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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지중해와 가까운 아를(Arles)은 인구 5만명이 사는 작은 도시이다. 내가 찾았던 시기의 아를은 어느 곳이나 한산하고 좀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도시가 조용하고 사랑스러워서 좋았다. 아를의 가는 곳마다 흔적을 만나게 되는 역사적 인물,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도 이 도시의 감성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나는 고흐가 아를에서 살다간 자취를 찾아보기 위해 반 고흐 광장이라는 뜻의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를 찾아갔다. 이곳도 고흐가 살던 당시와 별반 변했을 것 같지 않은 작은 골목길 안에 숨어 있었다. 나는 아를의 골목길을 돌고 돌아 에스파스 반 고흐 앞에 서게 되었다.

좁은 골목길을 찾아가다 보면 육중한 외관의 에스파스 반 고흐 입구를 만난다.
▲ 에스파스 반 고흐 입구. 좁은 골목길을 찾아가다 보면 육중한 외관의 에스파스 반 고흐 입구를 만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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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스 반 고흐는 고흐가 살던 시대에 요양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옛 요양원은 전혀 요양원 같지 않은 육중한 외관에 큰 대문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요양원 같은 건물 이미지를 가지고 찾아갔다가는 그 입구를 찾기가 헷갈리는 곳이다.

이곳은 한때 빈센트 반 고흐가 입원했던 아를의 요양원이었다. 고흐가 입원했던 요양원은 아를 시의 공공건물로 이용되다가 에스파스 반 고흐로 다시 복원되었다. 현재는 리모델링을 거쳐 고흐가 입원했던 당시와 똑같이 복원되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에스파스 반 고흐 안에서는 고흐의 흔적을 소재로 만든 기념품들을 만나게 된다.
▲ 에스파스 반 고흐. 에스파스 반 고흐 안에서는 고흐의 흔적을 소재로 만든 기념품들을 만나게 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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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 보니, 에스파스 반 고흐는 아를의 학생들이 이용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도 운영되고 있었다. 2층 난간에 모여 있는 학생들은 이곳의 미술 수업에 초대되어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밝게 웃고 있는 어린 학생들은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모여있지 않고 자유롭게 벽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참으로 편안해 보인다.

사각형 모양의 요양원 내부 정원에는 고흐가 붓으로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과거 요양원의 정원에는 1888년에 고흐가 그린 '아를 요양원의 정원(Le jardin de la maison de sante)' 그림이 정원 앞에 서 있었다. 고흐가 그린 그림을 패널로 만들어 세워놓고 여행자로 하여금 그때를 돌아보게 한 아이디어는 다시 보아도 신선하다.

요양원의 붉은 지붕과 노란 색 기둥들이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 에스파스 반 고흐 전경. 요양원의 붉은 지붕과 노란 색 기둥들이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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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를에 오기 전, 고흐가 아를에서 남긴 그림들을 찾아보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사전에 작품 설명을 읽어본 후 만나는 그림, 그리고 실제 그림 속의 현장은 더욱 눈 속에 깊이 들어왔다. 백여 년 전의 공간을 마주하고 그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묘한 착각을 일으키는 공간이다.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아를에 도착한 후 동생 테오 반 고흐(Théodore Van Gogh)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이곳은 너무도 아름답구나!"라고 했다. 아를의 선명한 빛에 반한 화가 고흐는 생전의 작품 3백여 점 중 거의 2/3에 해당하는 명작들을 이곳 아를에서 쏟아냈다.

그림 속 정원과 현실의 정원은 전혀 다름이 없어 놀랍기만 하다.
▲ 요양원 정원. 그림 속 정원과 현실의 정원은 전혀 다름이 없어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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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흐의 그림 속 정원과 실재하는 정원의 모습을 비교해 보았다. 정원 입구 왼편에 선 커다란 올리브 나무와 정원의 꽃, 병원의 노란 벽, 붉은색 기와지붕의 현실적 모습은 그림 속의 모습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나무와 집들은 고흐가 끊임없이 화폭에 옮겼던 대상들인데 이 정원 안과 밖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흐의 정원 그림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정원, 고흐가 남긴 정원은 나무와 꽃들로 가득 차 있고 일견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무언가 허전하고 외로워 보인다. 고흐가 정신치료를 받았던 요양원이었기 때문인가? 철저하게 혼자였던 고흐의 일생처럼 외로움이 묻어나는 것 같다. 이 정원 앞에 홀로 앉아 그림을 그렸을 외로운 고흐의 모습이 머리 속에서 그려졌다.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이곳에 강제 수용되었다. 고흐도 병상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이 풍경을 보고 요양을 취했을 것이다. 고흐는 정원의 꽃과 나무를 보면서 마음을 다스렸을 것이다. 어쩌면 이 정원을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당시가 고흐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리브 나무와 꽃들이 똑같이 복원되어 있어 묘한 감상을 느끼게 된다.
▲ 요양원 정원의 꽃들. 올리브 나무와 꽃들이 똑같이 복원되어 있어 묘한 감상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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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의 정취를 한껏 품은 정원은 아름다웠다. 19세기 정신병원의 정원이 이렇게 잘 꾸며져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바쁠 것 없는 발길을 쉬면서 한참 동안 휴식을 취했다.

