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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리 가는 길. 한달살이 집이 있는 세화리에서 버스로 채 30분도 안 되는 거리. 하차 직전 기사님께 '북촌 초등학교' 위치를 물으니 "바로 저기요, 보이시죠?" 하며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가슴이 철렁. 허구일 것만 같았던 세계가 실재함에 무서운 것을 본 것처럼, 여전히 살기어린 듯한 장소에 선 것처럼 마음이 떨렸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달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달살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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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초등학교 앞. 젊은 연인 둘이 환하게 웃으며 "이게 학교야? 너무 예뻐"라며 기념 촬영을 했다. 아무래도 70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는 듯. 잠시 망설인 끝에 4.3사건과 북촌리 마을 주민들의 몰살 사실을 아는지 물었다. 남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조금 미안했지만 그보다 훨씬 미안하지 않았다.

1949년 당시 북촌마을 주변을 지나던 군인 2명이 살해됐다는 이유로 이곳 주민 400여 명이 군인들에 의해 총살당했다. 북촌 초교에 소집된 주민 중 일부는 학교에서 200여 걸음 떨어진 '당팟'에서, 나머지는 반대 방향으로 얼마지 않은 거리의 '너븐숭이'에서. 이미 버스에서 내려 봤던 '당팟'까지 다시 걸음을 세며 갔다가 초교로 돌아와 '너븐숭이 4.3유적지'로 갔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달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달살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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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븐숭이 4.3유적지'에서 제일 먼저 본 것은 현기영의 <순이삼촌> 문학비. 4.3사건을 알린 최초의 소설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당시에 어른들과 함께 죽임 당한 어린 아이의 진짜 무덤이 있었다. 그런 무덤이 하나가 아니란 사실을 잠시 후에 알게 됐다. 시체처럼 바닥에 누인 비석에 새겨진 <순이삼촌> 속 구절이 어떤 의미인 지, 걸어온 길을 되짚으며 체감했다.  

'교문 밖에 맞바로 잇닿은 일주도로에 내몰린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며 불며 살려달라고... 가면 죽는 줄 번연히 알면서 어떻게 제 발로 서서 걸어가겠는가...'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달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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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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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불과 70년 전, 아직 피해자나 희생자 가족이 살아 있고 죽은 자들은 유골로서 증언하는. 하지만 4.3의 실체는 최근에서야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함덕서우봉해변까지 걸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이 되레 허상 같았다. 해변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지난 번 강호와 함께라 입장이 불가했던 용암동굴 만장굴을 향했다. 

'한때는 피바다, 또 오래 전 어느 때는 불바다...'

차 안에서 이런 생각을 하니 한숨만 나왔다. 내 삶이 찰나임이 실감나서 두렵기도 막막하기도 했고. 20만 년 전 혹은 8000년 전에 생겼다는 용암동굴(2016년, 만장굴이 비교적 최근에 생성됐다는 새로운 학설이 나왔다) 만장굴 속을 걷는 내내 가능한 걸음을 빨리했다. 갑자기 우루룽,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리고 동굴 천장에서 돌이 쏟아지는 상상 때문에.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달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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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만장굴의 발견도 천장이 무너지면서 통로가 드러났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내부에는 낙반이라 칭하는, 오래 전 천장에서 떨어졌다는 암석이 곳곳에 쌓여져 있다. 다시금 굴의 어느 부분이 변형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더군다나 살아 있는 땅과 숲과 연결되어 있는데. 십수 년 전인가. 서울 수락산에서 5톤 바위가 떨어져 시민 한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상상은 해도 진짜 일어날 거라 생각지 못한 일이 정말 일어났을 때의 충격.

새까맣고 차갑게 굳은 동굴 바닥. 바닥을 딛고 선 내 두 발이 선명히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희미해지는 것 같이도 보였다. 이럴 때 새삼 나는 나의 삶에 얼마나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지 체감한다. 하지만 그래봤자 순간이라는 자각도 든다. 제주를 여행하고 있기 때문일까. '삶이 대체 뭘까?' 하는 질문이 자꾸만 자꾸만 드는 요즘이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달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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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우리의 실시간 여행이 궁금하다면?
https://www.facebook.com/pg/travelforall.Myoungju
http://blog.daum.net/lifeis_ajourney

뺑소니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강호에게 휠체어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여행 중에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을 만나면 힘이 닿는 한 돕겠습니다. 이 여행이 끝나면 사람과 동물이 함께 쉬고 놀 수 있는 여행자 공간(게스트하우스)를 다시 열고자 합니다. 저희의 여행을, 동물들의 보다 행복한 삶을, 다시 열 게스트하우스에 초대받고 싶은 분은 '원고료'로 응원해주세요!



태그:#4.3운동, #제주4.3, #북촌초등학교, #순이삼촌, #제주에서 한달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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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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