명희..영장 기각에 들끓는 여론>이란 보도를 통해 '억대' 함의금과 '합의서'를 맞바꾼 이씨의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기사 제목처럼, 여론이 들끓고 있다.

'억대 합의금' 이명희, 여전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현실

"김성태 원내대표 가격 징역 1년 구형... 이명희씨는 다툼이 있어서 불구속.. 영상이 있고 같이 때린 사람이고 그러나 결과는 천지 차이. 돈과 권력에 무너지는 검찰 부끄럽습니다. 제가 이런 글을 남기면 또 추적하여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나이 40에 차음으로 글을 남기는 것은 그동안 정치가 아닌 사회에 무관심했던 것이 부끄러워서입니다.

만약 청와대에 계신 분들이 이 글이 20만이 넘지 않아 못 보시더라도 제발 힘 있는 자에 약하고 힘없는 자에 강한 그런 대한민국이 되지 않게 부탁드립니다. 한 명의 시민 아닌 주권을 가진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부탁드립니다. 제발 제가 이런 글을 올리지 않게 해 주세요."

5일 '정말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있는 건가요? 정말 궁금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 청원 글 내용이다. 청원인은 정치에 무관심했으나 지난 국정농단 사태 당시 촛불을 들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제발 이런 글을 올리지 않게 해 달라"면서도 그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폭행한 죄로 구속된 일반인에게 검찰이 징역 1년을 구형하는 반면 이명희 전 이사장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는 현실을 비교하고 있었다.

앞서 지난 4일 검찰은 지난달 5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 중이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를 때린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김아무개(31)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검찰의 구형 이유는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제1야당의 원내대표를 때린 점이 무겁다" 등이었다.

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씨는 최후진술에서 "매일 반성하고 있다"며 "선처(처벌불원서 제출)를 해주신 김성태 의원에게 감사하고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구속돼 눈물까지 흘리며 선처에 감사한다는 31살 청년과 대상이 불분명한 "죄송하다"만 연발하며 억대 합의서를 제출, 구속을 면한 재벌 총수의 아내 이명희씨.

이 두 사례를 보면서 국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대한민국의 오늘을 절감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거기에,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사법 거래의 민낯이 일파만파 파장을 키우면서 이명희씨의 구속 영장이 기각시킨 법원을 바라보는 시선도 고울 리가 없지 않겠는가.

법관 수입, AI 법관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정관예우 등 해서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하는데 이번 사건까지 터졌기 때문에. 예를 들면 우리가 소고기 한 근을 사더라도 저 정육점 저울은 엉터리다. 그럼 그 집에서 소고기를 살 수가 없잖아요.

우리 국민들은 차라리 외국 법관들을 수입해다가 하거나 아니면 AI 있죠? 인공지능. 인공지능 법관에게 하는 게 더 균형 있는, 공정한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노회찬 정의당 대표는 최근 사회적 파장이 거세지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에 대해 위와 같은 비유를 들었다. 그야말로 '치외법권' 영역에서 국민들을 우롱했던 사법부, 그의 수장 격인 대법원의 보수 정부 시절 사법 거래의 민낯이 하루하루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이를 축소하려는 축과 지극히 상식적인 시선에서 권력 앞에 납작 엎드렸던 대법원의 사법 거래에 분노하는 축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5일에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2015년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체포 및 구속영장 제도를 이용, 법무부와 거래를 시도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임명한 영장전담판사들이 여전히 구속 여부를 결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희 전 이사장의 불구속 역시 오비이락 격으로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현재 진행 중인 촛불집회를 '범국민 촛불집회'로 확대해 기업 갑질 문화 자체를 근절해야 한다.'

이명희 전 이사장의 불구속 결정 직후 대한항공 직원연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의견들이다. 직원연대는 5일 성명을 통해 "법관들이 갑(甲)의 편이 되어 을(乙)들의 가슴을 찢어 놓고 있다"며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증거가 인멸되다 비로소 터져 나온 수많은 을의 눈물이자 절규"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맞다. 대법원의 사법 거래와 함께 이명희 일가의 계속되는 불구속과 갑질 문화 근절까지 한 묶음으로 사회적 공분을 모아 나갈 필요가 있다. 적폐청산이 이제는 지겹지 않느냐는 이들에게 물어야 할 때다.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 내 적폐가 아직 살아 있지 않느냐고. 이명희씨와 한진 일가의 전횡과 비리를 확실히 끊어낼 수 있겠느냐고. 삼성에 한없이 관대한 이 나라 사법체제는 또 어떡할 것이냐고. 대한항공 직원연대의 촛불이 더 크게 번져나가야 할 이유는 한 두 가지가 아닌 셈이다.


태그:#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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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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