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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경북도지사 당선인.
 이철우 경북도지사 당선인.
ⓒ 이철우 경북도지사 인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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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이철우 경북지사 당선인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경북'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일면 이번 지방 선거에서 많은 후보들이 내세운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주장들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련 수당을 지급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온 지금까지의 정책만으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물론 출생율의 문제도 여타 사회문제와 같이 접근 관점과 방향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고 돈을 주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철우 당선인은 잘못된 번지수를 짚고 있는 것 같다. 그는 "과거 (박 전 대통령이) 새마을 정신으로 국민을 잘살게 했듯이, 젊은층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범국민 운동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더 이상 당연한 인생의 선택지로서 결혼으로 떠밀려 가고 싶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주겠노라고 공표하고 말았다. 결혼은 정말로 의무이자 해결책인가?

그는 "물론 양육 여건이 꾸려져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이철우 당선인이 생각하는 양육 여건은 무엇일까? 그는 청년과 노인 간의 관계가 원만하게 되는 것 역시 지방 소멸을 막는 해결책이 된다고 주장하며 마을 어른들이 젊은 부부가 키우는 아이 양육을 돕도록 하고 수당을 주는 것도 하나의 대책이 되리라고 짚었다. 이른바 "이웃사촌 복지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이웃사촌 복지공동체'란 무엇일까? 이는 산업화 이전의, 폐쇄적이며 '개인'의 개성이 몰살되던, 혈연이 마을의 기본 단위로 기능하던, 그리하여 외지인은 마을에 발붙이지 못하고 기존의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가던 농촌 사회와 얼마나 다른 것일까? 부부가 기본이 되어 이루어진 이런 공동체에서, 개인이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은 가능할까?

이 글을 통해 그의 주장에서 차근차근 의문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이철우 지사의 <경향신문> 인터뷰 내용 중 일부.
 이철우 지사의 <경향신문> 인터뷰 내용 중 일부.
ⓒ 경향신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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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출산으로 이어지는 결혼은 당연한가?

그가 말하는 '이웃사촌 복지공동체'의 일원은 결혼한 부부다. 그러니 결혼 제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죄를 짓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개인이 결혼 제도 안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고루하다. '출산'을 논하기 이전에, 지금 젊은 세대에게 결혼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고 불합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결혼 제도는 너무 다른 가치관을 가진 세대들을 '혈연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통합시킨다. '자유연애'의 완벽한 종착지라는 환상을 갖고 결혼했든, 단지 '통과의례' 중 하나로서 관성적인 결혼을 했든, 예외 없이 말이다. 현재 결혼 제도의 힘은 몹시 강력하다. 의료·주거를 포함한 모든 복지 체제의 기본 수혜 단위로 묶인다.

때로 심각한 폭력을 야기하는 불합리에도 해소가 쉽지 않을 만큼 강력한 계약이기도 하다. 가족 내부에서 발생하는 갈등 관계는 평등하게 해소되지 않고, 일방에게 인내와 순종의 미덕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덮인다. 그러나 지금의 '결혼적령기' 세대는 사적 영역에 대한 지나친 간섭을 견디고 개인의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관을 희생하는 것을 더 이상 '미덕'이라 생각지 않는다.

자식 세대가 사는 집의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아내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방문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시부모와 갈등을 일으키는 며느리의 서사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단골 소재다.

작년 5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페이스북을 통해 연재된 후 큰 인기를 얻어 책으로도 출간된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는 '평범한' 남자를 만나 '평범한' 연애를 하고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하면서 겪는 문제점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자신의 친정에 가면 자연스레 귀한 손님 대접을 받는 남편의 모습, 시댁 식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설거지를 하고 과일을 깎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듣지 못한다.

그대로 '며늘아기'의 당연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가 되어 버리며 문제의식을 느끼지만, 이는 쉽게 개인이 예민한 탓으로 취급받을 뿐이다. 어느 장면 하나 지나치게 극화되지 않았으나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어서 공포스러웠던 민사린의 이야기는 특수한 몇몇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의 단면이다.

아직도 대중문화, 각종 미디어에서는 전통적인 결혼으로 이어지는 '정상연애'를 낭만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이제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품는다. 모든 동화가 왕자와 공주의 결혼으로 끝나며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마무리된다. 그러나 그 이후에 어떤 현실이 숨어 있는가? 이 당선인은 환상의 틈으로 보이는 현실을 못 본 것인지, 못 본 체하고 있는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이 모든 고질적인 문제를 견디는 것이 우리 세대에게 여전히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가?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 <며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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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과연 결혼은 유일한 선택지인가?

이 질문을 통해 한 사람의 행정가로서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 앞서 언급한 현실적인 문제는 한국만이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2018년의 한국의 행정가 이철우씨가 여전히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결혼은 모든 사람들의 의무일 수도 없고, 인류의 역사상 불변해 온 하나의 진리도 아니다.

결혼하지 않으면 큰 병에 걸려도 돌봐 줄 가족이 없을 것이고, 늙어서는 혼자가 되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여기는 것이 '결혼'이 유일한 선택지로 주어지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고정관념이다. 그리고 이런 고정관념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줌으로써 찜찜한 마음을 남긴 채 섣불리 결혼을 선택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일까?

