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부터 대전 연극계를 지킨 원로들인 배우 이종국(좌측)과 연출가 진규태(우측)가 21일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토크 콘서트'에 출연해 자신들의 연극인생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사회는 대전 '극단 새벽'의 이여진 배우(우측)가 진행했다.

60년대부터 대전 연극계를 지킨 원로들인 배우 이종국(좌측)과 연출가 진규태(우측)가 21일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토크 콘서트'에 출연해 자신들의 연극인생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사회는 대전 '극단 새벽'의 이여진 배우(우측)가 진행했다. ⓒ 조우성


대전연극계의 쌍두마차, 배우 이종국과 연출자 진규태

대전에서 개최되고 있는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토크 콘서트'의 6번째 초대손님으로 지난 21일에는 대전 연극계 발전에 큰 공헌을 한 배우 이종국과 연출가 진규태 두 사람이 나왔다. 두 사람은 1983년도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함께 연극작업을 많이 한 사이로, 진규태 연출자가 이종국 배우보다 3살 더 많은 형님뻘이다.

대전연극계를 위해 노력했던 원로들의 토크 콘서트를 축하해 주기 위해 후배 배우들이 방청객으로 많이 참석했었다. 사회는 대전의 '극단 새벽'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여진 배우가 맡아 진행하였으며, 아래는 토크 콘서트에서 이야기되었던 내용들을 토대로 편집한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떤 선배가 각 반을 돌아다니며 연극과에서 오디션을 본다고 홍보한 적이 있었다. 이종국은 당시 연극이 뭔지 전혀 몰랐지만  웬지 당기는 느낌이 들어 연극과 오디션에 냉큼 응시했다. 작품에 나오는 등장 인물이 다섯 명인데, 오디션 보러 온 사람은 겨우 네 사람. 그는 떨어질 염려 없이 그렇게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연극을 하면서 "두 여자를 울렸다"고 말하자 관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토크 콘서트가 진행되는 야외무대 근처에는 초대손님들을 소개하는 배너사진이 세워져 있다. 사진은 배우 이종국(좌측)과 연출가 진규태(우측)의 약력을 소개하는 배너사진이다.

토크 콘서트가 진행되는 야외무대 근처에는 초대손님들을 소개하는 배너사진이 세워져 있다. 사진은 배우 이종국(좌측)과 연출가 진규태(우측)의 약력을 소개하는 배너사진이다. ⓒ 연극제 집행위원회


나는 "두 여자를 울린 배우", 연극은 "나의 동반자"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때 제가 연극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님이 '그래, 니가 하고 싶은 거 해야지' 이렇게 말씀을 하셨지만 속으로는 정말 피눈물을 흘리셨을 겁니다. 결혼을 해서는 저 때문에 아내가 희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극 때문에 어머니와 아내 두 여자를 울린 남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연출가 진규태는 대학 진학을 위해 재수를 하던 중 어떤 사회단체에서 문학부장을 맡으면서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연극한 것을 후회했던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종국씨는 후회가 없다고 말했지만 저는 후회가 엄청 많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은 대학교 졸업해서 직장에 다니는데, 저는 가장의 역할을 내팽겨치고 연극에만 몰두하다 보니 가정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게 사실 후회가 많이 됩니다."

그렇게 후회감이 들수록 그는 더 연극에 집중했다.

"뭐 잠시 다른 일도 해 보기도 했는데, 그래도 연극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게 안 돼요. 연극판에서 도망가야 되는데,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래서 황폐한 대전 연극판을 한번 발전시켜 보려고 제가 갖고 있는 재주와 지식을 다 쏟아 부었어요, 그렇게 연극에만 평생 매달렸어요. 저는 그냥 연극하고 같이 산거죠. 연극이 제 동반자예요."  

 대전연극계의 원로들이 출연한 이번 행사에 연극계 후배들이 응원차 많이 왔었다. 토크 콘서트가 끝난 후 가족들과 후배, 방청객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대전연극계의 원로들이 출연한 이번 행사에 연극계 후배들이 응원차 많이 왔었다. 토크 콘서트가 끝난 후 가족들과 후배, 방청객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 조우성


배우 이종국, 말더듬 극복하고 방송국 성우로 활동

이종국 배우는 젊은 연극인이 큰 무대에 도전을 하려면 적어도 기본적인 소양과 화술,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중에서도 그는 발음과  화술,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말은 연극과 영화, TV의 첫걸음입니다. 젊은 친구들은 기본적인 것을 갖추지 않은 채 뭘 빨리 해보려고 서울로 많이 올라가는데, 그건 서울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됩니다. 기본적인 훈련은 해 놓고 도전을 해야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만 해도 문방구에 못 갔어요. 제가 심한 언어장애, 말더듬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부분을 노력으로 극복을 하고, 79년부터 99년까지 거의 20년간 대전 MBC 성우로 있었습니다. 이건 정말 노력으로 언어장애를 극복한 겁니다. 배우가 되겠다, 더 좋은 연기자가 되겠다는 분들은 노력을 해서 기본적인 소양과 화술, 인성들을 갖춰야 합니다."

