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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 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합의문 서명 마친 북-미 회담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 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케빈 림/스트레이츠 타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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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다. 판문점 선언과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빠르게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으며, 북한의 김정은은 활발한 정상외교를 통해 북한이 정상국가임을 국제 사회에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1년 전만 해도 있을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는 만큼 국내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다시금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새로운 상상을 하게 되었다. 북한을 통과해서 기차로 유럽을 가고, 개마고원 트레킹을 하는 등 대륙을 꿈꾸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이와 같은 상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분단의 미망에 사로잡혀 새롭게 찾아오는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들이다. 남북 정상이 평화를 논하고, 북미 정상이 관계 개선을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며,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마저 부정하고 있다.

그런 이들을 보고 있는 국민들의 입장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한반도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분단체제 종식을 추진하는 것도 모자라는 판에, 아직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위해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으니 답답할 수밖에.

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가운데 15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실에서 비상의총을 마친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현수막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 '잘못했습니다' 무릎꿇은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가운데 15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실에서 비상의총을 마친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현수막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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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6.13 지방선거의 결과는 그와 같은 현실에 대한 국민의 대답이었다. 아직도 새로운 시대를 읽지 못하고 오래된 편견에 갇혀 있는 보수 세력의 안일함에 대해 국민들이 내리는 준엄한 심판이었다.

그렇다면 보수 세력들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분단체제의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뿌리가 되는 북한에 대한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아직까지 빨갱이 하면 뿔난 도깨비를 상상하는 그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려줘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추천하고 싶은 도서가 있다. 오랫동안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던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가 쓴 <선을 넘어 생각하다>가 바로 그것이다.

북한은 붕괴되지 않는다

선을 넘어 생각한다
 선을 넘어 생각한다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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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가장 먼저 '북한 붕괴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국 흡수통일을 이야기하든, 통일대박을 이야기하든 보수 세력의 북한에 대한 인식의 바탕에는 북한 붕괴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 붕괴론이 보수 세력의 도그마, 즉 이성의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무조건 믿어야 하는 가치임을 지적하며 궁극적으로는 그 붕괴론이 틀렸음을 주장한다. 어떤 체제가 내적으로 붕괴되기 위해서는 그 체제가 규정하고 있는 가치와 기준이 무너졌을 때인데, 우리의 북한 붕괴론은 북한의 시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남한의 시각이기 때문이다.

남한의 경우 정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였다. 친일파를 숙청하지 않은 이승만과 군사정부는 자신들의 정통성을 위해 경제성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걸었으며, 그 이후의 민주정부는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간과한 민주주의의 회복을 가장 우선된 가치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경제성장도, 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정권의 자주성, 정통성이다. 그들은 분단 이후 남한과 달리 친일파를 척결했으며, 중소분쟁 당시에도 어느 국가의 일방적인 편을 들지 않고 등거리 외교를 통해 자주적으로 살아남았다.

민주주의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권이 유지된 이후에 지켜질 요소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이란 결국 이와 같은 자주성과 정통성을 이념화시켜 놓은 종교색 짙은 철학이다.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그 체제를 유지하는 정통성이 무너졌을 때입니다. 만약 북한이 경제성장을 정통성의 근거로 삼는 국가였다면 북한은 몇 번이나 무너졌을 것입니다.....북한의 정통성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항일 무장투쟁을 지도한 김일성 주석과 조선노동당 그리고 민국 등 외세에 맞서 자주성을 지키는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 21p

요컨대 붕괴론은 북한에 대한 잘못된 인식론에 근거한 것이다. 그것은 북한 역사의 궤적을 잘 모르는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생각이며,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는 지양되어야 할 생각들이다.

김정은은 미치광이 독재자?

가능성이 극히 낮은 북한 붕괴론. 그렇다면 우리는 현실로 다가온 북한을 어떻게 인식해야 될까? 저자는 이에 대해 우선 북한을 장악하고 있는 김정은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보수 세력들은 그를 단순히 미치광이 독재자라고 폄훼했지만 그를 정점으로 한 북한 권력 체제를 이해해야만 한반도 평화의 또 하나의 파트너인 북한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김정은의 목표가 중국 덩샤오핑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핵개발을 포기하고 미국과 화해를 도모하는 것은 이미 북한의 국가체제가 단단한 반열에 올랐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이후 김정은이 목표로 하는 것은 경제개발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정치가 안정되고 체제의 정통성이 학립되고 나면 경제발전을 추구합니다. 더구나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국가 정통성의 바탕을 만들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가의 물리적 안정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선군사상을 내놓는 등 정통성과 안보를 이미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경제를 살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 43p

이와 같은 김정은의 결정은 결코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우리는 북한을 항상 1인 독재국가라고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의 결정은 조선노동당과 함께 한다. 실제로 북한의 조선노동당은 많은 인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능력주의에 입각해 사람을 뽑는 만큼 구조 내 엘리트들의 반발도 적은 편이다.

보수언론들은 과거 장성택 처형을 가리키며 김정은이 패륜을 저지를 만큼 악독하고 무시무시한 독재자라고 보도했지만 저자가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장성택은 집단주의를 중요시하는 북한 체제에서 개인주의를 강조하며 자본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내부적으로 많은 반발을 샀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처형이 옳은가는 생각해볼 문제지만, 그것이 우리의 보수 세력들이 이야기하는 김정은 미치광이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정한 체제가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은 그 체제의 강점을 의미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장성택 처형은 그 같은 불편함을 수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약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다른 점이 생겼을 때 어느 누구를 불문하고 가차 없이 처단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명령 계통이 잘 서 있다는 것을 나름대로 과시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약한 국가라 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 52p

북한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두번째 정상회담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통일각 입구 양쪽에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가 도열해 있다.
▲ 회담 마치고 나오는 남북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두번째 정상회담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통일각 입구 양쪽에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가 도열해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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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저자는 북한을 알 수 있는 키워드로 북한 인권, 핵문제, 북중관계 등을 가감 없이 다룬다. 하나같이 어려운 문제들이지만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리고 어렵지 않은 예를 들어 독자들에게 설명해준다.

왜 북한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치적인지, 왜 트럼프 시대에 핵문제가 더 잘 풀릴 가능성이 높은지, 왜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지, 북한은 왜 미국인을 납치하는지 등등.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북한을 종잡을 수 없는 국가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릇된 편견일 뿐이다. 그의 눈에 비친 북한은 내적 논리가 나름대로 탄탄한, 다만 우리와 다른 기준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국가이다.

구한말, 우리 조상들은 달라진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 비극적인 역사를 맞이해야 했다. 자기 인식은 물론이요, 열강들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결과, 근대국가를 설립하지 못했고, 식민지 치하에서 2등 국민 취급을 받으며 희생을 강요받았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분단체제의 뿌리도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북한은 변할 것이며, 한반도, 동북아 정세도 급변할 것이다. 우리가 150여 년 전 오류를 또다시 범하지 않으려면 북한에 대한 편견을 벗어던져야 한다. 결국 모든 시작은 제대로 된 인식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부디 보수 세력들이 위 책을 읽고 국제 감각을 되찾기를 바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선을 넘어 생각한다 -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

박한식.강국진 지음, 부키(2018)


태그:#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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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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