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했던 신태용호의 러시아월드컵 여정이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해 7월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신태용 감독은 한국축구를 9회 연속 월드컵 본선무대로 이끌었고 본선 조별리그에서는 1승 2패 조 3위의 성적으로 마감했다. 비록 16강진출은 실패했지만 최종전에서 월드컵 우승국 독일을 2-0으로 격침시키는 기적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신태용 감독의 계약 기간은 월드컵 대회가 열리는 7월까지다.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하며 신 감독의 임기는 사실상 종료됐다. 한국축구는 이제 대표팀의 미래와 신 감독의 거취문제를 놓고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신태용 감독을 믿고 한번 더 기회를 줄 것인지, 아니면 다시 새로운 감독을 찾아야 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신태용이 사령탑으로서 보여준 업적과 공과, 냉정히 판단해야

신태용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보여준 업적과 공과에 대해서는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일단 월드컵 본선탈락 위기에 놓였던 위기의 한국축구를 이어받아 짧은 시간에 팀을 수습하고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뤄낸 것은 분명히 존중받아야 한다. 또한 월드컵에서 독일을 상대로 승리한 아시아팀은 한국이 사상 최초다. '월드컵 본선을 소화한 경험이 있는 국내 감독', '독일을 이겨본 유일한 감독'이라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국내파 감독으로서 신태용 감독의 경력에 독보적인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승우-문선민-조현우-김영권 같은 선수들의 재발견, 손흥민의 최전방 공격수 기용, 4-4-2 전술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모두 신태용 감독의 업적이다. 각급 대표팀을 아우르며 다양한 연령대의 선수들을 두루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나, 월드컵 본선을 치르며 축적된 신감독의 노하우를 성급히 포기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까울 수밖에 없다.

신태용 감독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서 팀을 이끌어왔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신 감독은 부임 직후 월드컵 본선 진출이 걸린 최종예선 단두대 매치를 치러야 했고 본선까지 지휘봉을 잡은 기간을 합쳐도 1년밖에 되지 않는다. 조편성에서는 독일, 멕시코, 스웨덴과 함께 3전 전패가 예상되던 죽음의 조에 걸렸고, 월드컵 개막 직전에는 권창훈-김민재-이근호-염기훈 등 핵심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차출 불가에 처하는 악재도 겹쳤다. 신 감독이 아니라 누가 왔더라도 16강행은 처음부터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구나 신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히딩크 복귀 파동 등으로 리더십에 큰 상처를 받으며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고독한 싸움을 해야 했다. 신 감독의 지난 1년의 여정을 16강 진출에 실패했다는 것만으로도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한국이 만든 '카잔의 기적'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김영권의 슛이 골로 인정되자 손흥민, 김영권, 장현수 등이 환호하고 있다.

▲ 한국이 만든 '카잔의 기적'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김영권의 슛이 골로 인정되자 손흥민, 김영권, 장현수 등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한편으로 신태용 축구가 보여준 한계 역시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신태용호의 월드컵 본선진출은 엄밀히 말해 2경기에서 승점 2점에 그치고도 상대 국가들의 혼전으로 인한 '어부지리'에 가까웠다. 월드컵 본선까지 주어진 1년이라는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하나의 팀'으로 색깔을 내기에 부족했던 시간도 아니었다. 하지만 신 감독은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 베스트 라인업과 플랜 A도 확정짓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태용 축구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히는 수비 조직력은 이번에도 중요한 순간마다 PK와 태클 실수로 실점을 헌납하며 발목을 잡았다.

또한 신 감독 본인이 여론의 신뢰를 잃는 데는 말만 앞서는 데 비하여 실속이 없는 언행과도 무관하지 않다. '트릭' 발언 논란에서 보듯 신감 독은 오히려 여론과 팀분위기를 자극하는 부적절한 언행이 많았고, 상대국에 대한 전력 유출에만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다가 오히려 안정적인 전력 담금질을 할수 있는 기회조차 놓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월드컵 준비 과정부터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무리한 체력훈련과 평가전 일정 병행으로 오히려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와 부상 속출을 부채질했다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실제로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은 체력훈련의 효과를 거의 보지 못했고 멕시코와 스웨덴전에서 모두 선수들의 체력이 상대보다 먼저 방전되는 약점을 노출했다.

