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희애.

배우 김희애가 영화 <허스토리>로 관객과 만난다. 그가 맡은 극중 문정숙은 온갖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위안부 및 정신대 피해자들을 보듬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재판까지 진행한다. ⓒ YG엔터테인먼트


1980년대 청춘스타로 급부상 했던 배우 김희애의 최근 행보는 가히 주목할 만하다. 종종 여전한 추억의 대상이자 아름다운 여성 캐릭터 안에 머물기도 했지만 드라마 <밀회>에선 파격적이고도 주체적인 여성이었고, 이후 다양한 도전을 멈추지 않으며 대중 앞에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 자리매김을 제대로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오는 27일 개봉을 앞둔 영화 <허스토리>로 김희애는 다시 보폭을 넓혔다. 1992년부터 6년 간 위안부 및 정신대 피해자들을 이끌고 일본 정부를 법정에 세운 사건, 실제 '관부재판'을 이끈 문정숙 대표 역이었다. 부산 지역 여성 사업가로 재산을 탕진하다시피 하면서 할머니 10명을 도운 인물. 김희애는 "너무 하고 싶었다"며 시나리오를 읽었던 당시 심경부터 전했다.

이어졌던 난관 

"할 것들이 많아 보였고 겁도 없이 참여했다. 뒷일은 생각도 못한 거지. 막상 시작하니 벽이 높았다. 제가 기존에 갖고 있던 것을 모두 버려야 할 것 같더라. 정말 다 지우고 신인처럼 임했다.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방법들은 다 시도해보려고 했다. 욕심 만큼 너무 하고 싶었기에 끝나고 난 뒤 후회는 남지 않더라."

김희애가 느꼈던 가장 높은 벽은 언어 문제였다. 설정 상 완벽한 부산사투리와 일본어를 써야 했던 그는 촬영 직전까지 지도 선생과 매일 접촉하고, 심지어 부산에 내려가 시장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는 등 다각도로 준비했다. 

"도저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사실 사투리를 아예 안하는 설정도 생각했다. 감정만 잘 전달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하고, 제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보니 사투리가 없으면 도저히 안 되겠더라. 사투리가 일단 돼야 연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통의 영화였으면 어느 정도 연습하고, 망신 좀 당하고 말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떤 배우가 작품마다 최선을 다 하지 않겠나. 저 역시 최선을 다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

 영화 '허스토리'

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 (주)NEW


사투리 다음은 인물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김희애가 연기한 문정숙 캐릭터는 김문숙 정신대문제 대책 부산협의회 이사장을 참고로 했다. "실제로 뵙진 못했다"며 김희애는 "그 분의 사진이나 관련 기사 등을 참고했고, 사실 시나리오 한 권만으로도 벅찼다"고 말했다. 성공한 지역 사업가가 사람들의 눈총과 손가락질을 받으면서까지 피해자들을 보듬고 재판을 이어 나가는 모습은 김희애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충분히 공감이 갔다. 문정숙은 처음부터 사명감과 정의감에 불타던 사람은 아니지 않나. 도의적으로 하다가 시간이 지나며 마음이 강해진 것이지. 그렇게 한 사람이 변해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에 여성 사업가가 목소리를 낸다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기생 관광을 했다며 영업정지도 당하는데 그만큼 자신의 일상을 산 사람이다. 앞만 보고 달린 사람이지. 그러다 우연하게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변하게 된다. 

사람이란 게 결국 한 끗 차이 아닐까. 처음부터 좋거나 나쁜 사람은 없고 어떤 순간에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정숙이라는 인물도 60세가 넘어서 재산을 다 털어 넣은 건데 대사 중에도 '부끄러버서!'라는 말을 하잖나. 연출하신 민규동 감독님도 김학순 할머님의 최초 증언 이후 부끄러운 마음을 계속 갖고 있었고 이번 영화를 만드셨다. 저로선 진심을 다해 마음을 다해 작품에 참여하려 했다."  

 배우 김희애.

ⓒ YG엔터테인먼트


연대의 힘

김희애 역시 <허스토리>를 하면서 느낀 자신만의 부끄러움을 고백했다. 관부재판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며 그는 "늦게나마 알게 된 게 너무 부끄러웠고, 조금이나마 진심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고 말을 이었다.

"그 끔찍한 뉴스를 애써 보지 못했다. 할머님들의 아픔과 이야기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알지도 못했고... 그저 저는 이 작품에 피해를 안 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함께 참여하신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선생님들은 역시 연륜이 있으셔서 현장에서 순수하게 임하시는 것 같더라. 한 신도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 경력이 20년이든 50년이든 정말 초심을 잃지 않으시는구나. 나도 그런 배우가 돼야한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여성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상처 입고 피해 입은 분들이 결국 재판에 참여하고 할 말을 다 하시는 인간적 승리가 있는 영화라고 봤다. 얼마나 한이 맺혔겠나. 그리고 함께 행동하셨다. 함께 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극중 문정숙은 재판 과정에서 일본인들의 분노, 한국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지치지 않는다. 자연인 김희애로서는 어떨까. 고등학생 때 데뷔한 이후 톱스타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 삶의 동력을 물었다. "그 얘길 하려면 몇 날 밤을 새야 하는데..."라며 그가 웃어보였다. 

"순간순간 감사하려 한다. 또 좋은 자극이든 나쁜 자극이든 자극을 느끼려 한다. 최근 어떤 영화를 보면서도 와, 저런 연기를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가 여전히 현역임에 새삼 감사하고 있다. 물론 데뷔할 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시스템이 돼 있지 않아서 주먹구구식으로 일했지. 보호받지 못했고, 그땐 일의 소중함도 잘 몰랐다. 이렇게 지금까지 일을 할 줄 몰랐지. 

운명인 것 같다. 나문희 선생님 영화를 보면서도 느꼈고, 현장에서 또래 배우들과 선생님들이 현역으로 뛰시는 게 그렇게 반갑더라. 외국 배우들 중에서도 저와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이 여전히 활동하는 걸 보면 참 힘이 된다."

 배우 김희애.

ⓒ YG엔터테인먼트


화려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비결은 소박했다. "제 삶이 참 심플하다"며 김희애는 "매일 스스로에게 주는 과제가 있는데 그걸 하나씩 이뤄가고 늘려가고 있다. 그게 어쩌면 비결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루살이 인생처럼 말이지(웃음). 그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10년이 된다. 연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제 일상은 평범하게 보낸다. 배우라고 산 속에 혹은 매일 파티장에만 있을 수 없잖나. 평범한 제 일상을 잘 살아가다 기회가 오면 연기하고,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게 제가 계속 연기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과제를 해내면 스스로 칭찬한다! 부정적이기 보단 긍정적이기를 택한다. 일부러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 한다."


김희애 허스토리 관부재판 예수정 김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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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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