진규태 연출가는 자신의 연출 기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먼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 작품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를 연구합니다. 그 다음에 공연 후에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 한 두 개는 만들고, 그 후에 연기 동작에 들어가요. 음악은 박자와 쉼표가 있잖아요. 연극에서도 대사나 동작에서 리듬을 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정리가 되면 사실화, 극화 작업에 들어갑니다."

 대전연극협회는 지역 연극계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이종국 배우와 진규태 연출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두 사람의 사진에 사인을 받아 이를 영구보관할 계획이다. 사회자가 두 사람의 액자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회를 맡은 배우 이여진은 '극단 새벽'의 단원으로, '극단 새벽'은 이번 연극제에 '아버지 없는 아이'로 출품(7월 2일 공연)하였다.

대전연극협회는 지역 연극계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이종국 배우와 진규태 연출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두 사람의 사진에 사인을 받아 이를 영구보관할 계획이다. 사회자가 두 사람의 액자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회를 맡은 배우 이여진은 '극단 새벽'의 단원으로, '극단 새벽'은 이번 연극제에 '아버지 없는 아이'로 출품(7월 2일 공연)하였다. ⓒ 조우성


진규태 "연출은 눈물 한 대에 기쁨 두 접시"

그는 "이런 연출 작업들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피를 말리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연출 작업을 하다 보면 화날 때도, 짜증날 때도 있잖아요. 그때는 막걸리를 마셔야 돼요. 매일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해도 연출은 힘들어요. 이게 표시가 나는 것도 아니고, 고독한 작업이에요. 그래서 연출은 '눈물 한 대에 기쁨 두 접시'라는 말들을 해요."

배우 이영화와 마당극 연출의 대가 손진책도 이종국 배우의 서라벌 예대 동창이다. 어느 방청객이 이종국 배우에게 "대전보다 서울에서 활동하였으면 친구들처럼 많은 인기를 얻었을텐데, 혹 이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는지" 질문했다.

"이전에 손진택이 저를 서울로 데려 갈려고 대전에 몇 번이나 내려 왔었지만 제가 수락을 못했습니다. 99년도에 제가 예술부문에서 대전 문화상을 수상했는데, 그 때문에 '대전에 터를 잡고 연극 발전에 기여해야 되지 않나' 하는 그런 책무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대전을 떠나지 못하고 짤막한 드라마나 영화 정도에 출연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올 하반기부터는 저도 고생한 아내를 생각해서 본격적으로 영화나 TV 쪽을 한 번 노크해 보려고 합니다."

사회자가 "연출가로서 요즘 젊은 연극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말씀 부탁합니다"라는 말에 진규태 연출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야생화를 굉장히 좋아해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데, 잘 닦여진 길로 가면 야생화가 잘 안보여요. 수풀이 우거져 있고,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는 그런 길을 가야 야생화가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다닌 적이 거의 없는 길도 사람들이 자주 오가다 보면, 아무리 험한 산이라도 길이 생겨요. 그렇지만 요즘 후배들은 쉽게 갈 수 있는 길만 걷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워요. 조금 더 노력해서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어떤 걸 찾아내야 돼요. 그걸 못 찾고, '자기가 하는 게 최고다'라고 생각하면 발전이 없어요."

이종국 배우는 "무대의 꽃은 연극이라고 생각한다"며, "드라마나 영화보다 연극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는 카메라 앵글 속에 담아서 편집해서 작품이 딱 나오는데, 연극은 관객과 같이 호흡과 공감을 하고, 매 공연마다 감정선이 달라집니다. 연극은 TV나 영화처럼 카메라로 찍어놓고 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배우의 감정선이라는 부분은 늘 새로워집니다."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의 집행위원장인 복영한씨가 두 사람의 앨범사진에 사인을 받기 위해 서 있다.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의 집행위원장인 복영한씨가 두 사람의 앨범사진에 사인을 받기 위해 서 있다. ⓒ 조우성


"후배들이여 용기를 가지세요, 희망이 있습니다"

"연극이 아직도 어렵게 느껴지는가요"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진규태 연출가는 "평생을 가도 어려울 거예요. 그냥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거라면 쉬울 겁니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미화시켜서 고상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그런 작업들이 정말 어렵다"고 연출가의 고충을 털어 놓기도 했다.

이종국 배우는 "연극배우의 직업은 전 세계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나마 잘 나간다는 영국 같은 경우도 거의 90% 정도 지원이 안 되면 버텨나가기 힘든 상황이에요. 저희 같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죠"라며 한국 연극계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또 이종국 배우는 "하고 싶은데, 아직 출연하지 못한 작품이 딱 두 가지가 있습니다. 둘 다 나이든 노역배우 역으로 '리어왕'과 '황금 연못'이라는 작품입니다, 꼭 준비해서 공연을 하고 싶네요."라고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 했다. 

사회자가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하자, 배우 이종국은 이렇게 말했다. 

"용기를 가지세요.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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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종국 연출가 진규태 대한민국 연극제 손진책 극단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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