1989년 10월 세계 최초로 덴마크에서 '파트너십 등록법'을 시행함으로써 기존의 결혼 제도에 편입되지 않고도 대안적 형태의 가족을 이루고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삶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의 기틀이 만들어졌다. 1999년 프랑스에서는 'PACS(Pacte civile de Solidarite: 시민연대협약)'가 만들어졌다. PACS를 체결한 시민끼리는 상호부조 의무를 진다. 계약 이후 얻은 재산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두 사람이 공유한다. 사회보장, 납세, 임대차계약, 채권채무 등에 있어서도 권리와 의무가 보장된다.

영국은 2005년 12월을 기점으로 '시민동반자법(civil partnership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의 수혜를 받는 이들은 유산, 세금, 연금 등에서 기존의 부부들과 다르지 않은 혜택을 받는다. 지난 2016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시민결합(Civil Union, 이탈리아어 unione civile)' 제도가 인정됨으로써 모든 서유럽 국가에서 결혼 밖의 다양한 삶이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무려 20여 개 국가에서 시민결합을 인정한다. 결혼은 더 이상 제도적 안정을 누리고 보호를 받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다.

 우리는 함께 사는 삶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합리적이고 적절한 방향으로 모색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사는 삶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합리적이고 적절한 방향으로 모색할 수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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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비혼 1인가구의 삶은 고립인가?

모든 복지 제도의 기준 단위를 가구에서 개인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결혼'이 당연한 과업처럼 주어지는 사회에서 '비혼'이라는 키워드를 꺼냈을 때, 그 사람은 '출산과 양육의 의무를 지지 않는 이기적인 존재'이자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런 사회적인 편견은 잘못되었다. 대부분의 인간에게 돌봄에 대한 욕구는 존재한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함께 살기의 가치를 모색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사는 삶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합리적이고 적절한 방향으로 모색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서, 성애화된 일대일 관계만을 서로에 대한 부조의 의무를 지는 관계로 인정하는 사회적 고정관념 역시 지나치게 편협하다. 인간이 느끼는 친밀함과 맺을 수 있는 관계의 형태는 그보다 더 다양한데, 왜 부부와 커플 외에 여러 형태로 생겨나는 우정과 사랑들은 일시적이고 부질없는 것으로 여겨질까? 이런 관계들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가꾸어나갈 수 있는 안전한 제도적 울타리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점점 더 늘어나는 1인가구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도우려는 행정적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2016년 서울시에서는 '1인 가구 지원 기본 조례'를 제정하며 '사회적 가족'이라는 개념을 넣었다. 2015년 서울연구원에서 이루어진 '서울특별시 1인가구 대책 정책연구'를 참고하면, 서울 거주 1인가구는 약 98만 가구다. 그리고 이 당선인의 머릿속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하게 그려지는, 부모와 2인의 자녀로 구성된 4인 가구는 전체의 23.5%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시는 이미 이 현실을 인정하고 발 빠르게 1인가구 사이의 커뮤니티 형성을 지원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조례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1인 가구의 가구원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서로 관계를 쌓아나갈 수 있도록 사회적 관계망 형성을 지원하는 것이다.

성북·강북·은평·금천구 등 1인 가구가 밀집한 자치구에 1인가구 전용공간을 마련하고, 공유부엌과 공유장터를 개설하는 등의 방식이다. '혼자'이지만 건강하게 '같이' 하고, '같이' 하지만 건강한 '홀로' 지내기를 상상하고 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관념이 달라지고 있는 현실, 달라져야 할 필요를 모두 인지한 정책이다.

정리하면, 결혼을 목전에 둔 젊은 세대는 딜레마를 겪는다. 한편으로는 결혼 제도에 편입됨으로써 자신들이 올바른 생애 주기에 있다는, 사회적으로 보편적이고 안정된 트랙 안을 달리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사회적 존재로서 당연한 일이다. 동시에, 이들은 이미 결혼한 사람들, 부모님이나 자신의 기혼 친구들의 문제를 자신은 겪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에 빠진 상태로 결혼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리고 무수한 이들의 환상이 깨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배경으로 더 많은 이들이 문제를 깨닫고, 정치적인 의사 표현으로서 결혼을 거부하며 '비혼'을 표방하고 있다. 제도 그 자체에서 발생되는 문제는 개인의 노력으로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알아 가고 있다. 이제는 전통적인 결혼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것 이상의 제도적 변화와 행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 당선인의 이번 주장은 불합리한 편견, 국제적인 제도 변화에 대한 지식 부족, 사회적 흐름과 변화에 대한 인지 부족에서 기인한 것 같다. 그러므로 비현실적이며, 한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을 주도적으로 해 나가야 하는 행정가의 입에서 나온 주장이라는 점에서 몹시 문제적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현실의 흐름을 바탕으로 행정 서비스의 수혜자들이 홀로, 또 같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행정가의 책무가 아닐까. 경북 청년 도민 삶을 진지하게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태그:#이철우, #1인가구, #파트너등록법, #생활동반자법, #비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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