경험 많은 스페인 출신의 외국인 코치들을 영입했음에도 이들에 대한 활용도와 소통에서는 의문부호가 붙었다. 4년전 브라질 대회에서 정작 월드컵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이 위기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연이어 보였는데도 별다른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 김남일-차두리 같이 지도자 경력이 부족한 코치들의 역할에서 보듯 전반적으로 이름값에 치우친 코칭스태프의 경험과 전문성 부족이라는 약점이 두드러졌다.

16강의 승부처였던 스웨덴과 멕시코전에서 신 감독의 전술적 운영은 패착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공격력이 떨어지고 스피드가 느린 스웨덴을 상대로 지레 겁을 먹고 소극적인 경기운영을 하다가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해보지 못하면서 패했고, 멕시코전에서도 잘 싸우다가 수비 실수와 체력 저하로 무너지는 패턴이 반복됐다. 지나치게 변칙과 맞춤형 전술에만 집착하다가 우리가 가진 장점을 제대로 활용해보지도 못하고 무너진 게 아쉬웠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독일전에서는 기성용-박주호-황희찬 등이 대거 빠지고 문선민, 윤영선, 홍철 등 오히려 플랜 B에 가까운 선수들이 나섰음에도 가장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것은 다시 말해 신 감독의 플랜A가 그동안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증거였다. 여러모로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를 감당하기에는 신 감독의 경험과 역량이 아직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대회였다.

문제는 신 감독이 물러나더라도 더 나은 대안이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축구팬들은 대부분 검증된 세계적인 명장을 원한다. 그러나 축구팬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명장들은 대부분 몸값이 비싸고 그들 기준으로 변방에 불과한 한국 감독직에 큰 관심이 없다. 4년 전의 시행착오처럼 슈틸리케 같이 고만고만한 경력에 '무늬만 외국인 감독'을 데려올 바에는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국내파 지도자로 눈길을 돌리면 현재 재야에 머물고 있는 최용수 전 장쑤 쑤닝 감독, 황선홍 전 FC 서울 감독 등이 후보가 될 수 있다. U23 대표팀을 맡고 있는 김학범 감독이 A대표팀을 겸임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신태용 감독보다 딱히 더 낫다고 할 만한 구체적인 근거는 부족하다. 국제무대에 대한 경험부족 등 단점은 비슷한 데다 최근까지 클럽팀에서 보여준 성적을 봐도 하나같이 신통치 않았다.

다가오는 아시안컵, 선수 파악한 신태용 체제로 갈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변수는 아시안컵이다. 월드컵이 끝나고 불과 반 년 뒤인 2019년 1월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대회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내년 1월 5일부터 2월 1일까지 열린다. 현실적으로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며 또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한국축구는 1960년 이후 반 세기가 넘도록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올라보지 못했다. 4년 전 호주 대회에서는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2004년의 본프레레호가 2011년의 조광래호, 2015년의 슈틸리케호 모두 새로우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치른 첫 대회가 바로 아시안컵이었다. 그동안 감독교체 이후 선수 파악과 실험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정작 우승 가능성이 높은 아시안컵에서는 번번이 최상의 전력을 다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현재로서는 이미 각급 대표팀을 두루 거치며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 체제로 아시안컵까지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아시안컵 성적에 따라 차기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신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길 수 있는지 재신임을 묻는 무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신태용 감독 본인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월드컵을 치르는 대표팀 감독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게 된다. 신 감독도 지난 1년간 대표팀을 이끌며 여론의 비난과 각종 구설수로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겪었다. 지난 독일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 감독의 리더십과 팀 운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계약 연장을 하더라도 아시안컵 성적에 따라 또다시 6개월짜리 단명 감독이 될 수도 있는 위험부담을 굳이 신 감독이 스스로 감수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한국축구 대표팀 역대 감독을 통틀어 월드컵 본선이 끝나고도 지휘봉을 유지한 사례는 아직 전무하다. 완전한 성공도, 완전한 실패도 아닌 애매한 성적으로 월드컵을 마감한 신태용 감독이 다시 한번 한국축구의 4년 뒤를 이끌 선장이 될수 있을지, 신태용이 아니라면 누가 한국축구의 또 다른 구원자가 될 것인지 신중한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월드컵] 생각에 잠긴 신태용 감독 (니즈니노브고로드=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1차전 스웨덴전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경기장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생각에 잠겨있다. 2018.6.17

▲ 생각에 잠긴 신태용 감독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1차전 스웨덴전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경기장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생각에 잠겨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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