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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미디어나 생활 속에서 궁금한 성이야기를 프리랜서 성교육 강사 심에스더씨에게 묻고 답하는 연재입니다. [편집자말]
잠들기 전, 느닷없는 열두 살 진이(가명)의 질문.

"엄마, 브래지어는 찌찌를 가릴 때 쓰는 거야?"
"응? 음... 아마도 그렇겠지. (왜 찌찌를 가리는 거냐고 물으면 뭐라고 하지? 남자들은 안 가리는데... 생각하면서 물었다) 그건 왜?"
"우리 체육 선생님 옷이 얇아서 찌찌가 보였거든."
"여자야?(물으면서도 궁금했다, 왜 여자라고 물었을까? 요즘 노브라가 추세라고는 들었다만 그게 진짜라면 놀랄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남자."
"(휴) 아하! 너희들이 선생님 놀렸구나?"
"아니, 그런 거 아냐. 그냥 수업 시간 지나고 애들이 하는 말 들었어."

브래지어를 하기로 선택했다면 몸에 최대한 부담이 없는, 다양한 브래지어의 종류를 알려주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브래지어를 하기로 선택했다면 몸에 최대한 부담이 없는, 다양한 브래지어의 종류를 알려주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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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나는 브래지어를 '찌찌가리개'라고 부른다. 딸 둘을 키우는 남자선배가 그렇게 부르는 것을 듣고 나도 따라 쓴 거다. 브래지어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표현이라 그런지, 아이들도 그렇게 부르는 걸 재밌어 한다. 그리고 내 '찌찌가리개'를 볼 때마다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유일하게 우리집에서 '찌찌가리개'를 하는 여자니까.

"그러지 마라, 너희들도 하게 돼 있다."
"언제? 어른이 되면?"
"너희들이 생각하는 어른이 몇 살인데?"
"스무살?"
"글쎄, 그 전에 하지 않을까?"

그제야 중학교 시절(남녀공학이었다), 가슴 동여매기 사건이 떠올랐다. 체육 시간이 되면 몇몇 아이들은 브래지어를 했음에도 아기 천기저귀 같은 천을 가슴에 칭칭 감아댔다. 달리기를 할 때마다 출렁거리는 느낌이 싫었던 거다. 외모에 한참 민감할 나이, 그땐 그랬다.

그랬는데, 요즘은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 않나. 내가 편하면 장땡, "이상하게 보는 너희들이 더 이상하다"며 노브라를 외치는 시대지 않나. 이런 때에 "너희들도 좀 더 크면 브래지어를 하게 돼 있다"라고 말하는 게 맞았을까? 아닐 수도 있잖나. 사실 집에서는 나도 안 하는데.

"잘 때 브래지어를 왜 해?"라며 친구가 처음 노브라를 권했을 때, '그걸 어떻게' 하나 싶었다. 지금은 '그걸 어떻게' 하고 살았나 싶다. 그 편안함과 자유로움의 차이는 안 해보면 모른다. 그런데, 아이에게 브래지어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게 맞는 걸까? 무려 30년 전에 내가 배운 대로? 말하면서도 불편하고 궁색했다.

- 심샘, 브래지어가 '찌찌를 가리기 위한 거'라는 제 어설픈 설명이 맞나요?
"질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브래지어는 기본적으로는 여성의 가슴, 그 중에서도 젖꼭지(유두)를 가리기 위한 게 맞아요. 고대사회 여성들도 '아포대즘'이라 불리는 긴 천이나 가죽밴드로 가슴을 가리고 다녔다고 해요.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는 여성들의 허리가 개미처럼 가늘어야 아름답다고 해서 허리를 바짝 조여주는 코르셋이 등장했고, 그로부터 많은 변화를 거쳐 지금의 브래지어가 탄생했다고 해요.

브래지어의 오랜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브래지어는 '찌찌가리개'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에 좋지 않은 체형보정기능과 패션의 목적으로도 사용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가슴이 처지는 걸 최대한 늦추기 위해, 가슴보다 배가 더 나와 보일 때 착시효과(?)를 위해, 흔들거림을 방지하기 위해, 또 옷 밖으로 살짝, 혹은 과감하게 드러내려는 패션 아이템 등등으로요."

- 당황해서 제가 잘못 말했나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근데 사실 저는 아이가 "왜 찌찌를 가리는 거야?" 하고 물을까 봐, 더 긴장했어요. 뭐라고 답변해줘야 하나 고민스러웠거든요. 제가 클 때만 해도 브래지어는 꼭 해야하는 걸로 교육 받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거 같거든요.
"그러게 말이에요.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일들이 자꾸 뒤통수를 치네요. 하지만 덕분에 자유를 되찾기도 하잖아요. 우리는 왜 '찌찌'를 꼭 가려야 한다고 생각해 왔을까요? 특히 여성의 찌찌, 젖가슴은 반드시 가려야 한다는 생각이 큰 거 같아요.