나는 괜히 쓸쓸해진 마음을 안고 에스파스 반 고흐 밖으로 나왔다. 다시 아를의 운치 있는 골목길 안에 들어선 나는 고흐가 서성이던 흔적들을 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고흐는 1888년부터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를에 머물며 '별이 빛나는 밤', '프로방스 시골길의 하늘 풍경' 등 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나는 고스란히 남은 그 명화의 흔적들을 찾아 다시 아를의 골목길을 굽이굽이 걸었다.

광장 주변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카페의 사람들. 광장 주변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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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발길을 멈춘 곳은 고흐의 명작 중에서도 가장 사랑 받는 명작이 그려졌던 포럼광장(Place du Forum)이었다. 아를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지만 도착해서 보니 아주 아담하게 사랑스러운 광장이었다. 광장 주변에는 카페들이 모여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야외 테라스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를의 번화한 중심지이지만 아담하게 아름다운 곳이다.
▲ 포럼광장 아를의 번화한 중심지이지만 아담하게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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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럼광장에서 고흐는 '포럼광장의 카페 테라스(Café Terrace, Place du Forum)'라는 명작을 남겼다. 누가 보아도 '아! 이 그림'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그 그림이다. 고흐가 그린 그림의 배경이 된 카페는 '반고흐 카페'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고흐가 아를에 머무를 때 그린 이 그림의 모사품이 카페 테라스 앞에 전시되어 있었다. 카페의 차양과 벽면은 지금도 레몬 빛 노란색으로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1888년 고흐가 아를에 머무를 때 그린 이 노란색 카페는 지금도 그때의 모습 그대로 손님을 맞고 있었다. 나는 고흐가 그린 그림 속 카페 안으로 들어와 커피 한잔을 시켰다. 목이 매우 말랐지만 나는 시원한 물 대신 커피를 시켰다. 왠지 이 카페에서는 커피를 주문해야만 할 것 같았다.

노란 차양과 노란 벽면이 그림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 아를의 번화한 중심지이지만 아담하게 아름다운 곳이다. 노란 차양과 노란 벽면이 그림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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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페 테라스를 그리던 무렵부터 고흐는 밤 중에 작업하기를 즐겼다. 나는 카페 앞에 전시된 그림 앞으로 걸어가서 다시 그 그림을 보았다. 카페의 배경은 밤인데도 신기하게 검은 색은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게 눈에 띄었다. 고흐는 야외카페의 밤 풍경을 그림에 담으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과 그의 격정적인 내면세계를 자신의 색상을 통해 드러냈던 것이다.

이 그림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레몬 빛깔에 가까운 노란색으로 카페의 차양을 채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게 앞 가스등에서 퍼져 나온 황금색 불빛도 사람들과 광장의 주변 바닥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진한 노란색의 환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직접 이렇게 이야기했다.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그가 남긴 그림 속에서 짙은 파란색과 진한 노란색은 또한 강렬하게 대비되고 있었다. 고흐는 또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카페 테라스는 고흐에게 감정적으로 강하게 애착을 남겼던 풍경이었던 같다. 고흐는 눈앞에 있는 카페 테라스를 똑같이 재현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주관에 따라 색채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모습들이 편안하다.
▲ 고흐 카페의 사람들.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모습들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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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한 잔 마시고 다시 바라본 '포럼광장의 카페 테라스'. 노란 벽면과 노천 카페 차양이 마치 복사한 듯 실제 그림 그대로였다. 주관적인 색채를 통해 표현된 고흐의 감정과 함께 노란 카페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에 직접적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이 그림을 실감나게 느끼려면 그림 속 배경과 같이 밤이 되어야 하겠지만 내가 카페 안에 앉아있는 시간은 해가 아직 높이 떠 있는 오후 시간이었다. 카페 테라스 안에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 옆에는 세상 무심한 듯 홀로 편하게 앉아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홀로 온 그가 아니었으면 나의 이 고흐 카페여행은 완벽하게 적적할 뻔 했다.

나는 카페에 홀로 앉아있던 프랑스 친구에게 가볍게 말을 걸어보았다.

"그림에서 아름답게 채색된 이 노란색. 그림의 노란색과 카페의 노란색이 신기할 정도로 똑같네요."

아를에 사는 것 같은 이 친구는 한참 커피 마시며 감상에 빠져 있던 나의 아름다운 분위기를 보기 좋게 깨주었다.

"그림 속의 노란색은 고흐가 저녁에 야광에서 받은 느낌을 자의적으로 재해석한 색이에요. 원래 카페의 벽면과 차양은 노란색이 아니었어요. 1990년대에 복원공사를 하면서 고흐의 그림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서 카페 외관을 그림과 똑같은 노란 색으로 칠한 거예요."

아! 그렇다. 내가 추상적으로 읊조렸던 고흐의 상상 속의 색!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예술과 역사의 매력은 상상 속에 품어야 하는 것이었다. 굳이 고흐가 섰던 광장에 와서 노란색의 현장을 확인하고 있는 내가 괜히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커피는 고흐 카페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맛이 썼다. 현실세계를 떠나 고통 속의 고흐 눈에 나타났던 상상의 세계가 어떤 것이었을까를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대도 고흐의 그림을 본 적이 있겠지요?

나는 다시 아를의 아름다운 골목 속으로 들어갔다.
▲ 아를의 거리. 나는 다시 아를의 아름다운 골목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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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태그:#프랑스, #프랑스여행, #아를, #에스파스반고흐, #고흐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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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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