여성의 가슴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크고, 튀어나와 있고 말랑거리고 흔들거리기 때문에 가려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조금만 드러나도 다치기 쉽기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가려야하는 걸까요? 크고 튀어나온 가슴을 가진 남성도 있고 작고 납작한 가슴을 가진 여성도 있는데... 여성은 꼭 브래지어를 착용해야 한다니, 오히려 부자연스럽지 않나요? 가슴은 모양과 움직임이 어떻든 가슴일 뿐인데요.

게다가 코르셋처럼 브래지어도 오래 착용하면 숨 쉬기가 불편하고, 가슴에 땀이 차서 냄새가 나고 가려움증이 생길 수 있어요. 또 피가 잘 안 통해 유방암과 같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사들의 조언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런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가려야 하는 이유는 정말 뭘까요?"

- 최근 언론보도에서 노브라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그 논의의 핵심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느냐 아니냐'인 것 같아요.
"오옷, 앞에 질문에 이어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거예요! 누군가를 볼 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성적인 행동에 사용되는 물건', '섹스, 성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만 보는 시선을 '성적 대상화'라고 해요. 여성의 가슴은 '성적 대상화' 된 측면이 커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야한 느낌을 주는 신체부위', '섹스와 같은 성행위를 생각나게 하는 신체부위'로 여겨진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불편하고 답답할 때도 억지로 가려야만 했던 거죠. 두꺼운 옷을 입는 겨울엔 노브라도 비교적 괜찮지만 얇은 옷을 입는 계절에 노브라로 나갈라치면, 아후 보통 용기가 필요하지 않는 게 현실이에요. 하지만 여성의 가슴도 남성의 가슴처럼 '성적인 것'이 아닌 그냥 평범한 신체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된다면, 원하지 않을 때 언제든지 브라를 하지 않고도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겠죠. 다른 사람의 불편한 시선을 받을 필요 없이 자유롭게요."

- 자유로운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노브라를 권하긴 좀 어려워요. 초등학교 5, 6학년만 돼도 사실, 얇은 여름 옷을 입으면 찌찌가 드러나는 아이들이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가려야 한다'와 '그냥 둬라'는 생각이 수없이 충돌해요. 
"그 고민, 충분히 공감가는 걸요! 신체적 차이가 거의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조차 여아는 더욱 몸조심을 시키는 현실 속에서 당장 "가슴의 자유와 해방을" 외치며 아이들을 키우기가 어디 쉬운가요. 중요한 건 '무조건 당연히'가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 우리부터 스스로 묻고 고민하는 태도인 거 같아요. 브래지어도 마찬가지예요. 깊은 호흡과 인내심이 필요하겠지만 ^^;; 대화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브래지어의 용도를 알려주면 어떨까요?

30년 전에 배운 것처럼 '무조건 해야돼!'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브래지어를 바라보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브래지어를 하기로 선택했다면 몸에 최대한 부담이 없는, 다양한 브래지어의 종류를 알려주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또 밤에 자거나 집에 있을 때는 풀어놔도 괜찮다고 알려주고요. '가슴의 건강'을 위해서요."

중요한 건 '무조건 당연히'가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 우리부터 스스로 묻고 고민하는 태도인 거 같아요. 브래지어도 마찬가지에요.
 중요한 건 '무조건 당연히'가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 우리부터 스스로 묻고 고민하는 태도인 거 같아요. 브래지어도 마찬가지에요.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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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외모에 한참 민감할 나이에는, 친구들이 놀릴까 봐 감추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 같아요. 놀리는 친구를 향해 써먹을 수 있는 적절한 말이 있을까요? 미리 알려주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요? '야, 나도 너 눈, 코, 입 보여, 팔도 다리도 다 보여! 찌찌도 눈코입, 팔 다리처럼 몸의 일부인데 그게 왜 이상해? 찌찌를 이상하게 보는 게 더 이상한 거 같은데? 혹시 뭐 야한 생각해?' 이러면 아마 놀리던 아이도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지 않을까요?"

- 심샘 말을 듣고보니, 내 몸을 숨기거나 피할 게 아니라 놀리는 아이에게 당당히 '너의 그런 말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걸 알려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남자아이를 둔 부모라면, 그런 부분에 있어 교육을 해야할 것 같고요.
"그렇죠. 요즘 뉴스에 나왔던 언니들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브래지어를 벗은 맨가슴으로 거리에 나와 "여성의 가슴은 성적인 것이 아니에요"라고 외쳤던 언니, 누나들 말이에요. 부모가 이상하다고 여길 게 아니라, 이런 사실과 배경을 이야기하고 아이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게 포인트에요."

[관련기사 : "찌찌가 별거냐" 내가 페북 앞에서 옷 벗은 이유]




태그:#성교육, #심에스더, #노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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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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